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는 이유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이라 매일 달리면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진다. 어제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달리게 한다::달리기,운동,건강,헬스,뷰티,엘르,elle.co.kr:: | 달리기,운동,건강,헬스,뷰티

3시간도 못 자 퉁퉁 부은 얼굴로 택시를 타고 10km 마라톤 출발 지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5분이었다. 스머프색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네온 라이트 블루빛의 공식 티셔츠를 입어 한층 더 어두워진 안색으로 안내 부스를 향해 갔다. 누락된 번호표를 받기 위해서였다.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서서 생각했다. ‘아, 도대체 이걸 왜 신청했지?’ 마라톤 대회 참가를 신청한 건 한 달 전의 일이다. 별생각 없이 친구 따라 신청했는데 그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졌다. 도대체 왜 꼭두새벽(프리랜서에게 아침 8시는 일반인의 새벽 5시다)부터 아무도 하라고 하지 않는 달리기를 굳이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10km씩이나 말이다. 게다가 기록 측정 칩이 붙어 있는 번호표가 택배에서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엔 아예 뛰기가 싫어졌다. 여의도공원에 가득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앞으로 15km 혹은 10km의 달리기가 기다리고 있는데 저토록 즐거워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진 얼굴을 하고 나는 왜 여기서 굳이 달리겠다고 서 있는 것일까.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난 초여름, SNS에 기록을 꾸준히 올리자 사람들이 말했다. “달리기 좋아하시는구나! 몰랐어요.”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아뇨, 싫어서 하는 건데요.” 나는 오래달리기를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전교 1등 수준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중학교 2학년 체력장 때 나는 출발선에 서지 않겠다며 정말로 엉엉 울었다. 체력도 지구력도 없는 주제에 지는 것만큼은 싫어했던 나에게 속도로 줄 세워지고, 게다가 내가 뒤에 서야 하는 오래달리기는 지옥과도 같았다. 그때 체육 선생님이 오래달리기가 싫어서 도망치는 학생은 봤지만 우는 학생은 처음 봤다고 했다. 나는 거의 모든 체육 종목을 싫어했지만 그중에서도 오래달리기가 가장 싫었다. 그러니까 싫어해서 달리는 것이다. 성인이 된 뒤로 달리기를 한 건 5년 전의 일이다. 미래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던 시기였다. 문득 ‘이럴 거면 건강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달리기로 했다. 헬스장에 등록할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기에 달리기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다리는 튼튼하니까. 심지어 처음에는 러닝화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아무거나 편한 신발을 신고 달리면 되는 거 아니야? 물론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5년 전 철없이 밑창이 얇은 운동화 끈을 매고 있는 내 어깨를 붙잡고 “젊은이, 한번 나간 무릎 관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라고 말해주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렇게 일단 달리다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것보다 달리기가 더 싫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나아졌다. 좋은 일은 좋아하니까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싫은 일은 정말 모든 것이 싫을 때만 할 수 있다. 적어도 이렇게 싫은 일을 해낸 나를 칭찬할 수 있으니까. 더 이상 나빠질 수조차 없을 정도로 나쁜 상황일 때 어쩌면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달린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고 싶어진다는 것은 내 삶에서 그리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지금 나는 달리기를 할 정도로 힘들다는 광고와 같은 셈이니까. 지난 초여름에는 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매일 가능하다면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상황이 어느 정도로 나빴냐 하면 모든 SNS를 지우고 열흘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려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비가 오든 태풍이 불든 아무리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와도 나는 운동화 끈을 묶고 한강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이전의 달리기와는 좀 달랐다. 우선 달리기를 한 자신을 별로 칭찬해 주고 싶지 않았다. 대신 달리는 게 그렇게 싫지 않았다. 꾸준히 달리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달리기만의 끈질기고 오래된 매력을 알게 됐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면 온갖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온갖 생각을 하면서도 다리를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생각이 하나씩 사라져간다. 오직 오늘은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혹은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런 생각이 들면서부터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된다. 달리기는 정직한 운동이라 매일 달리면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진다. 속도가 조금 빨라지거나 조금 멀리 달릴 수 있는 식이다. 내 삶과 생활이 얼마나 엉망인지에 상관없이 달리기에서만큼은 언제나 어제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계속 달리게 한다. 그렇게 열흘을 달린 뒤에도 일주일에 이틀 혹은 사흘씩 계속 한강으로 나갔다. 그러다 얼떨결에 마라톤 신청까지 하고 얼굴이 부은 스머프가 된 채 여의도공원에 서 있게 된 것이다. 멀뚱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래도 다양한 스포츠 브랜드가 개최하고 있는 시티 마라톤은 나만 모르는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듯했다. 다정한 커플부터 숙취 해소 음료 광고판을 몸통에 붙인 사람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진지하게 앞을 보며 스트레칭을 하는 10대까지, 온갖 사람들이 한데 모여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제야 짜증이 풀리며 생애 첫 마라톤을 앞두고 있는 현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앞으로 약 1시간 동안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두 발로 땅을 박차고 달려서 정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일. 레이스가 시작됐다. 나는 두 가지 기준을 세우고 달렸다. 하나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 또 하나는 멈추지 않을 것. 아주 느리게라도, 뒤돌아보지 않으면서 계속 뛰겠다는 목표는 흙먼지 가득한 중학교 운동장을 달렸던 20년 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때는 기록이, 내 위치가 너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달리지 않는다.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이나 내가 무리의 어디쯤에 있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나만의 페이스로 달릴 것. 어쩌면 이건 내가 살고 싶은 삶이기도 하다. 달리는 동안에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계속해서 달리거나 혹은 멈추거나. 나는 계속해서 달리기를 선택했다. 1시간 9분 37초. 나의 10km 기록이다. 결승선을 통과하며 멋지게 트랙에 쓰러지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역시 상상과는 달랐다. 나는 남은 힘으로 마지막까지 걸어 친구들과 만났다. 자신이 어디까지 뛸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번 이전보다 나아지는 달리기가 좋아서 마라톤까지 뛰게 된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깔깔 웃으며 10km 완주 메달을 자랑하는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렸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달리는 건 더 이상 울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내가 달리기를 하는 것은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어느 순간에 내 몸이 이토록 정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달리기를 한 그만큼 건강한 사람이 되어, 달리기가 끝난 이후를 살아내기 위해서. 윤이나(작가. 책 <미쓰윤의 알바일지>, JTBC 웹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