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 경제 불황으로 패션계의 타격은 심각하다. 소비를 줄이는 1순위, 바로 패션이다. 그렇다 보니 매출은 급격한 하향 곡선을 그리며 실적 부진의 쓴맛을 보게 됐다. 결국 어느 순간부터 패션계는 팔릴 만한, 당장 사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런웨이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쇼가 끝난 직후 바로 구입할 수 있는 현장 직구 시스템까지 생겨나 즉각적인 매출 신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엄청난 양의 재고로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며 패션 기업들은 새로운 형태의 아웃렛을 기획해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안 모색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패션계의 다른 한쪽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없어서 못 파는, 심지어 론칭 전부터 구매 희망자들이 캠핑에 돌입해 특급 작전을 방불케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대박’ 아이템이란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만큼 누구 백, 누구 목걸이처럼 갖고 싶어 안달 난 아이템은 이미 사라졌다. 그런데 지난 6월 30일 대반전이 일어났다. 소문만 무성하던 루이 비통×슈프림의 팝업 스토어 오픈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어떤 아이템에도 욕심 없던 에디터까지도 이 컬렉션만큼은 손에 쥐고 싶었으니! 에디터라는 직위(?)를 이용해 팝업 스토어 오픈 10일 전 루이 비통 홍보 팀에 문의했다. “혹시 슈프림 좀 빼줄 수 있을까요? 가방 하나만이라도 빼주면 좋겠는데….” 답변은 0.1초의 틈도 없이 단호하게 ‘No’였다. 그 누구에게도 특혜를 주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번엔 루이 비통 고객 센터에 전화해 오픈할 팝업 스토어의 위치를 문의했다. “죄송하지만 당일 오전 공식 SNS와 웹사이트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오픈 당일 팝업 스토어의 위치를 공개해 모든 이에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브랜드의 취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꼭 손에 넣고 싶은 욕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과연 서울에서 루이 비통×슈프림 팝업 스토어의 스폿은 어디일까? 무작정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로 향했다. 유레카! 문을 굳게 닫은 채 팝업 스토어 공사가 한창임에도 이미 주변에는 수백 명의 캠핑족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줄을 선다 해도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전 세계 단 8개의 팝업 스토어가 6월 30일 동시 오픈이라면 파리의 팝업 스토어는 시차상 한국 시간으로 7월 1일. 8시간의 시차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파리의 팝업 스토어 오픈 당일 아침, 파리의 지인을 출동시켰다. 아뿔싸! 파리의 경쟁은 서울보다 100배쯤 극심했다. 건물 주변은 온통 캠핑족에 뱅글뱅글 둘러싸여 오늘 안에는 매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이것이 진정 사실인가? 루이 비통×슈프림이 대체 뭐길래 전 세계를 혼돈(?)에 빠지게 만드는 것일까! 태어나 이토록 갖고 싶었던 것이 또 있을까? 사고 싶어도 제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이토록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아무나, 누구나 가질 수 없는, 마치 구원행 열차 티켓처럼 엄청난 신분 상승을 한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내재된 욕망을 슬쩍 건드린 고도의 심리 마케팅 전략이 통한 것. 레어 아이템을 공유하는 한 온라인 카페의 게시판은 한동안 슈비통 이야기로 도배됐다. “왜 이렇게 조금 만든 거죠? 어렵게 팝업 스토어에 들어갔는데, 갖고 싶은 건 이미 솔드아웃이었어요. 많이 만들면 비통도 더 대박 날 텐데….” 수백 개의 댓글이 있었는데, 그중 정곡을 찌르는 답변이 눈에 띄었다. “슈비통이 언제, 어디서, 누구나 살 수 있었으면 님도 안 샀겠죠?” 무심코 웃어넘긴 댓글 속에 의미심장한 팩트가 담겨 있다. 요즘 같은 불황기에 3~4일 밤을 지새우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을 산다는 것은 흥미로운 문화 현상이다. 슈비통뿐 아니라 9월 21일 전 세계 론칭을 앞둔 발렌시아가의 트리플 S 스니커즈도 마찬가지. 2017 F/W 런웨이에 오른 운동화는 세 개의 러버솔이 합쳐진, 일명 ‘어글리 스니커즈’로 불린다. 이 희한하게 생긴 운동화는 지난 1월 파리에서 선보인 후 바로 웹사이트에서 프리 오더를 시작했다. 보자마자 “이건 사야 해!”를 남발했지만, 운동화 ‘따위’를 프리 오더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지난 6월, 혹시 입고되었나 보기 위해 매장에 방문해 보니 슈비통보다 더한 답을 들었다. “언제 입고될지 모릅니다. 이미 선주문한 고객이 많아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요. 저희 매장에만 400분 넘게 주문해 왔어요. 이미 결제하신 고객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런데 그분들도 제품을 수령한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오히려 웹사이트에서 주문하는 편이 빠를 것 같네요.” 답변을 듣자마자 프리 오더 창을 열었지만, 이미 마감! 90만 원이 넘는 운동화가 매장에 입고되기 전에 솔드아웃이라니! 발렌시아가 홍보 팀에서는 운동화 론칭 소식과 함께 자부심 가득한 문구를 보내왔다. ‘패션쇼 진행 직후 매장으로 문의가 쇄도했으며, 매장에 입고되기 전부터 오더한 수량 전부가 프리페이드 솔드아웃(prepaid sold out)된 진귀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오더한 수량 전체가 매장에 진열되기도 전에 매진이라니. 이번에도 발렌시아가의 고향, 파리의 상황은 어떤지 매장에 전화를 해봤지만 엄청난 인기의 ‘귀하신’ 트리플 S에 대한 정보를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 없다는 뉘앙스였다. 파리 매장에서는 “워낙 공정이 까다로워 극소량밖에 만들 수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이 일어날 거예요. 행운을 빌게요.” 행운? 운동화 하나에 ‘행운’이라는 표현이 적당한 것일까? 공정이 얼마나 까다롭길래 하이패션의 핵인 쿠튀르 하우스에서 운동화 수량조차 맞출 수 없다는 건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지하에서 대성통곡할 노릇이다. 발렌시아가의 트리플 S 스니커즈가 공식적으로 론칭하기 전, 가장 먼저 뉴욕의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과 파리 쿠튀르 컬렉션 기간 중 꼴레트에서 프리 오더를 진행해 순식간에 솔드아웃 행진을 기록했다. ‘우리 트리플 S의 위력을 봐’라고 갖고 싶어 안달 난 마니아의 불타는 욕망에 기름을 부었다.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제품이 나오기 전부터 중고 사이트에는 리셀 행진을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 인기에 힘입어 자신감을 얻었는지 계획에도 없던 여성 컬렉션과 매 시즌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이라는 공식 발표까지 했다. 구찌의 홀스빗 슬리퍼와 빈티지 로고 티셔츠에 이어 샤넬의 투 톤 슈즈, 디올의 슬링백, 알라이아의 펀칭 백, 아디다스의 이지부스트 지브라, 베트멍의 레인코트 등 없어서 못 파는 아이템의 면면을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제품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략적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시장이 제대로 호응하고 반응한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신분 상승한 레어 아이템들을 활용한 명민한 마케팅 전략이 패션계의 새로운 소비 문화를 만들고 있다. 아직 트리플 S를 구하지 못했다면 9월 21일 발렌시아가 매장에 한번 들러보시길. 행운을 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