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2017년 버전으로 재탄생할 만큼 철 지난 과거가 된 것인가. 무슨 이야기냐고 ? 90년대 추억 속의 유물들이 타임슬립해 바로 우리 옆에서 그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90년대 장면을 빛바랜 사진첩의 기록처럼 추억으로만 묻어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힙합 전사처럼 허리 밑으로 내려 입었던 큰 청바지, 케이트 모스가 사랑했던 슬립 드레스, 커트 코베인과 코트니 러브 커플에 의해 환골탈태한 구질구질한 체크 셔츠 등 90년대 주역들이 2017 S/S 런웨이 무대로 소환됐다. 90년대 전설의 걸 그룹이자 걸 크러시의 원조인 TLC와 스파이스 걸스의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경쟁구도도 이번 컬렉션에서 다시 맞붙었다. 건강한 에너지의 네온 컬러와 활동적인 조거 팬츠, 반짝이는 나일론 팬츠, 투박한 스니커즈 등 그 시절 이들이 불어넣은 스포티 룩 열풍이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부활한 것. 90년대로의 회귀는 패션뿐 아니라 영화 속에서도 일어났다. 9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에이즈 운동 국제단체 액트업의 실화를 담은 영화 <120 비츠 퍼 미닛 120 Beats Per Minute>이 대표적이다. 90년대에 불어닥친 에이즈 위기를 상기시킨 이 영화는 제70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작품으로 90년대의 어두운 면을 담고 있다. 한편, 90년대에 유행한 TV 시리즈는 진작에 마지막 에피소드 방영을 끝냈지만 현재까지 아이코닉한 드라마로 회자되고 있다. <클루리스>, <비버리힐즈의 아이들>, <멜로즈 플레이스> 등을 떠올려보라. 드라마 속의 보잘것없어 보이고 심지어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지금도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영광의 자리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돌고 도는 패션계의 특성과 맞물려 디자이너들에게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는, 절대 죽지 않는 캐릭터도 존재한다. <클루리스>의 알리시아 실버스턴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녀의 플리츠스커트 룩은 스쿨 룩의 모법 답안으로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다.트렌드 전문가인 노에미 브아예(Noe′mie Voyer)와 클레어 사바리(Claire Savary)는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오늘날의 40대들에게 90년대 리바이벌 현상은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은 듯한 느낌을 주죠”라고 말한다. 이들의 생각처럼 90년대에 젊음을 즐겼던 X세대에게 90년대 열풍은 지나간 청춘의 즐거움을 맘껏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오랜 시간 동안 유스 컬처의 전유물로 곁눈질만 해오던 슈프림이 하이패션의 상징인 루이 비통과 협업함으로써 이들은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스케이트보드 룩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좀 더 용기를 낸다면 자칫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끌로에의 트랙수트 한 벌을 쫙 빼 입고 90년대의 추억을 만끽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90년대 향수가 없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Baby one more time’을 부르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전성기 때처럼 미니스커트와 초커, 브라톱을 입는 것일까? 사진으로만 보던 부모들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서?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이 누렸던 90년대 문화를 핀터레스트나 텀블러, SNS를 통해 보고 배우면서 이를 빈티지 패션이라고 여깁니다”라고 노에미 보아예와 클레어 사바리가 진단했다. 유행하는 스타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빈티지로 눈을 돌렸던 경험에 비춰본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90년대 패션을 왜 이렇게 갈망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90년대 스타일은 ‘쿨’한 패션에 반응하는 젊은이들의 감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90년대는 사회 발전과 긴밀한 미디어 테크놀로지 시대의 시작을 알린 때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보고 인식하며 유통하는 것들의 원천이 90년대에 담겨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같은 맥락에서 90년대로 떠난 과거 여행은 오늘날의 근원이 된 90년대를 추억함으로써 우리 스스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90년대를 향한 동경이나 이끌림이 스타일로 구현된 게 아닐까? 우리는 지금 지나칠 만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SNS 시대에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보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줄 이미지로 선별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타인의 잣대를 거울 삼아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눈치보지 않고 즐겼던 90년대의 자유롭고 ‘쿨’한 감성에 환호를 보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여기에 그때 그 시절의 호기롭던 사회적 분위기를 되찾고 싶은 바람을 담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