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팔자’라는 인생론에 비추어 보자면 난 늘 바쁨 모드다. 불과 두 달 전, 회사를 그만두면 한가해지지 않을까? 마음 편해지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무색하다. 성격 탓이다. 세상엔 흥미로운 일들이 너무 많다. 뭐든지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다 해봐야 미련이 없다. 더불어 사람이 낯선 곳에 혼자 있으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고 외로움을 탈 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타인과 교류해야 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괜히 나온 얘기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인지 중인 셈. 그래서 찾은 대안이 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다.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은 스트레스 받지 않는 적당한 난이도로 가벼운 교양 쌓기에 알맞다. 더욱이 혼자만의 시간이 지루할 즈음이면 낯선 이들과 즐기는 부담 없는 대화의 즐거움이 그렇게 클 수가 없다.여행자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 우리에게 친숙한 ‘마이 리얼 트립’ 또는 ‘에어비앤비’의 체험 프로그램부터 ‘투어 바이 로컬 Tours by Locals’, ‘파리 시티 비전 Paris city Vision’ 등과 같은 현지 여행사의 사이트에는 다양한 상품이 즐비하다. 마이 리얼 트립의 경우 한국인 가이드가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영어나 프랑스어가 서툰 이들에게 알맞다. 물론 외국어가 서툴러도 현지인 호스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문제는 없다. 여러 프로그램을 뒤적거리던 중 ‘도전!’을 외치게 만든 것이 있으니 와인에 따른 치즈 궁합 체험하기, 그리고 크레페 쿠킹 클래스다. 어디를 가나 그 지방의 음식을 이해하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를 아는 것 아니겠나! 와인&치즈 클래스 변호사였지만 소물리에가 되고 싶어 과감한 이직을 단행했다는 호스트 루이즈(Luiz, www.winetruckparis.com)와 함께 와인 종류에 따른 치즈 매치법을 알아보는 프로그램 ‘Vin & Fromage Testing’에 참여했다. 가게에서 와인과 치즈를 고르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를 시작으로 체험자들과 함께 둘러앉아 이를 맛보며 질의 시간을 가졌다. 나를 제외한 6명의 참여자가 미국인. 베네수엘라 혹은 터키 사람이지만 최종 여권은 미국인들. 다양한 듯 단순했지만 60대, 30대, 20대가 한 곳에 자리한 사실 자체로도 충분히 신선했다. ‘wine truck paris’의 투어 프로그램. 호스트인 루이즈는 대형 마트보다 와인 전문점에서 와인을 구입하라고 조언한다. 그만큼 관리가 잘 돼서다.와인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삼페인, 로제, 부르고뉴와 보르도산 레드 와인을 시음하고 각 술에 대한 특징에 대해 배웠다. 샴페인과 브리 치즈, 로제와 고트 치즈(Chevre Ste-Maure), 부르고뉴 레드 와인과 생넥테르 치즈(St-Nectaire), 보드로 레드 와인과 상딸 치즈(Cantal)이 궁합이 좋다고 했는데 아직 내 입맛은 브리 치즈까지만인 것으로. 프랑스 와인을 고를 때 잘 모르겠다면 2010, 2012, 2015년 중에서 골라잡자. 그 해에 포도 농사가 풍작이었기에 싼 와인일지라도 상대적으로 훌륭할 터. 또 하나 더! 와인 마실 때 호록하고 한 모금 머금은 뒤 입안의 공기와 함께 썩어 마시면(영화 속 배우들이 후르릅 소리를 내며 양치하듯 마시는 바로 그것처럼) 와인의 풍미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클래스에서 시음한 와인과 치즈들. 요즘 프랑스에서는 유기농 와인이 인기다. 초록색 마크가 유기농을 의미한다. 유기농이라고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싸지 않다. 10유로부터 20-30유로까지 다양하다.크레페 쿠킹 클래스   크레페는 프랑스 북서부 브리타뉴 지방 전통 요리로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음식. 프랑스에서 꼭 맛보아야 할 음식으로 파리 거리 곳곳에서 어렵지않게 크레페리에(Creperie)라고 쓰인 크레페 전문 식당을 만날 수 있다. 햄, 치즈, 계란 등을 넣고 짭짭하게 즐기는 살레(sale, 짠맛), 누텔라, 잼, 과일 등을 넣은 쉬크레(sucre, 단맛) 두 가지 타입이 있다. ‘Crepes Cooking Class’에 참여, 보주 광장 근처에 아기자기하고 모던한 쿠킹 스쿨을 운영하는 가비와 카를로스(Gaby & Carlos, @atenteaute)에게 배웠다.   계란후라이도 버거운 요리 ‘무지렁이’들에게 특기 메뉴로 추천할 만큼 만들기 쉽고 폼도 나는 크레페. 밀가루 혹은 메밀 가루를 물과 1대 1.3의 비율로 썩는다. 묽은 느낌이 나면 맞다. 버터를 두르고 뜨겁게 달군 팬에 반죽 한 국자를 둘러 원형으로 얇게 부친다. 점차 반죽이 익으면서 후라이팬과 사이가 들뜨면 그때 반죽을 한 번 뒤집어 익힌다. 완벽하게 익으면 다시 한 번 뒤집어(처음 반죽을 부었을 때 윗면이 위로 오게) 반죽의 반쪽에 체다 치즈와 모짜렐라 치즈, 계란, 햄 등을 올리고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한다. 그 다음 나머지 반쪽을 덮어 익히면 완성! 이때 요령은 계란을 중앙 부분에 올리면 잘 익지 않으니 최대한 반죽 가장 자리로 몰아 익혀야 한다는 점.경쾌하고 유쾌한 요리 선생님 가비. 쿠킹 클래스를 함께한 이들. 왼쪽부터 네달란드에서 온 주스바 운영자, 나, 그리고 요리 선생님 가비와 그녀의 동생 카를로스.체험 프로그램들의 비용은 30유로에서 100유로대까지 다양하다. 한국의 문화센터나 일일 프로그램과 비슷한 가격대. 한 가지 당부할 점은, 만약 프로그램을 신청했다면 적극성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한 호스트가 말하길, 영어 혹은 프랑스어가 서툴러도 상관없지만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주구장창 SNS용 사진만 찍어가는 게스트가 여간 못마땅하다고 했다. 비용을 내고 참여하지만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핵심 목적. 우리에겐 제스처라는 언어도 있는 사실을 기억하자. 노블레스 패션 디렉터로 일하다 14년 회사생활을 접고 얼마 전 훌쩍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머무는 99일 간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