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에서 보낸 일주일

프랑스 출신의 바텐더와 부티크 주류 수입사들이 뭉쳐 일을 벌였다. 1주일 동안 술 생각만 하는 ‘술 바 위크’

BYELLE2017.10.31

 

술을 자주 마시지만 칵테일을 즐겨본 역사는 없다. 이유는 당도 높은 술을 선호하지 않으며, 한번 마시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미 때문이다. 후자와 칵테일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느냐 싶겠지만, 단연코 있다고 본다. 독한 술에 이것저것 섞어 알코올 냄새와 농도를 희석하고 다른 향미를 가미하는 칵테일은 마시기가 편해 홀짝홀짝 들이켜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취하고 만다. 취하는 게 목적이면 성공한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작정하고 놀러 나간 밤이 추억 하나 새길 틈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 잔에 2만~3만 원을 호가하는 칵테일을 취할 때까지 마셨다가 다음날 아침 숙취만큼 긴 카드 영수증에 머리채를 부여잡은 기억이 있다. 그리하여 가끔 바에 가더라도 위스키 원액 혹은 마티니 두어 잔 마시고 나온다. 그러니 칵테일 문화가 얼마나 화려하게 발전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칵테일 하면 마티니, 다이키리, 모히토, 마르가리타, 마이타이, 싱가프로 슬링, 김렛, 맨해튼 정도만 읊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모두 올드 패션 클래식 칵테일이란다. 최근에 가본 바에는 이들 칵테일 이름은 아예 메뉴에 명기돼 있지도 않았다. 그 자리를 차지한 낯선 이름의 칵테일은 바에서 고안한 시그너처 메뉴라고.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알아챈 바텐더가 능숙하게 제안한 칵테일은 용기부터 담음새, 맛과 향 모두 예상을 빗겨나간 데다 심지어 식감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도 품고 있었다. 물론 그 바들의 인테리어와 분위기 높은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쿄 긴자나 맨해튼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사실 그런 점이 마음 한편을 살짝 불편하게 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지만 정작 개성은 없는 인상. 눈앞에 있는 칵테일도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라지만, 조금 부지런하게 뒤져보면 인테리어만큼이나 비슷비슷한 칵테일이 줄줄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던 중 바를 중심으로 열리는 행사 소식을 들었다. 서울 전역에 있는 바 35곳에서 9월 11일부터 1주일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린다는 것. 매체에 자주 소개되는 바 외에 수준 높으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보유한 바가 서울에 많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게 주목적이라 했다. 서울에서 유행하는 비슷비슷한 느낌의 스피크 이지 풍의 바가 아닌, 전문가가 검증해 실패 확률이 낮은 바를 한 번쯤 경험하고 싶었다. 그 선별의 역할을 누군가 발 벗고 나서 해준 것이다. 그것도 벽안의 외국인이! 기획부터 진행까지 도맡은 밥 루이종(Bob Louison)은 프랑스인으로 바 문화가 발달한 전 세계 도시를 돌며 바텐더 경력을 착실히 쌓은 인물로 서울을 기점으로 아시아권에서 바 전문가로 활동한다. 자신이 족적을 남긴 도시 중에서 특히 서울에 애착을 느낀다는 그는 이번 ‘술 바 위크(Sool Bar Week)’가 5년 전부터 염원한 결과라고 한다. “바텐더와 대중 모두 즐길 수 있는 일을 벌이고 싶었어요. 한국인들이 바 업계를 좀 더 이해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길 바랐죠. 그리하여 서울 전역에 있는 바를 고루 섭외하여 그들에게 행사 기간 동안 하나 이상의 특별 칵테일을 개발한 후 그것을 1만5천 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권했어요. 사람들이 여러 바를 돌며 좀 더 다양한 칵테일을 맛보며 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요.” 밥 루이종은 사람들에게 서울 바 투어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서울은 짧은 시간에 높은 수준의 바 문화를 이뤄낸 도시예요.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바 외에도 주목할 만한 바들이 너무나 많죠. 그런 바 위주로 소개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1주일 동안 지도를 참고해 바 투어를 하며 특별한 경험을 쌓길 바라요.” 마침 날씨도 딱 좋다. 밤이면 선선한 바람이 낮 동안의 더운 열기를 식혀 가볍게 걸으며 칵테일의 세계를 음미해 볼 만하다. 행사에서 관심을 끄는 또 다른 부분은 후원사의 낯선 이름들이다. ‘디스틸러리 드 파리(Distillerie de Paris)’ ‘헤이먼스(Haymans)’ ‘트로아 리비에르(Troi Rivie?res)’ 등은 진이나 보드카, 럼 등의 기주(基酒)로 보편적인 주종임에도 생소한 브랜드들이다. 그 외 아예 낯선 주종의 알마냑, 샤르퇴르즈 등도 눈에 띈다. 모두 프랑스의 고도주로 칵테일 기주로도 활용되는 술이다. 아무래도 기획자인 루이종이 프랑스인이다 보니 프랑스 술이 많이 포함돼 있을 터. 아무튼 그 흔한 디아지오, 페르노리카의 술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루이종이 워낙 실력과 인사이트를 가진 전문가인 데다 큰 조직이 할 수 없는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는 그의 생각이 마음에 와 닿아 참가하게 됐습니다.” ‘술 바 위크’의 메인 스폰서인 프랑스 주류 수입사 꼬또(Coteaux) 김주희 대표의 말이다. 꼬또는 파리의 유일무이한 증류주 공장인 ‘디스틸러리 드 파리’ 등 희소성 있고 특별한 술을 다루는 부티크 주류 수입사로 남다른 애정과 친밀성이 깃든 바를 소개한다는 ‘술 바 위크’의 취지가 자신들이 걷는 길과 방향이 맞아 선뜻 후원에 나섰다. ‘술 바 위크’가 열린 1주일은 낮에도 바에 조명이 밝았다. 바가 운영하지 않는 낮 시간을 활용해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내가 술 바 위크에 참여했을 때는 바인하우스를 운영하는 한국인 바텐더 에릭 킴의 샤르트뢰즈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름만큼 낯선 향취의 술에 다양한 음료와 식재료를 섞었을 때 어떻게 맛과 느낌이 변하는지 시음을 통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냥 마셨을 때는 도수가 40도 이상으로 높은 데다가 약초를 넣어 향이 다소 투박하고 직선적인 느낌이었는데, 거기에 바텐더의 손길이 닿자 이전에 없던 부드러운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생겨났다. 그 명징한 변화에 바텐더의 역할을 새삼 깨달았다. 바텐더는 바 뒤편에 선 요리사이자 조향사인 셈이다. 그 외 미국 금주법이 바텐딩에 미친 영향과 럼의 재발견, 전통주 등이 바 종사자는 물론 일반인의 구미를 당겼다. 취재하며 머무는 시간이 늘수록 나는 낯선 언어와 불편한 의자, 높은 진입 장벽 등 부정적 요소로 기억됐던 바가 한결 더 편하게 인식됐다. 아니나 다를까 루이종이 말했다. “자주 올수록 편안함이 느껴져요. 낯선 공간이 주는 이질감을 떨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죠. 바를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쌓이는 바텐더와의 끈끈한 유대감은 집에 가서도 큰 위안으로 남을 거예요.” 마감 기간이 겹쳐 어영부영 놓친 마스터 클래스가 못내 아쉬워 루이종에게 다음 기회가 있기를 기약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번 마감이 끝나면 특별히 이름난 곳이 아닌, 가까운 동네 바에 들러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맞는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리라.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게 꼭 소주와 고등어여야 할 이유는 없으니.

 

 

캘리그래피를 활용한 ‘술 바 위크’의 로고.

 

 

샤르트뢰즈 베이스의 칵테일을 선보이는 에릭 킴 바텐더.

 

 

청담동 B28에서 열린 트리스탄 스티븐슨의 마스터 클래스.

 

 

<The Curious Bartender> 책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출신 바텐더 스티븐슨.

 

 

행사를 주최한 밥 루이종과 메인 스폰서인 꼬또의 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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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김영재
  • 글 이주연
  • 사진 신규철
  • 디자인 박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