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에 살지 않았더라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어느새 7개월. 1년을 계획한 밴 라이프에 대해 되짚는다. 밴에 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무엇이었을까?::우린 밴에 살아요,커플의 소리,밴,밴라이프,캠핑카,캠핑,여행,허남훈,김모아,엘르,elle.co.kr:: | 우린 밴에 살아요,커플의 소리,밴,밴라이프,캠핑카

글을 쓰는 오늘 10월 29일은 밴에 산 지 7개월하고 12일이 되는 날이다. 지금은 순천이다. 일과 맞바꾼 지난 3주 사이에 지나가버린 가을이 아쉬워, 가을의 끝을 달려 전라남도 순천에 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제주도에 있어야 했다. 10월 초에 밴을 끌고 제주도행 배에 타려 했던 우리의 계획은 10월 마지막 날 가는 일정으로 바뀌었다.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10월의 시작과 함께 제주도에 가는 일은 밴 라이프를 시작하며 유일하게 세웠던 계획이었는데…. 조금 씁쓸하다.남과 다르게 살기 위해 시작한 밴 라이프가 아니다. 시작하고 보니 남들과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삶에 대해 하나씩 짚고 선택하다 보니 어느새 우린 밴에 살고 있었고, 밴에서 일을 하고, 밴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지난 7개월이 7년처럼 느껴진다. 하루 한 시간, 1분을 꽉꽉 채워 살아내고 있는 듯한 기분 때문이려나. 1년 동안 지내보자 계획한 밴 라이프가 5개월 남았다. 밴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겨울이 두 팔을 벌리고 무서운 기세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싸늘한 기운이 벌써 느껴진다. 바닥 난방과 벙커 침대에 깔린 온수 매트 덕에 땀 흘리며 잘 자고 잘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본 적 없는 겨울에 대한 걱정이 보이지 않는 싸리눈이 되어 날아든다.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서하고 있는 이 고생, 이러지 않았다면, 만약 밴에서 살지 않았다면 지난 우리의 7개월은 어땠을까? 나는 여전히 새로움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하고 새로운 시작과 선택 앞에서 꽤나 오랜 시간 고민했을 것이다. 특히나 관계에선 더욱.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세상, 새로운 마을과 새로운 산, 새로운 논길, 새로운 식당, 새로운 음식, 새로운 바람, 새로운 햇살, 아침, 길, 바다 앞에서 주춤거리며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고심과 신중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소심한 나의 가슴을 옹호하려 들었을 것이다. 밴에 살지 않았다면, 많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함께 벤에서 살고 있는 우리 둘(허남훈 감독과 김모아 작가)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이젠 말보다 대화라는 단어를 꺼내야겠다. 밴에 살면서 우린 대화가 많아졌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대화하며 캐내고 있다. 대화가 많아진 것은 밴에 사는 지금이 좋은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다. 우리라는 도화지를 꺼내 들고 그 위에 마구 그렸다가 색칠했다가 아니다 싶으면 도화지를 쫘악쫘악 찢어버리고 다른 도화지를 꺼내 다시 시작한다. 그 과정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허 감독과 대화하는 시간이 참 좋다.밴에 살지 않았다면 (      )하지 않았을 것이다.숱한 문장이 빈 칸에 들어가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밴에 살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이보다 더 ‘진짜’인 감정과 말은 없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해야 한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 지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는 과정을 거친 후라면 말이다. 이 말을 끝으로 ‘우린 밴에 살아요’ 칼럼 연재를 마치려 한다. 어떤 삶을 선택하든 용기 내어도 괜찮아요. 1년의 밴 라이프를 꽉 채우고 쌓인 이야기들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동안 ‘우린 밴에 살아요’를 지켜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전편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