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면서 Y존의 체모, 정확히 말해 음모를 정리하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음모라는 단어가 굉장히 ‘음’스러워 다른 단어로 순화할 테니 으레 ‘그곳의 털’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길). 어릴 때 수영장에 억지로 끌려 들어간 뒤 물을 무서워하게 됐고, 2차 성징을 겪는 동안에는 물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수영복 하의 바깥으로 털이 비집고 나올 수 있음을, 결코 낭만적이지 못한 사실을 하와이에서 처음 깨달았다. 큰맘 먹고 준비한 비키니거늘, 비치 타월로 하체를 꽁꽁 둘러맨 뒤에야 하나우마 베이의 탈의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아뿔싸,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조선백자에 튄 먹물 같기도, 황량한 사막을 굴러다니는 메마른 푸성귀 같기도 한 ‘네놈’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하와이에서 돌아와 바로 비키니 레이저 10회권을 끊었다. “이 정도만 남기면 되겠죠? 브라질리언은 부담스러우실 테니까….” 뻘쭘하게 누운 채 간호사의 손에 내 털이 무참히 깎여나가고, 옷 먼지를 제거하는 일명 ‘돌돌이’가 내 ‘소중이’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낯선 경험. 그 후 차가운 젤이 뿌려지고 금속의 차가움과 함께 찾아오는 신경질적인 따끔거림. 하지만 피부과에서 발가벗겨진 듯했던 기분은 시작에 불과했다. 조금씩 자라나는 털을 집에서 꾸준히 셰이빙해야 했고(모근을 남겨야 하기에 뽑아서도 안 된다), 삼각형으로 앙증맞게 남은 부위의 털이 모히칸 헤어(?!)처럼 너무 길게 느껴져 눈썹 가위로 기장을 정돈해야 했으며, 자르고 나니 날카로워진 털 끄트머리가 주변 피부를 찔러 빨리 걷거나 운동할 때마다 따끔거리는 고통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자칫 너무 짧게 자르면 빳빳하게 성난 털이 속옷 바깥으로 가시처럼 튀어나왔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의 상태는 어떠냐고? 다시 ‘숲’이다. 10회의 레이저 시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자라나는 털의 강인한 생존력에 경의를 표하며 덤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왁싱을 받아볼까도 싶었지만 스트립을 떼낼 때의 고통, 네 발로 기어가는 자세로 엎드린 채 은밀한 부위의 털까지 뽑아주는 민망한 상황, 상상만으로도 버거워 포기했다. 옆자리에 앉는 선배 에디터에게 이 얘기를 했다. “난 여름뿐 아니라 평소에도 꾸준히 비키니 왁싱을 받아. 생리할 때도 훨씬 깔끔해서 위생 면에서나 건강 면에서 좋다고 느끼거든. 솔직히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내 털을 보는 것도 싫고 말이야.” 미국으로 이민 간 자신의 친구는 아예 브라질리언 상태로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고 귀띔해 줬다. 물론 우리 대화는 0 데시벨에 가까웠다. 최근 미국과 영국 등지에선 그곳의 털을 정돈하느냐, 그대로 놔두느냐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미국 모델이자 뮤지션인 앰버 로즈가 자신의 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 도화선이었다. 선정성 가이드라인에 벗어난다는 이유로 금방 내려지긴 했지만 #BringBackTheBush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같은 사진 릴레이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미국의 한 월간지는 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화보를 공개하기도 했다. 서정적인 톤에 Y존 중심으로 클로즈업된 앵글, 여기에 ‘여성 15명의 매력적인 음모 포트레이트(15 Striking Portraits of Women’s Pubic Hair)’라는 타이틀까지 단 채! “불평등에 반대하는 수많은 운동이 일어나는 요즘, 체모는 분명 큰 화두 중 하나예요. ‘누구를 위해 제모를 하지? 왜 자연스러운 털을 부끄러워할까? 그곳의 털이 민망하고 지저분하다는 편견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거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글로벌 트렌드 예측 사이트 WGSN의 뷰티 에디터, 엠마 그레이스 베일리의 말이다. 그녀에 의하면 최근의 페미니즘 물결과 맞물려 체모를 자연스러운 상태 그대로, 자유롭게 내버려두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 또 Y존 제모에 대한 강박이 남성 위주의 시선으로 연출된 포르노영화 속 여성들의 ‘올 누드’ 상태에서 기인했다는 것. 기네스 팰트로는 엘런 디제너러스와의 인터뷰에서 “체모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 했고, 엠마 와슨은 전용 오일을 발라 그곳의 털을 부드럽게 가꾼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혔다. 엠마가 사용한다는 오일의 브랜드명은 심지어 ‘퍼(Fur)’. 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체모 관리 전문 브랜드다. “털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변하고 있음에도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해 줄 제품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동안 털을 ‘문제’로 인식하고 제거하려고만 했으니까요.” 퍼 공동창립자 릴리언 텅의 설명이다. 엠마 와슨이 퍼 오일을 언급하며 “눈썹 털부터 그곳의 털까지 어디든 다용도로 바른다”고 말했을 때 체모와 관련된 구글 검색 수가 평소보다 무려 55배 이상 치솟았다고 한다. 일찍부터 Y존 제모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서양인에게조차 엠마의 공개 발언은 신선한 충격임이 분명하다. “다양한 제모 옵션이 있다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피부 타입과 체모 유형, 숱의 정도에 따라 최적의 털 상태로 가꿀 수 있다는 데까지 인식의 폭이 넓어져야 해요.” 릴리언은 그곳에 털이 있는지 없는지와는 관계없이, 중요한 건 제거 대상이라는 오명을 없애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엘르> 영국의 여론조사 결과, 85%의 여성이 있는 그대로의 체모 상태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새로운 속옷을 입는 것처럼 기분이 산뜻해진다는 이유로, 나만의 루틴을 깨트리기 어렵다는 이유로 제모 습관을 버리지 못하겠다고 털어놨다. 브라질리언을 택하든 특정 모양으로 남기는 제모 방식을 택하든 ‘소중이’를 보호하는 덤불을 택하든, 어디까지나 선택은 당신의 몫.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건 체모와 관련된 터부를 과감히 깨트리자는 것이다. 상한 모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팔뚝과 종아리, 겨드랑이 털에 대해 스스럼없이 얘기하듯, Y존 털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문득 15년 지기 절친들에게조차 그곳 털에 대해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부위만 다를 뿐 결국 같은 털일 뿐인데 뭐 그리 부끄럽다고 입에 담는 것조차 ‘거시기’하게 여겼을까? 한국에도 ‘퍼’ 같은 전문 브랜드가 탄생하길 기대하며 음모란 단어에도 낯 붉히지 않으련다. 그리고 묻고 싶다. 난 음모를 자연 상태 그대로 기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가꾸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