엘르의 오랜 친구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1992년에 론칭해 25년 동안 매달 선보인 <엘르> 코리아, 총 301권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만나게 되는 <엘르>의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잡지사, 매거진, 모델,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푸드 디자이너, 헤어스타일리스트, 친구, 동료, 대화, 엘르, elle.co.kr:: | 잡지사,매거진,모델,스타일리스트,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윤미 stylist, <elle bride>creative director인디고 데님 사파리 재킷과 팬츠는 The Label:Project by Avouavou. 주얼리와 슈즈는 본인 소장품.<엘르>와의 첫 만남 예쁜 문구를 모으며 아름다운 디자인에 눈뜨던 고등학교 시절. <엘르>는 패션이라는 신세계를 보여줬다. <엘르>와의 첫 작업 <엘르>가 아닌 다른 매체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엘르>와의 첫 만남은 스타일리스트를 시작한 8년 전. 당시 부록으로 나온 <엘르> 브라이드 화보 작업을 의뢰받았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역시 첫 작업이다. 처음 시작은 ‘신랑신부’를 주제로 한 10쪽짜리 화보였는데 현장에 있는 스태프(헤어, 메이크업, 모델 에이전시 대표, 포토그래퍼)를 신랑신부 들러리, 결혼식 하객으로 등장시켰고 딸 시우도 화동으로 등장했다. 작업하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 한 당시의 강주연 편집장이 카톡으로 엄지 5개를 보내고 <엘르> 부록이 아닌 본지에 18쪽으로 페이지를 늘려 화보를 실었다. 최고의 칭찬을 받은 셈!<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긍정의 에너지. 나에게 <엘르>는 늘 기분 좋은 잡지다.<엘르>가 준 영감 <엘르>처럼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거진이 많지 않다. 화보 촬영을 할 때 모델에게 웃어보라고 하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점이 스타일리스트인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25세 <엘르>에게 <엘르>는 25년 동안 패션 트렌드를 독자에게 쉽고, 세련되게 전달해 왔다. 이런 긍정적인 면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손대식 & 박태윤 makeup artists손대식이 입은 티셔츠와 재킷은 본인 소장품. 박태윤의 스웨트셔츠는 본인 소장품.<엘르>와의 첫 만남 (손) 어머니는 의상실을 했고 나는 패션을 전공했으니 1992년, <엘르> 코리아가 론칭하는 순간부터 빼놓지 않고 봤다. (박) 어린 시절에 가장 먼저 접한 패션지가 <엘르>였고, 의상학과를 다니면서 패션지를 스크랩할 때도 <엘르>를 많이 봤다. 당시 외국은 슈퍼모델의 전성기였는데 <엘르>가 그런 문화를 접하는 유일한 창구였다.<엘르>와의 첫 작업 (손) 포토그래퍼 이건호, 윤춘길, 조선희와 패션 에디터 황진영, 이선희와 했던 패션 화보들. (박) 2000년대 초반부터 <엘르>와 패션, 뷰티 화보 작업을 시작했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손) 2004년, 2005년 무렵 해외 출장도 많이 갔고, 국내외의 다양한 로케이션에서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2005년, 뉴욕에 표지 촬영을 하러 갔을 때는 모델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마음을 졸였던 기억도 있지만, 그렇게 고생했던 작업은 그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박) <엘르> 화보 작업은 뭐 하나 꼽을 것 없이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08년 3월, 포토그래퍼 박기숙과 뷰티 에디터 박나영과 작업한 뷰티 화보 ‘Miss Butterfly’는 나비의 색감에서 영감을 받았고 <엘르>다운 해석과 균형 감각을 더해 완성했다.<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손) 베이스도 생략하고 파우더, 아이라이너만 할 수 있는 과감함. (박) 아티스틱한 감성, 너무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 많은 걸 덜어내면서 가미한 에지.<엘르>가 준 영감 (손) <엘르>는 한 달 내내 두고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부하듯이 읽는 잡지였다. 화장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디자이너가 어떤 트렌드를 만들어내는지 방대한 지식을 대화하듯 친절하게 알려줬다. (박) 스타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밸런스’라는 점.25세 <엘르>에게 (손) 인쇄 매체로서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는 매체가 <엘르>이기를! (박) 패션 역사가 길지 않은 한국에서 25년 동안 꾸준히 제자리를 지켜온 <엘르>. 앞으로도 계속 패션 판타지를 전해주길.송경아 model스트라이프 패턴의 오버사이즈 셔츠는 Ports 1961.<엘르>와의 첫 만남 학생 때부터 <엘르>와 자매지인 <탑 모델 Top Model>을 즐겨 봤다. 클라우디아 시퍼, 린다 에반젤리스타 등 해외 유명 모델을 만날 수 있었던 유일무이한 책이었다. 좋아하는 페이지를 소중히 잘라 교과서를 싸가지고 다닌 기억도 난다(웃음).<엘르>와의 첫 작업 1999년 1월호 ‘For Our Own Party’ 화보. 모델 박둘선, 윤지영 등 유명 모델 여러 명이 등장하는 화보였는데, 신인 모델도 필요하다고 해서 나와 이영진이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쟁쟁한 선배 모델 틈에서 나와 이영진이 단독 컷과 뷰티 컷을 찍어 뿌듯했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포토그래퍼 권영호, 조선희, 장 루이, 헤어 김정한, 주형선, 메이크업 이선주, 패션 에디터 신유진, 황진영, 류지연 등과 작업한 <엘르> 화보들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 한여름에 두꺼운 니트 풀오버처럼 계절을 앞서가는 옷을 입고 상암 월드컵경기장, 미사리 조정경기장, 남이섬, 뉴욕 등 국내외를 누비고 다녔다.<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건강미 넘치고 밝고 예쁘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워야!<엘르>가 준 영감 옷 입는 방법뿐 아니라 어떻게 해야 여자로서 멋질 수 있는지 애티튜드까지 알려주었다.25세 <엘르>에게 <엘르> 덕분에 모델 데뷔를 했고, 주목받았고, 좋은 스태프를 만났고, 멋진 작업도 함께했다. 모두의 바람처럼, 앞으로도 영원하길!박세훈 food designer슬림한 재킷과 레더 스트랩 워치는 모두 본인 소장품.<엘르>와의 첫 만남 어린 시절, 파리에 살았는데 그때 본 <엘르> 표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다음 기억은 군대에서. 군대 서가에는 남성지가 대부분이지만 여자친구들이 가지고 온 <엘르>가 가끔 꽂혀 있었다. 남성지 틈에서 <엘르>를 더 재미있게 봤던 기억.<엘르>와의 첫 작업 뉴욕 랄프 로렌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한국에 왔다. 개인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걸 좋아해 기록도 할 겸 SNS에 음식 사진을 올렸는데 김미구 뷰티 디렉터의 눈에 띄어 <엘르>에 첫 칼럼을 싣게 됐다. 2013년 5월호에 실린 ‘남자가 혼자 차려먹는 밥상’이었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새해 상차림’을 주제로 우리 술과 음식을 페어링한 테이블에 대한 사진과 글을 실었다. 서양 것이 아니라 우리 음식을 맛있게, 멋있게 풀어낸 것이라 지금 봐도 뿌듯하다.<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일상과 맞닿아 있지만 결코 투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톡톡 첨가한 미학적 양념 약간.<엘르>가 준 영감 나는 전문 셰프가 아니고 음식에 관해서는 여전히 트레이닝 중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엘르>가 그 시작이었다.25세 <엘르>에게 <엘르>의 자유로운 에너지는 파워플하고 시대적으로도 잘 맞는다. 여성으로 비유하면 아주 쾌활하고 현명하고 아티스틱한 분야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서도 너무 심각하지 않은, 균형이 잘 잡힌 인물이 떠오른다. 앞으로 시대가 급변하겠지만 이런 <엘르>다움을 힘차게 지켜나가길.김정한 hair stylist옥스퍼드 셔츠는 YMC. 캐주얼한 재킷은 Itineris by I.M.Z Premium.<엘르>와의 첫 만남 <엘르> 코리아가 창간한 1992년에는 이미 일을 하고 있던 때였다. 당시 국내 로컬 매거진이 많았는데, 라이선스 매거진인 <엘르>의 창간은 비주얼 측면에서 특히 센세이셔널했다. 좋은 화보를 보려고 값비싼 수입 잡지를 사던 때라서 한국어로 된 잡지에서 멋진 화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엘르>와의 첫 작업 패션 디렉터인 신유진, 모델 정상인과 첫 <엘르> 화보 작업을 했다. 20여 년 전인데, <엘르>는 내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은 비주얼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연락이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아무래도 가장 처음과 가장 최근이 아닐까. 최근 작업 중에서는 2016년 9월호 표지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모델은 씨엘이었는데, 뮤지션인 만큼 자유롭게 수용하는 폭이 커서 배우와 작업할 때와는 또 다른 새로움이 있었다.<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초창기 <엘르>는 아름다움의 정형을 과감히 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정돈돼야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깨고 헝클어진 머리, 옷의 자연스러운 구김도 멋지다는 걸 알려줬다. <엘르> 코리아가 창간한 뒤에 다른 라이선스 매거진의 한국판도 속속 생겼는데, 그런 매거진과 비교하면 <엘르>는 현실감이 좀 더 있었다. <엘르>는 서울의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가장 근접하게 보여주었다.<엘르>가 준 영감 <엘르>는 스타일만 말하지 않고, 애티튜드를 포함해 여러 가지를 함축하는 매너를 만들어왔다. 최근에는 시대 흐름에 맞게 교과서적인 뉘앙스를 과감히 버린 점이 좋았다.25세 <엘르>에게 한국 라이선스 매거진의 원조인 <엘르>. 나에게는 스승인 <엘르>. 그런 <엘르>의 창간 25주년이 무척 감동적이다. 앞으로도 굳건하길!이유 model터틀넥 니트 톱은 COS. 벨벳 테일러드 재킷은 Bimba Y Lola. 링은 본인 소장품.<엘르>와의 첫 만남 패션에 관심 많은 언니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부터 패션 매거진을 봤다. <엘르>와 자매지인 <탑 모델 Top Model>을 열심히 봤다.<엘르>와의 첫 작업 1997년 포토그래퍼 이건호와 영화 <중경삼림>풍의 화보를 촬영한 것이 <엘르>와의 첫 작업으로 기억한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2003년 4월호 <엘르>에 실린 ‘Love is Blind’는 실제로 내 결혼에 맞춰 찍은 거라 기억에 남지만 사진은 싣지 말아주길 바란다(웃음). 이후에 딸 야니와도 <엘르> 화보에 가끔 등장했는데, (지금은 중학생으로 훌쩍 커버린 딸이) 너무 해맑고 천사같이 예쁠 때라서 내 인생의 베스트로 꼽고 싶다.<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건강한 여자를 밝은 햇살 아래서 바라보는 느낌.<엘르>가 준 영감 스스로를 소중히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 외형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여성의 롤 모델.25세 <엘르>에게 SNS 등 새로운 네트워크가 생겨나면서 연예인에게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패션의 중심에서 진정한 패션의 의미를, 건강한 여자의 삶을 흔들림 없이 지켜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