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이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은 종이컵부터 아이폰까지 가장 익숙한 사물을 그림으로써 일상 넘어의 것을 보게 한다::아티스트,화가,그림,전시,인터뷰,엘르,elle.co.kr:: | 아티스트,화가,그림,전시,인터뷰

1941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영국에서 활동한 마이클 크레이그-마틴(Michael Craig-Martin)의 작품 세계는 현대미술사와 궤를 같이한다. 60~70년대 재스퍼 존스나 도널드 저드 등과 동시대를 공유하며 활동한 그는 ‘참나무(An Oak Tree)’(1973)라는 작품으로 개념미술 운동에서 중요한 순간을 마련했다. 1980년대까지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친 마틴은 ‘참나무’를 통해 정신이 개안됐다고 말한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해 세라 루커스, 게리 흄, 트레이시 에민 등 미술계를 풍미한 앙팡테리블 집단 ‘yBa(Young British Artists)’를 가르쳤다. 1990년대에 일상 사물의 낯선 결합과 관련 없는 색의 병치로 이뤄진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마틴은 현재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작품 세계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있다. 11월 5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개인전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백열전구의 필라멘트 부분이 확대된 그림 앞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Commonplace(With Chaise)’, 20175년 전, 이곳에서 열린 전시에서 화면에 단어를 도입했다. 이번에는 클로즈업과 화면 분할이 눈에 띈다 단어와 이미지의 관계는 내겐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사전에는 수천수만 개의 단어가 있지만,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단어는 몇 가지 안 된다. 대개는 고만고만한 단어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나는 단어가 들어간 작품들에서 그 점을 말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그보다 더 단순하다. 컬러와 오브제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모두 하나의 이미지와 다름없는 신작 30여 점을 소개한다. 사물이 아주 간단하고 투명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가보려 했다. 1층 전시실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작품은 와인 오프너, 아이폰 등의 일부를 과감하게 절단해 부분만 그려 넣은, 세로로 긴 작품이다 캔버스 위에서 사물은 실제보다 훨씬 커진다. 손바닥만 한 선글라스도 일부분을 확대해서 그리면 실제보다 몇 배로 커지지 않나. 세로로 된 그림은 그런 인식 과정이 훨씬 드라마틱하다. 사물의 일부만 그려놓아도 관람자는 자신이 지닌 기억과 정보를 동원해 더 많은 것을 본다. 의도하는 바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 보통 개인 공간에는 내 작품을 두지 않는 편인데, 이 세로 그림들 가운데 몇 점은 집에 두기도 했다. 당신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관심을 갖고 있고, 거의 전부를 그린 것 같다. 아직 그리지 못한 물건이 있는가 나는 굉장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우선 알루미늄판에 프로젝터로 이미지를 쏜다. 그런 다음 윤곽선을 만들고 아크릴물감을 수십 번씩 롤러에 찍어 채색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늘 같은 사이즈의 선으로 그림을 그린다. 때문에 빗 같은 몇몇 사물은 그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싶은 사물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어느 문화권에 속하는 관람자라도 보자마자 그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물건을 고르는 것이다. 너무나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게 바로 내가 하는 작업이다. 당신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 요소 중 하나는 컬러다 원래 개념미술에서는 대부분이 흑백이고, 간혹 레드 컬러가 허용될 뿐이었다. 나 역시 컬러를 쓰는 걸 굉장히 불편해 했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파리의 7개 방이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며 모든 방을 각기 다른 컬러로 칠해 보았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으로 각 방을 칠한 후 각각 두 가지의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이윽고,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왔을 때, 그들의 반응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방을 옮겨 다니며 전시를 즐겼고,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색채가 인간의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깨달았다. 그 후로 다시는 흑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시계방향으로1 ‘Untitled(Can Fragment)’, 2016 2 ‘Untitled(Suitcase)’, 20143 ‘Untitled(Trainer Fragment Green)’, 20174 ‘Untitled(Tennis Racquet Fragment Yellow)’, 2017완전무결한 상태처럼 보이는 작품 세계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변주를 시도한다. 원동력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나이가 들수록 가장 기본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다. 주된 요소를 강조하고, 그 이외의 것은 모두 없애버린다. 본질을 찾으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새로운 시도들은 모두 본질을 찾기 위한 것이다. 마티스나 피카소의 말년 작품을 보면 본질 그 자체다. 굉장히 간단하고 직접적이다. 이건 의식적 욕망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에 가깝다. 내 초기작 ‘참나무’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높은 선반 위에 놓인 평범한 물컵일 뿐이지만 예술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참나무’는 개념미술 운동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길고 복잡한 얘기를 산뜻하게 응축해 한마디로 얘기한 작품이었다 60~70년대의 아티스트들은 예술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했다. 칼 안드레이처럼 극단적으로 하나의 재료만 사용한 작가도 있고, 대부분 구성 요소나 구조 등이 전혀 없는 작품을 내놓으며 본질을 추구했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가장 베이식한 방식으로 탁월한 변화를 시도할까 매일 고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큰 변화는 변화하지 않는 것(The biggest change is no change)’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통해 선반 위의 물컵이 어째서 참나무인지를 기호학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고, 대상 그 자체보다 미술가의 의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선언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자로 자라며 체화한 교리가 작품의 기저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가톨릭에는 화체설이란 게 있다. 성찬 시 신부님께서 주시는 떡과 포도즙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참나무’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고, 결국 예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어떤 것은 그 모습이 바뀌지 않은 채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관람자들이 나를 믿지 않으면 내가 물컵을 참나무로 변화시켰다는 것도 믿지 못할 것이다. ‘참나무’처럼 탁월한 개념미술 작품 앞에 서면 그 작품이나 작가를 믿고 싶어진다. 21세기에는 예술이 종교를 대신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참나무’의 변형은 문자 그대로의 변형이 아니라 ‘시적인 변형’이다. 시에서는 다른 것들이 가능하다. 모든 고대 문화에서 시는 가장 심오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성경, 코란 등 모든 훌륭한 책과 종교가 시로 이뤄져 있다. 이것들은 은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거기에서 말하는 것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주의에서는 시를 다큐멘터리로 이해하지 않나. 우리는 모든 예술이 시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예술이 흥미롭고 중요한 이유는 시적인 은유와 비유를 통해 세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