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네 멋대로' 강추작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드디어 4월 29일부터 제11회 전주영화제가 시작된다. 그러나 황금 연휴에 티켓 구하기는 정말 전쟁이다. 이미 화제작이 전부 매진되었을 때, 어떤 영화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손가락만 빨고 있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소리없이 강한 추천작 7편이다.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면 일단 믿고 따라와라! ::전주국제영화제, 하데비치, 브루노 뒤몽, 트래쉬 험퍼스, 하모니 코린, 테트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니콜라 필리베르, 네네트, 스파이크 존즈, 괴물들이 사는 나라, 테헤란 스케치, 로무알트 카마카, 죽음의 사자, elle.co.kr, 엘르, 엣진:: | ::전주국제영화제,하데비치,브루노 뒤몽,트래쉬 험퍼스,하모니 코린

하데비치 Hadewijch브루노 뒤몽의 는 '카이에 뒤 시네마'가 발표한 '올해의 영화 10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작품이다.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스크린 속에 폭발시키는 것에 능숙능란한 감독은 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인간의 폭력과 증오의 감정을 사회적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의 주인공 셀린은 매우 신실한 종교를 가진 신학도이다. 하느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하나의 종교를 넘어 병적일 정도로 강렬하다. 영화는 셀린이 야신이라는 아랍계 청년을 만나면서 겪는 사건과 감정적인 변화를 따라간다. 파리 교외에서 형 나시르와 함께 살고 있는 야신은 셀린에게 호감을 가지며 셀린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나시르를 통해 자신의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다. 브루노 뒤몽은 영화적 풍경을 인물의 내면과 대비시키며 프랑스 사회이 품고 있는 갈등의 다양한 양상을 전경화한다. 정부 고위 관료의 딸인 셀린이 사는 파리 내부와 파리 외곽에 위치한 아랍인 집단 거주지역은 사회적 위상만큼이나 극명한 공간적 차이를 보인다. 브레송의 를 연상시키는 의 마지막 장면은 내러티브상으로 별다른 연관성을 가지지 않지만 인물의 행동과 표정을 통해 영화의 전체 얽개를 완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트래쉬 험퍼스 Trash Humpers에서 스타들을 흉내 내는 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보여준 하모니 코린. 이번에는 스코틀랜드의 이상한 마을보다 더 엽기적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곳에는 쓰레기통이나 변기, 심지어 가로등에 매달려 성행위를 하며 일상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코린이 시나리오를 썼던 (1995)를 떠올린다면 의 성인 버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쁜 어른들? 심야에 고성방가와 난장을 부리는 험퍼스들에게 도덕성이나 윤리는 전혀 없다. 악취미와 일탈적인 행동을 통해 영화를 배설로 가득 채운다. 이들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반달리즘(공공 기물 파손)의 행태를 보인다. B급 호러 영화의 악몽에서 뛰어나온 것 같은 이들은, 폴 맥카시의 퍼포먼스에서 등장했던 미키 마우스 일당처럼 기괴하고 끔찍하다. 이 영화를 보고 불쾌감을 느낀 관객들은 “진짜 쓰레기야!”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린 감독은 원하는 답을 들은 것이다. 그는 기쁘게 “예스!”를 외칠 테니! 그가 보여주고 싶은 건 진실을 드러낸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다. 어린 시절 나이든 어른들이 그의 집 뒷마당에 와서 술 마시고 춤추며, 노래하며 험핑하던 모습을 본 코린. 그런 사적인 경험이 이 영화를 탄생시켰다. 숭고함 따위는 개한테 던져준 발랄하고 유쾌한 영화다. 테트로 Tetro제9회 전주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에 이어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신작을 또 만날 수 있다. 갑자기 코폴라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갔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낼지 궁금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의 선택은 이번에도 가족이다. 끈적한 범죄의 향기가 없더라도 가족 이야기만큼 시원적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없다. 세상이 변해도 여전히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유효하다. 소설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들 테트로(빈센튼 갈로)와 그를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 카를로(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의 갈등이 핵심을 차지한다. 영화는 동생 베니가 집을 떠난 형 테트로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망가진 영혼으로 방황하는 형을 되살리기 위해 베니는 테트로가 쓴 소설을 몰래 편집한다. 이 작품으로 파타고니아 페스티벌에 나가게 된 형제는 시상식에 앞서 아버지 카를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동생 베니가 테트로의 자전적 소설을 재구성하면서, 테트로비치 집안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즉 테트로에게 성공 지향적인 아버지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큰 장애물이자 비극의 모체였다. 봉인 풀린 비밀은 그들의 상처를 건드리지만, 결국 치유마저 동반한다. 미하이 말라이메어 주니어가 촬영한 유려한 흑백 영상과 오스발도 골리조프의 선율이 에 이어 감미롭고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가족드라마를 위한 숨결이다. 네네트 Nenette네네트는 마흔 살 먹은 오랑우탄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네네트와 그의 동료들을 담고 있다. 파리 식물원에 살고 있는 네네트는 1969년 보르네오 출신으로, 1972년부터 이곳에 머물렀다. 야생 오랑우탄의 수명이 삼십 년인 걸 고려한다면 장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니콜라 필리베르의 카메라는 울타리(유리벽) 밖에서 네네트를 바라본다. 70분 동안 네네트를 밖에서 지켜볼 뿐이다. 우리는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그녀를 엿보고 또 훔쳐본다. 카메라는 네네트를 포착하고, 사운드는 네네트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네트를 보고 놀라는 어린 아이들부터 네네트가 죽으면 너무 슬플 거라고 말하는 동물사육사까지 다양한 소리가 나오는 동안, 관객은 네네트를 지켜본다. 젊은 오랑우탄과 달리 그녀는 활기를 잃은지 오래다. 알 수 없는 슬픔과 애절함을 네네트의 눈빛에 찾을 수 있다. 네네트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건 한 오랑우탄의 우화로 결코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동물원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타자에 불과했던 네네트는 점점 커다란 거울이 되간다. 놀랍게도 그 슬픈 표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다큐멘터리의 대가 필리베르는 네네트를 마담 보봐리에 비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우리는 네네트다"라고 외치고 있다. 그렇게 네네트를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겨놓는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 Where The Wild Things Are소설이나 동화를 영화로 만들면 원작의 고유함을 망친다는 편견이 있다. 이런 생각을 뒤집는 두 편의 영화가 2009년에 나왔다. 한 편은 웨스 앤더슨의 고, 또 한 편은 스파이크 존즈의 였다. 두 작품은 원작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제라도 존즈의 괴물들을 전주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모리스 센닥의 1963년 동명 원작은 전 세계 아이들에게 베드타임 스토리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개구쟁이 맥스는 집을 떠나 잠시 괴물들의 왕이 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괴물들은 그저 털 달린 인형이 아니다. 심각하고 진지하다. 삶의 결핍과 아픔에 대해 몹시 고민한다. 소년의 심장과 영혼을 대변하는 커다란 생명체이자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결국 맥스는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할 순 없다는 교훈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온다. 진실은 때로 잔인하지만, 그 만큼 소년을 한뼘 성장시킨다. 이 영화를 선택한 관객들은 해피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밖에 없다. 어디선가 캐런 오의 노래만 들려오면, 얼큰이 괴물들과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명나게! 테헤란 스케치 Tehran Without Permission세피데 파르시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노키아 핸드폰과 무모함만 가지고 만든 작품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이 다큐멘터리는 노키아 핸드폰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무모할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다는 언급은 영화 속에서 그녀가 만난 수많은 인물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한 이란 사회의 내면에 이 여성 감독은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편리한 카메라를 가져다 대었다. 거리 예술가들, 네일 샵 종업원, 택시 운전사, 불량스러워 보이는 젊은이, 식당 종업원 등 테헤란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평범한 인물들과 인터뷰를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가 보는 영상은 텔레비전에서 비춰지는 중동 지방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강력하게 성토하는 남성의 모습은 서구 언론이 만들어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보다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수적인 남성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테헤란의 모습들을 선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만 열중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과 근대가 혼재되어 있는 풍경들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마지막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테헤란 시민들의 이미지 클립을 보면 그때서야 앞에서 우리가 본 테헤란 풍경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죽음의 사자 The Deathmaker로무알트 카마카의 1995년 장편 데뷔작이다. 이 독일 감독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제일 먼저 봐야 할 영화다. 에른스트 교수는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프리츠 하만을 심문한다. 범죄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가 정상인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17명 이상의 소년을 살해하고, 토막내서 냉장 보관한 후 먹었다고 전해지는 하만의 실제 심문을 토대로 카마카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영화는 시종일관 밀실만을 보여준다. "넌 아직 진실을 말하지 않았어!"라고 공격하는 정신분석학 교수와 "난 예의 바른 사람이다"라고 맞서는 하만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 시절이나 과거의 행동들에 질문하면서 하만의 살인동기나 살인수법을 알아내는 과정이 긴장감있게 담겨 있다. 이 영화는 존 맥노튼의 (1986)처럼 이상 심리를 극단으로 몰고가면서 공포를 자아내는 스릴러가 아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극적인 감정이나 영화 플롯에 필요없는 군더기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다이렉트 시네마처럼 인물의 고백에만 집중하고 있다. 암전 후 그의 거친 숨소리만 나오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관객은 비이성적인 하만에게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하만의 이야기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누구나 안고 있는 과거의 상처와 소외된 현대인의 일상적 단편들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하만을 이웃집 아저씨처럼 재현한 고츠 게오르그의 탁월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