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전쟁이 나면 여자들은 생리대를 어떻게 공수할까, 라는. 한국은 분단국가이고, 아직까지도 국내 사드 배치 문제로 시끄러운 상태이니 이런 생각이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더군다나 이제껏 ‘전쟁이 난다’는 풍문으로 피난 가방까지 챙겨놓는 지인들도 있었으니, 그 가방에 도대체 생리대를 몇 개나 챙길 수 있을까도 궁금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구호품에서도 생리대가 빠질 뻔한 나라다. 지난해 국민안전처 재해 구호용 응급구호세트에서 여성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리대가 제외되었다가 논란이 일자 다시 추가시켰다. 목록에 면도기는 있다.  생리컵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물건이 아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초기 종 모양의 생리컵이 처음으로 특허 받은 때가 1932년이다. 95년간의 역사를 품은 물건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군들이 이 생리컵을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서히 의문이 풀린다. 만에 하나 전쟁이 나면 생리컵 하나만 챙기면 되겠구나, 싶다.생리컵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도구다. 작은 컵 하나로 생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리컵은 신통방통한 물건처럼 보인다. 초기 생리컵은 고무 재질이었다. 1987년 미국 ‘키퍼’사에서 라텍스 생리컵을 개발했으며, 이후 영국에서 실리콘 소재로 ‘문컵’을 개발해 판매해왔다. 현재는 인체에 무해한 의료용 실리콘으로 제작되고 있다.생리컵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해외 여성들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국내 여성들의 ‘생리컵’ 체험기도 적지 않다. 생리컵 사용 방법은 이렇다. 실리콘 재질의 컵을 접어 질에 넣으면, 탄성이 있는 컵이 질 내에서 저절로 펴진다. 컵에 생리혈이 모아지면, 홀더를 잡아당겨 이를 버리는 방식이다. 사용한 컵은 3~4시간에 한번씩 물로 씻어서 다시 사용한다. 따라서 작은 컵에 담긴 자신의 생리혈을 보기가 거북하다는 사람도 있고, 이를 씻는 과정이 최악이라는 코멘트도 있다. 무엇보다 컵을 빼고 씻으려면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변기 옆에 세면대가 있어야 하는 환경도 필요하다.그간 직구로 생리컵을 구입해 사용하면서 행복해졌다는 사용자들의 후기를 보면 생리 기간이 빨리 끝나고 위생상 매우 쾌적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자신에게 맞는 컵 크기를 찾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만나는 자유는 생리대를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하니 사용해보고 싶다생리컵의부작용이 낮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화학 물질로 생리혈을 빨아들이는 탐폰이 간혹 독성 쇼크 증후군을 일으키는 것과 다른 상황. 또 4만~5만원 대의 생리컵 하나로 10년~15년 이상 쓸 수 있다. 국내에서는 왜 이제야 이 제품 판매가 허용된 것인지 안타깝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국내 벤처 기업 ‘룬랩’은 생리컵에 센서를 달았다. 컵에 모인 생리혈의 양과 혈색, 월경 주기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룬컵’을 개발한 것. 이 업체는 미국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로 2억원을 모금한 바 있다.생리컵이 국내에 알려지게 된 서두는 길었다. 탐폰처럼 개인의 성향에 따라 생리컵 사용에 대한 호불호는 나뉠 것이다.사용 자체에 대한 불편이 있지만 국내 생리대 가격이 비싼 것을 생각하면 경제적이라서 생리대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교육을 통해 보급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어마어마한 생리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자들에게 또 하나의 선택이 가능해졌다는 점. 더불어 생리컵이 회자되면서 생리 문화가 수면 밖으로 나왔다는 점. 그것이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