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아프리카로 가자!

원시 시대의 숨을 내쉬는 아프리카로 떠난 패션 여행

BYELLE2017.07.09

몇몇 디자이너들이 페미니즘과 정치적 이슈에 대해 ‘We Should All be Feminists(디올)’나 ‘The Future is Female(프라발 구룽)’ 등의 메시지를 남기며 적극적인 의사 표현에 힘을 쏟고 있을 때, 다른 쪽에서는 디자이너들이 태초의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을 담아 패션 판타지의 전율을 전하기 위해 지구본을 돌렸다. 디자이너들의 손이 멈춘 곳은? 바로 원시적인 정취와 함께 적도의 뜨거운 열기가 피어 오르는 아프리카! 사실 아프리카 여정이 뎀나 바잘리아와 고샤 루브친스키의 유스 컬처와 함께 급부상한 러시아처럼 생경하고 ‘쿨’내 나는 핫 스폿은 아니다. 자연으로의 회귀는 갔던 여행지로 다시 가는 것처럼 익숙한 행선지이긴 하니까. 그럼에도 신비로운 태곳적으로 떠난 아프리카 여정은 트렁크를 꺼낼 때마다 설레는 여행처럼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하다. 울창한 수풀을 지나 정글 속 낙원을 만나고, 원시부족의 화려한 문화에 도취되며, 모래바람과 함께 사막을 따라 걷는 패션 여정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첫 번째 아프리카 여행지는 콩고 정글이나 마다가스카르 속의 열대우림처럼 녹음이 짙게 깔린 ‘정글’이다. 이번 시즌에 펼쳐진 패션 정글은 건강한 매력의 애슬레저 룩을 통해 동시대적인 감각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먼저 호텔 포토키를 정글로 탈바꿈한 발망 쇼장으로 가보자. 쇼를 알리는 조명이 꺼지자 쭉쭉 뻗은 야자수 사이로 핀 조명이 런웨이를 비추며 달빛이 어스름한 한밤의 정글 같은 런웨이가 펼쳐졌다. “이번 컬렉션에 시대 정신과 자신을 모두 담았어요.” 그의 부름에 답한 모델들은 올리비아 루스테잉이 명명한 정글을 헤치는 발망 아미(Balmain Army; 발망 군단)’ 그 자체였다. “불필요한 갑옷은 모두 벗어버릴 겁니다.” 발망의 정글 여행은 그의 시그너처 스타일인 크리스털이나 진주가 촘촘히 박힌 장식이나 몸을 옥죄는 보디컨셔스의 드레스를 런웨이 뒤편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부드럽게 흐르는 컷아웃 드레스와 메탈릭한 카프탄, 파이톤 팬츠 등을 채웠다. 나타샤 폴리는 밀림 속의 강인한 여전사이자 오프닝 모델로서 레깅스와 반바지, 로브를 걸친 애슬레저 무드의 사파리 룩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뒤를 이어 지지 하디드, 도첸 크로스, 스텔라 맥스웰 등 이름만 들어도 건강미가 철철 넘치는 모델들의 행진은 발망 여전사의 강인함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한 올리비아 루스테잉의 전략이었다. 나뭇잎 프린트의 보머 점퍼와 숲 속의 이끼 같은 텍스처를 살린 펜슬 스커트, 앵무새가 날아들고 개구리가 뛰어든 스웨터 등을 선보인 막스마라 역시 이번 시즌 종착지로 열대우림을 선택했다. 여기에 발망처럼 애슬레저 감각을 접목하기 위해 레깅스뿐 아니라 아노락 점퍼, 선바이저까지 두른 채 정글로 향할 채비를 단단히 마쳤다. 발망이 정글 숲으로 우리를 초대했다면 막스마라는 살아 숨쉬는 밀림을 패션으로 옮겨와 정글의 정취를 입고 즐기게 한 것! 


혹시 1997년에 수석 디자이너로서 디올 컬렉션을 선보인 존 갈리아노의 첫 번째 컬렉션과 패션의 전설로 남은 알렉산더 맥퀸의 첫 번째 컬렉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알고 있는가? 둘 다 원시부족의 문화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점이다. “내 컬렉션에는 부족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 알렉산더 맥퀸은 살아생전 선보인 컬렉션 전반에 원시주의를 짙게 드리웠다. 지방시의 리카르토 티시 역시 원시 부족의 문화를 빅토리언 양식이나 고딕 양식, LA 스케이트 문화 등과 접목해 드라마틱한 패션 세계로 안내했던 트라이벌 룩의 마스터였다. 내로라하는 패션 대가들은 화려한 부족의 문화를 하이패션으로 불러들여 일탈을 꿈꾸듯 강렬한 판타지를 선사했다. 이번 시즌도 예외는 아니다. 선봉장은 오래전부터 트라이벌 룩을 선보여 온 프로엔자 스쿨러의 듀오 디자이너다. 시공간을 초월해 마사이족과 그들의 전통 춤인 아두무를 함께 춰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접목된 부족 문화의 흔적이 새하얀 쇼장과 대비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인타르시아 짜임의 비비드한 컬러 배색은 용맹함을 드러내는 부족과 뉴욕의 에너제틱한 매력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파리에서 트라이벌 패션의 1인자로 군림하던 리카르토 티시가 지방시를 떠난 지금, 2018 S/S 컬렉션을 시작으로 프로엔자 스쿨러가 파리로 둥지를 옮기니 이제 둘이 파리에서 트라이벌 패션의 마스터 자리를 차지할 날도 머지않았다. 이자벨 마랑이나 겐조, 알렉산더 맥퀸 등 쟁쟁한 트라이벌 패션 지지자들이 아직도 파리에 두루 포진되어 있긴 하지만. 이번 시즌, 스텔라 맥카트니 역시 이 대결 구도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만한 실력을 갖고 있다는 걸 확인시켰다. 원시부족, 애슬레저, 남성복이라는 3박자를 컬렉션에 담아낼 뿐 아니라 부족들의 주술적인 댄스에 취한 듯한 모델들의 군무를 피날레 무대에 선보인 것. 세계적인 안무가 겸 연출가인 블랑카 리의 진두지휘 아래 모델들은 손을 쭉 핀 채 손바닥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둥글게 줄지어 춤을 췄다. 부족 문화와 패션이 만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춤사위는 오전 10시부터 쇼를 바라보던 패션 피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킬 만큼 기분 좋은 잔상을 남겼다. 이와 같은 트라이벌 룩의 공세를 보다 쉽게 연출하고 싶다면 일명 ‘제인 버킨 백’이라고 불리는 ‘바스켓 백’의 열풍을 데일리 룩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야자수 잎에서 나오는 질긴 섬유인 라피아를 엮어 만든 바스켓 백은 자연친화적인 무드로 사는 부족의 토속적인 삶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게다가 이번 여름, 호리병 모양의 바스켓 백을 선보인 로지 애슐린이나 앙증맞은 폼폰 장식을 단 나나케이의 화려한 바스켓 백처럼 다채로운 디자인과 함께 바스켓 백이 서머 ‘잇’ 백의 자리를 차지 하지 않았나. 




자, 이제 긴긴 아프리카 여행 중 마지막 코스인 사막으로 떠날 타이밍이다. 디자이너들은 흙먼지를 맞으며 사하라 사막을 걷는 노마드족에게서 힌트를 얻은 스타일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로에베는 패치워크부터 슬릿 디테일이 더해진 카프탄에 가공하지 않은 듯한 질감의 소재로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살렸으며, 랄프 로렌은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는 우아한 노마드족의 여신처럼 샌드 컬러의 드레스 향연을 선보였다. 루이 비통은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둘러쓴 터번 모양의 모자를, 르메르는 부족이 건넨 구슬가방을 들고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을 걷는 듯한 노마드족의 모습을 살렸다. 특히 아크네 스튜디오는 사하라 사막의 입구로 통하는 모로코의 베르베르 부족이 널어놓은 러그를 싹둑 잘라 만든 듯한 이국적인 패턴의 카프탄 룩 퍼레이드를 유럽 난민 사태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글로벌 이슈를 패션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낸 건 아니지만 스웨덴 태생의 디자이너로서 난민 수용률 1위 국가인 스웨덴이 앓고 있는 문제를 아크네 스튜디오 식으로 표현했다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선보인 카프탄 룩은 유럽으로 가기 위해 사막을 건너는 난민들의 모습과 절묘하게 오버랩됐으니까.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디올로 떠나기 전 2016 F/W 발렌티노 캠페인을 촬영하기 위해 마사이족이 살고 있는 케냐로 떠났다. 태초의 한 장면으로 돌아간 발렌티노의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는 “아프리카 촬영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의 아름다움이 교류할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여기에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유럽의 미적 기준이 그리스의 아름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문화적 교류에 대한 이해가 문화와 패션을 향상시키고 새로움을 배울 수 있는 눈을 뜨게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캠페인을 촬영한, ‘아프칸 소녀’의 사진으로 유명한 스티브 맥커리 포토그래퍼 역시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한 이유가 글로벌 패션 속에 아프리카 문화를 생생하게 담기 위함이었다. 아프리카로 향한 패션을 돌고 도는 패션 공식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할 수 없는 이유가 이들의 대화 속에 담겨 있다. 문화와 문화가 만나 사회적 잣대에 의해 비주류로 분류된 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결국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를 누리는 패션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로 떠난 패션 여행 덕분에 우리는 빌딩 숲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자연을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니 이번 여름, 뜨겁고 찬란한 아프리카의 선율에 몸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 마지막 원시의 땅으로 향한 당신의 시선이 대지를 깨우는 태양처럼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Keyword

Credit

  • 에디터 이혜미
  • 사진 IMAXtree.com/GETTYIMAGESKOREA/SPLASHNEWS
  • 디자인 전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