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거라면 뭐든지 받아줄 것 같은 대중문화 신에는 사실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다. 여자 뮤지션은 늙든 젊든 예뻐야 하고 나대지 말아야 하고 섹시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룰 말이다. 하지만 핑크는 데뷔한 날부터 지금까지 그런 속박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파워플한 카리스마를 새디스트적으로 섹스어필한 적도 없으며, 그렇다고 레이스 장식을 피하고 하이힐을 벗어던진 것도 아니다(며칠 전 파파라치 사진 속의 보라색 왕리본 재킷은 진짜 별로였지만). 최근 발매한 그녀의 일곱 번째 정규 앨범 <Beautiful Trauma>도 그렇다. 팔리기 좋은 가십 같은 노래 말고 한 여자의 인생 속 고민을 눌러 담았다.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는 “어떤 트랙들은 결혼생활을 담고 있어요. 그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지만 가끔은 꼴도 보기 싫죠. 1년 가까이 섹스를 안 할 때도 있어요. 그게 관계의 종말일까요? 여전히 서로를 원하는지 헷갈려 하면서 삶은 계속되겠죠”라고 고백한다. 인생 좀 겪어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현실적인 코멘트인지 알 거다. 지난 8월에 먼저 공개됐던 싱글 ‘What about us’에 담긴 트럼프를 향한 정치적 의미 역시 강렬하다. MTV VMAs 마이클 잭슨 뱅가드 어워드에선 자신을 ‘남자애 같아서 못생겼다’고 여기는 여섯 살 딸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젠더와 무관한 자기표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터넷에선 여전히 핑크가 나온 사진에 ‘형님’ ‘여전사’ ‘근육질’ 같은 수식어들이 붙는다. 성공한 뮤지션도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맥스 마틴이 프로듀서로, 에미넴이 피처링으로 참여했지만 소비되는 에피소드는 ‘핑크가 에미넴의 팬이라 용기가 없어 술을 잔뜩 마시고 이메일을 보냈다’는 이야기뿐이다. 음반만 두고 말하면 원래 핑크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겐 5년간 기다린 보람이 있다. 팝과 록 사이의 절묘한 맥을 찾은 듯 찌릿찌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음악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한 핑크가 이 세상을 향해 던진 질문.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 발매와 동시에 아이튠스 세일즈 차트 1위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