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photographer바이커 재킷과 캐미솔 톱은 Zadig & Voltaire. 빈티지 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엘르>와의 첫 만남 시골에서 자라 해외여행을 간 적도, 외국 잡지를 본 적도 없었다. 1993년쯤 김중만 선생님께 배우며 <엘르> 코리아를 처음 봤다.<엘르>와의 첫 작업 20대 후반인 1998년에 스튜디오를 오픈했는데 당시 <엘르> 패션 디렉터인 신유진이 화보 촬영 기회를 줬다. ‘인물사진 잘 찍는 조선희’에서 뭔가 다른 것을 갈구하던 나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 하지만 너무 파인 아트적으로 접근해서 재촬영했던 쓴 기억도….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2000년대, <엘르> 패션 에디터들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만들어간 모든 패션 화보들. <엘르> 패션 디렉터였던 황진영은 내가 무거운 중형 카메라를 트라이포드에 얹지 않고 직접 손에 들고 역동적인 촬영을 하는 데 결정적인 코멘트를 했다.<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특유의 자연스러움. 내가 20년 동안 <엘르>와 작업하면서 가장 잘 맞았던 지점이다.<엘르>가 준 영감 ‘사진은 피사체가 정지된 상태를 찍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고 있는 걸 정지되게 찍는 것이다.’ 내가 늘 하는 말인데 <엘르>와 오랜 시간 작업하면서 얻은 깨달음이기도 하다.25세 <엘르>에게 <엘르>의 정체성을 지키며 비주얼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매거진으로 남아주길.홍장현 photographer코튼 화이트 셔츠는 본인 소장품.<엘르>와의 첫 만남 옷을 너무 좋아해서 다양한 패션지를 섭렵하던 대학교 1학년 때.<엘르>와의 첫 작업 표지부터 화보까지 <엘르>와 많은 작업을 함께했는데 사실 신인 시절, <엘르>에 포트폴리오를 들고 갔지만 거절당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다(웃음).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2013년 1월에 촬영한 ‘모던 패밀리’. 반가운 사람들과의 작업이 즐거웠고 그 속에 두 딸도 등장했다. 영화 <아저씨> 이후 원빈과 온종일 촬영한 2010년 8월호 <엘르> 화보는 원빈이 감독 역할을 하면서 영상도 찍었는데 신선한 시도로 기억된다. 같은 해에 이미숙, 탑과 함께 촬영한 화보는 모델 둘의 즐거운 케미스트리가 기억에 남는다.<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오버하지 않는 톤 앤 매너. <엘르>가 준 영감 작가로서 장점을 보여주기 위해 힘을 세게 주는 것보다 진정성을 담으면서 힘을 빼는 게 어렵기에 <엘르>와 작업할 때 많이 고민했다. 사진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잡지가 <엘르>이기도 하고.25세 <엘르>에게 25년 동안 1등 하며 은근한 포섭력이 무엇인지 보여준 <엘르>, 앞으로도 그 힘을 지켜나가길.이전호 photographer싱글 브레스티드 트렌치코트는 COS.<엘르>와의 첫 만남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본 <엘르> 미국판.<엘르>와의 첫 작업 <엘르> 6개국에 실릴 전지현 표지 촬영이 처음이었다. 촬영 전에 제인 샹이라는 <엘르> 인터내셔널 디렉터를 신유진 <엘르> 코리아 편집장과 함께 횟집 같은 곳에서 만났는데, <엘르> 표지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꽤 많은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2006년 10월, ‘Living on the Street’ 화보. 당시 패션 에디터였던 강주연과 의기투합해 ‘스트리트’ 테마의 패션 화보를 찍고자 전날 밤에 꾼 꿈부터 해외 유명 사진집까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주고받았고 그 결과 신도시 분당 곳곳에서 ‘홈리스’ 컨셉트로 화보를 찍었다. 모델 송주에게 “넌 굉장히 부잣집 딸이었는데, 친척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옛날에 입었던 명품 옷을 걸치며 홈리스로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던 것까지….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 화보 작업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이후 랜덤 비주얼(Random Visual)이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엘르>에 실릴 화보와 <엘르 엣티비>에 실릴 패션 필름을 기획하고 촬영했다. 원세영 패션 에디터와 촬영한 2010년 10월호의 ‘The Crow’, 11월호 ‘When I was young’ 등이 그 결과물이다. 지금도 “우리 이때 잘했네. 그런데 너무 빨랐어” 이런 얘기를 한다.<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홍대 앞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내 청소년기를 지배했던 멋쟁이 미대 누나들. 단발에 겨울이 되면 검정 풀오버와 트렌치코트를 입었던 그들이 바로 ‘엘르’ 아닌가! <엘르>가 준 영감 <엘르>는 개인적으로 간직한, 현실적인 패션 개념과 취향을 충족시켜 주었다.25세 <엘르>에게 매거진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현재가 바로 카오스가 아닐까. 나 역시 디지털로 바뀌는 데 깊숙이 관여된 사람이라 생각도, 하고 싶은 말도 많다. 하지만 25세 <엘르>에게는 성공적으로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짧게 말하겠다.박홍준 film maker박홍준이 입은 생지 데님 재킷은 Levi’s.<엘르>와의 첫 만남 어릴 때부터 미술,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엘르>는 중학생 때인 1995년에 접했는데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기억에 남아 있다. <엘르>와의 첫 작업 2007년, 프리랜서로 <엘르>의 패션, 뷰티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기우를 포함한 신인 남자배우 4명을 포토그래퍼 최용빈이 촬영하는 화보 작업을 영상으로 담았는데, TV에서만 보던 화보 촬영현장이 굉장히 멋지다고 느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최근 <엘르>와 고정 코너를 많이 작업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손대식과 한 달에 한 번 ‘뷰티 트라이’라는 영상을 2년 동안 찍었고, <엘르> 뷰티 에디터 천나리와 ‘뷰티 배틀’이라는 영상도 1년 동안 촬영했다. 스태프들과 오래 작업하면서 느낀 에너지가 좋았다. <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멋. 하지만 결코 놓치면 안 되는 시크함! <엘르>가 준 영감 잡지를 볼 때 전반적인 느낌을 많이 본다. 텍스트가 들어가는 레이아웃이나 화보 전체의 느낌 등. 그런 면에서 <엘르>는 인상적이다. 별 생각 없이 보다가도 문득 시원한 자극을 받곤 한다. 25세 <엘르>에게 50주년, 100주년까지 쭉쭉!안휘만 film maker안휘만의 유틸리티 재킷은 Barbour. 니트 풀오버는 Zara.<엘르>와의 첫 만남 <엘르>를 처음 접한 건 1996년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해서 한창 잡지를 많이 볼 때였다. <엘르>와의 첫 작업 2007년 4월, 디타 본 티즈 내한 영상을 촬영한 것이 첫 작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2007년부터 3년 정도 <엘르>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는데, 굉장히 앞선 시도였다. 당시에는 유튜브도 활성화되지 않았고 시안조차 찾을 수 없었으니까. 2010년에 <엘르 엣티비>를 론칭하면서 직접 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퓨처 나우’라는 영상 등을 만들었다. 지금 보면 촌스러울 수도 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 <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엘르>라는 여자는 너무 예뻐서 말도 못 거는 여자가 아니다. 예쁘긴 한데, 말을 걸 수 있는 정도의 친절함과 현실성. <엘르>가 준 영감 <엘르>의 영상 작업을 통해 ‘어떻게 하면 여자를 더 아름답게 촬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최근 뷰티 영상 촬영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아닐까 싶다. 25세 <엘르>에게 금색 표지의 20주년 책을 만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지났다니! 25년 중 10년을 내가 몸담았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영광이다.전성곤 beauty house photographer차이나 칼라 셔츠는 COS. 브라운 프레임의 안경은 Linda Farrow by Optic.<엘르>와의 첫 만남 대학을 졸업하고 <메종>이라는 인테리어 잡지 일을 하면서 <엘르>를 처음으로 봤다. 첫인상은 패션지 중에서도 프라이머리 타깃층이 어리고 예쁜 느낌! <엘르>와의 첫 작업 1998년 <메종>에서 <엘르>로 옮긴 뷰티 에디터 우희정의 추천으로 <엘르> 뷰티 칼럼의 사진을 촬영하는 하우스가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화보가 아니라 작은 뷰티 컷도 나에게는 모두 소중한 작업이다. <엘르> 뷰티 페이지는 구성과 디자인이 역동적이라서 뷰티 제품이나 텍스처를 촬영할 때도 드라마틱하게 찍는다. <엘르> 해외판을 보며 그들은 어떻게 사진을 찍어서 구성했는지 늘 연구하고 우리만의 방식도 만들어낸다. 프랑스 본사로부터 <엘르> 코리아의 뷰티 사진이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제일 기분이 좋았다. <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엘르>니까 더 잘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욕심과 애정. <엘르>가 준 영감 <엘르> 뷰티 하우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20년 넘게 뷰티 신제품들을 봐왔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뷰티 브랜드가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국이 전 세계 뷰티 시장을 이끌고 있다. 그런 변화를 <엘르>와 함께 현장에서 지켜본 것이 나에게는 큰 자산이다. 25세 <엘르>에게 <엘르>는 늘 일등이었다. 잡지 선두주자로서 앞으로도 잘 이끌고 나갔으면 한다.우창원 fashion house photographer터틀넥 니트 톱은 COS.<엘르>와의 첫 만남 군대에서 <엘르> 코리아 창간 소식을 들었다. 사진 전공자이기에 관심을 가지고, 휴가를 나간 후임병에게 <엘르>를 사오라 했다. 그런데 후임병이 사온 것은 <ELLE>가 아닌 <FEEL>. 나중에 휴가 나갔을 때 직접 <엘르>를 사봤는데 굉장히 새롭고 역동적인 판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르>와의 첫 작업 2000년 초반에 <엘르> 패션 화보를 몇 차례 촬영했고, 이후 2000년 중반에 <엘르> 패션 하우스가 되면서 매달 <엘르>에 실리는 패션 제품 비주얼을 촬영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 <엘르 액세서리>, <엘르 브라이드>, <엘르 데코> 등 <엘르> 확장 버전을 새로 내놓을 때마다 매체 성격에 맞는 조명과 톤을 잡아가는 디렉팅 작업을 했는데, 이런 작업에 무척 애정을 느낀다. <엘르>의 중요한 키워드 <엘르>는 진짜 패션 이야기를 하고, 현재 흐름을 읽기에 가장 수위가 적당하다. ‘실용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엘르>의 힘이고, 보는 사람에게도 굉장한 힘이 된다. <엘르>가 준 영감 과장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줘야 하니까 쉽지 않다. ‘세고 멋있는 것이 안 먹히는 동네도 있네?’ 하는 느낌이다. 또 15년간 <엘르>와 작업하면서 패션 흐름을 이해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소득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패션사진을 찍고 있나 보다(웃음). 25세 <엘르>에게 <엘르>는 매거진이라는 포맷을 가지고 한국 패션을 이끌어왔다. 디지털이나 영상 분야까지 <엘르>가 보여준 적응 속도는 그야말로 ‘넘버 원’다웠다. 패션의 지존이니까, 앞으로도 쭉 하고 싶은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