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강박’, 그것이 알고 싶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쿠션을 두드리지 않고선 집 앞도 못나가고, 바쁜 아침, 화장을 하기 위해 지각을 감행하기까지? 이런 사소한 강박적 행위들이, 우리의 삶과 정신을 갉아먹는 ‘뷰티 강박증’이라는 정신 질환이라면::뷰티,습관,뷰티습관,뷰티강박증,엘르,elle.co.kr:: | 뷰티,습관,뷰티습관,뷰티강박증,엘르

참 피곤하게 산다 누구나 한 번쯤 분주하게 화장하는 자신에게 이런 말 해봤을 거다. 얼굴이 새하얀 탓에 두드러졌던 주근깨가 꼭 외국 아이 같다며 친구들의 주목을 받은 시점부터 나에게도 피곤한 미션이 생겼다. 숨바꼭질하듯 주근깨를 꽁꽁 감추는 것. 덕분에 사춘기 시절부터 컨실러는 파우치 속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고 서너 시간의 수면 시간밖에 보장받지 못했던 고3 시절에도, 졸린 눈으로 컨실러를 두드렸다. 감추려는 마음이 온 얼굴을 잠식한 걸까? 어느 순간부터 풀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집 밖을 나서는 게 두렵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불쏘시개로 피부를 들쑤시는 레이저 시술을 받고 방콕 생활을 인내한 후. 내게 마침내 쌩얼의 시대가 도래하나 싶었지만, 웬걸? 유전인지, 알 수 없는 주근깨가 계속해서 나타났다. 이 개미지옥 같은 주근깨! 없애고 가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집착을 버리고자 평소 알고 지내던 전문 상담가를 찾았다. 강박 탈출 상담가를 찾아간다는 이례적인 소식에 지인들도 하나씩 자신들의 고민을 보탰다. 친구들 사이에서 ‘프로 지각러’로 통하는 J양은 “나는 아침 출근 시간에는 분명 지각인 걸 알면서도 쌩얼로는 도무지 못 나가겠어. 결국 지각을 감수하면서까지 화장하고 출근한다니까”라고 털어놓았다. 모두가 동조의 웃음을 보일 때 든 무서운 생각. J양처럼 외모에 대한 집착이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면 심각한 게 아닐까? 실제로 외모에 대한 생각이 일상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치우치게 되면 우리 몸에 하나의 자극으로 작용하게 된다. 다이어트로 예민해진 신경이 거식증이나 폭식증 등의 식이 장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뷰티’와 관련한 끊임없는 고민 역시 심각한 외모 강박이나 심리적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과도한 성형 수술, 뼈만 남은 앙상한 몸매 등 TV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들이 이 정도가 심해지면 벌어지는 일이다. 이음 세움 심리상담센터 상담 전문가인 숙명여자대학교 심리학과 고문정 교수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강박이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현대인이 겪는 정신 질환 중에 가장 고치기 어려운 병이 강박이에요. 심할 경우 정신분열증보다 치유하기 힘들죠.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는 걸 알면서 고치지 못한다면, 심각하다고 봐야죠.” 뷰티 강박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전문가들은 강박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의 ‘특성’을 ‘단점’으로 인지한다는 것(마치 내가 주근깨가 있다는 하나의 사실을 ‘가려야 할 못난 주근깨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심리학자이자 필라델피아 인지행동연구소 소장인 주디스 S. 벡은 이에 따른 해결법으로 ‘자기 객관화’를 제안한다. 남과 비교해 나를 비난하는 생각과 감정을 적은 후, 객관적인 판단 하에 부정적인 평가를 제거하는 방법. 이를테면 ‘내 외모가 남에게 해를 준 적 있는가? 외모의 결점이 사회생활에 큰 장애가 되는가? 나의 주근깨가 나라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일까?’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제3자의 시선으로 콤플렉스를 하나씩 지우다 보면 점점 기분이 가뿐해진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었다는 후련함과 함께. 기록된 강박들을 꾸준히 체크하면 개선의 여지도 있다. 다리를 떠는 습관을 어느 순간 알아챈 후 의식적으로 고칠 수 있듯. “말하자면 미에 대한 강박도 습관이에요. 의지를 가지고 하나씩 고치면 어느 순간 강박이 사라질 수 있죠. 다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여유를 가지는 게 좋아요.” 각자의 내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여성’인 우리가 노출된 사회 문화적 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뷰티 강박증: 외모에 사로잡힌 문화적 강박증이 소녀들과 여성들을 어떻게 다치게 하는가?>의 저자 노스웨스턴 대학의 심리학 교수 르네 엔젤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기도 하죠. 우린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어요.” 남자아이들에 비해 여자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눈이 예쁘다” 혹은 “보조개가 귀엽다” 등의 외모 피드백을 자주 받는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 엔젤른이 만난 일곱 살짜리 소녀부터 60세 여성에 이르는 21명의 인터뷰이 중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보다 자신의 외모를 더욱 혹독하게 평가했다. 한편 ‘한국’이란 배경도 중요한 문화적 요소다. “외국 여성들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여름에도 풀 메이크업을 한 여성들을 보고 놀라곤 하죠. 립스틱 하나만 발라도 될 걸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위에 메이크업을 덧바르니 답답해 보이지 않겠어요? 게다가 더우면 속옷을 안 입을 수도 있는데 ‘노브라’라면 한국인들은 학을 떼니까.” 한국 여성이 빠르게 변화하는 뷰티 트렌드에 유난히 예민한 것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남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가끔 그 칭찬이 파워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그곳이 런웨이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항상 완벽해 보여야 한다는 건 분명 엄청난 부담이자 고통이니까. 가끔 사회의 시선에 곤두서 있는 스위치를 끌 필요가 있다. “뷰티 강박은 일종의 배경 잡음(Background noise) 현상과 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남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데, 나만 유독 거슬리는 소리가 있죠?” 엔젤른의 말처럼 ‘웃프’게도 애써 공들여 화장하고 머리를 만진들 혹은 아이라인이 삐뚤어졌든, 행여 속옷을 입지 않더라도 주변인들은 관심이 없을 수 있다. 엔젤른도 “누구에게나 각자의 아름다움이 존재하죠.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라고 덧붙인다. 서방의 마이웨이 걸 레이디 가가도 ‘본 디스 웨이’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Just love yourself and you’re set. Cause god makes no mistakes(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면, 그걸로 된다. 신은 실수하지 않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