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성의 셰프들이 한국을 찾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양한 국적의 셰프들이 꾸준한 내한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피부에 와닿지 않은 이유는 그들을 초청한 주체가 특급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특급 호텔들은 2000년대 중반, <미쉐린 가이드>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즈음 요리사를 ‘셰프’라 부르며 가열차게 해외 스타 셰프들을 한국으로 모셔왔다. 그중에는 듣는 순간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뛰게 하는 이름도 있었다. 2007년 내한한 피에르 가니에르는 말할 것도 없다. 당시 그를 초청한 롯데호텔이 1년 후 그의 레스토랑을 차릴 거라는 계획을 알 턱이 없었던 터라 가니에르의 방문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당시 가니에르의 갈라 디너 가격은 50만원. 제아무리 엥겔계수가 높아도 대중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가격이었다. TV나 신문을 통해 전파된 그들의 방한 소식은 대중을 설레게 했지만, 정작 그들의 요리를 입안에 넣고 음미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렇듯 특정 소수를 위한 특권으로 여겨졌던 유명 셰프의 내한이 점점 더 많은 대중을 향하고 있다. 그것도 ‘팝업 레스토랑’이라는 식문화의 새로운 신을 통해. 바로 얼마 전에는 <미쉐린 가이드>보다 더 큰 신뢰를 받고 있는 <레스토랑>의 ‘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 아시아 편에 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켜온 방콕 소재의 인도 레스토랑 ‘가간’의 오너 셰프인 가간 아난드가 내한했다. 이 정도 스펙이면 주최 측이 당연히 특급 호텔이라고 여기겠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의 팝업 멤버들을 불러들인 건 작은 출판사였다. 요리 전문지 <라망>의 전 편집장이자 ‘맛있는 책방’의 대표인 장은실 씨가 취재하며 쌓은 친분으로 아난드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아난드가 흔쾌히 이를 수락한 것이다. 장소는 호텔28 명동의 레스토랑을 인수해 한창 새 단장 중인 ‘월향’이었다. 월향 입장에서도 지점 오픈 소식을 알리고 세계적 명성의 셰프와 교류하는 기회가 됐을 터. 당장 페이스북 ‘맛있는 이벤트’ 페이지에 들어가 참가를 신청했다. 식사 비용은 1인당 5만원. 참으로 아름다운 가격이다. 샐러드는 프렌치 레스토랑 ‘톡톡’의 김대천 셰프가,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시는 아난드와 그의 오랜 친구이자 후쿠오카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후쿠야마 셰프가, 디저트 하나는 타이완에서 온 셰프가, 다른 하나는 모던 한식 레스토랑 ‘밍글스’의 파티시에가 준비했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듯 글로벌한 식탁, 그것도 레서피만 글로벌한 게 아니라 요리한 사람이 눈앞에 실재하는 식탁과 마주하는 경험은 실로 감격스러웠다. 게다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각국에서 온 실력 있는 셰프들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니. 물론 1인당 30만원짜리 식사도 양일간 진행했다. 파인다이닝이 아닌 일반 식당에서 1인당 30만원짜리 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었는데 모든 자리가 일찌감치 매진됐다. 장은실 대표는 이번 행사에 대해 “아시아 셰프들이 화합하는 장”이었다고 정의했다. “단순히 한국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후쿠오카, 방콕, 나아가 전 세계에 한국 셰프와 아시아 셰프를 소개하는 신호탄이 됐으리라 확신합니다.”  팝업의 목적은 때에 따라 천변한다. 아난드 셰프를 주축으로 한 팝업이 아시아 셰프들을 화합하게 만들었다면, 때로는 대중에게 새로운 메뉴를 평가받거나 메뉴에 따라 주방을 시범 운영하는 값진 경험을 선사한다. 장은실 대표가 조력한 임정식 셰프의 팝업이 후자에 해당한다. 임정식 셰프는 지난 1여 년간 전통 방식의 곰탕과 평양냉면, 어복쟁반 등을 내놓는 팝업을 차례대로 선보였고, 그 경험들이 쌓여 ‘평화옥’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식당을 여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 임 셰프는 평화옥 오픈을 준비 중이다. “경기가 침체되면서 파인다이닝 셰프들이 세컨드 브랜드 레스토랑 오픈 등으로 새로운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에요. 그들에게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험 무대가 필요하지요. 새로운 음식이 시장성이 있는지, 대중의 관심을 끄는지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 처한 셰프들에게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차원에서 팝업을 추천하곤 해요.” 장은실 대표의 말이다. 이태원 경리단길에는 아예 팝업을 위한 맞춤 공간이 생겼다. 이름도 ‘공공빌라’. 한 달을 기점으로 새로운 셰프에게 주방을 내주는 공공빌라는 일종의 ‘셰프 인 레지던시’를 표방한다. 지난여름에는 이곳에서 ‘온지음’이 팝업을 진행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전통 음식 연구팀 온지음은 기존 공방에도 식사 공간을 운영하지만 원 테이블이라 예약이 좀처럼 어려운 데다가 가격대도 10만 원을 호가한다. 음식을 맛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경험으로 자리 잡은 온지음이 공공빌라에서 1만~3만 원대의 식사를 선보이면서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한편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게 컨셉트를 수정한 경우도 있다. 박준우 요리 전문가가 운영하는 ‘알테르에고’는 오픈 이래 코스 메뉴만 고수했다. 그러던 지난여름 분위기 쇄신을 위해 팝업을 진행하며 단품을 몇 가지 선보였고, 반응이 기대보다 뜨거워 아예 상시 메뉴에 단품 요리를 추가했다. 국내에 팝업 문화를 전파하는 데 열심인 장은실 대표는 가장 큰 원동력을 “더 많은 사람에게 미식의 경험치를 쌓아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다. 파인다이닝에서 식사하는 일을 장소나 가격적인 측면에서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는 얘기다. ‘Pop Up’이 얼마나 많은 대중을 ‘Pop Eye’하게 할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