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마음 가는 대로 바퀴 가는 대로

캘리포니아에서 한적한 샛길 같은 곳만 찾아 떠난 로드 트립

BYELLE2017.07.06


작은 마을에 가보고 싶다. 문득 이런 허기가 마음을 간질였다. 유학을 빌미로 LA의 일원이 된 지 7년. 그 사이 뉴욕이나 시애틀 등 알만한 도시 위주로 여행을 다닌 탓에 나타난 증상이었다. ‘나만 알고 싶은 맛집’처럼 수소문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당도할 수 있는 조그만 마을. 그런 곳을 좌표 삼아 무작정 구글 맵을 훑었다. 유레카! ‘찾아냈다’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라던가. 유레카(Eureka)라는 소도시에 눈길이 멈췄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5시간 거리. 인근에는 펀데일(Ferndale)이란 마을도 있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금세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이었다. ‘차로 한 번 가보자’ 마음 가는 대로 몸이 가는 여행에는 로드 트립이 제법 잘 어울리는 그림일 것 같았다. 인생에는 완벽한 일탈이 가능한 샛길이 존재하지 않는 다지만, 여행에선 발길만 돌리면 샛길로 빠질 수 있다. 내비게이션을 무시하고 직감대로 운전해서 길을 잃어도 왔던 길을 돌아가면 그만이다.



운전하는 길에 발견한 독특한 풍경.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쉬어갔다.


마침 땅덩어리가 가늘고 긴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는 자동차로 여행하기 좋은 구색을 갖췄다. 엄격하게 재단된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눈앞에 태평양이 펼쳐지고 내륙에는 웅대한 협곡과 사막이 놓여 있다. 때로는 그림 같고 때로는 태곳적의 지구처럼 황량하기까지 하다. LA에서 유레카까지는 10시간. 쉬지 않고 차로 꼬박 달렸을 때의 얘기다. 네 바퀴로 행하는 이 여정에 동행인은 없었다. 산 호세(San Jose)를 쉴 겸 거쳐가는 곳으로 정했다. 



산 호세의 장난감 가게에서 만난 귀여운 트롤 인형.


산 호세에서 구입한 ‘올드보이’ LP 앨범. 커버 아트가 한 눈에 들어왔다. 


산 호세는 실리콘 밸리를 이루는 지역 중 하나다. LA와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굳이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내밀했다. 나는 장난감을 무척 좋아하는데 산 호세를 검색하던 중 이런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가게를 발견한 것이다. ‘Time Tunnel Toys’라는 이름의 장난감 가게는 ‘키덜트’를 위한 작은 천국이자 보물창고였다. 70~80년대에 출시된 장난감을 비롯해 피규어, 만화책, 잡지, 오락기, 포스터, LP 등이 차고 넘쳤다. 도서관의 서가를 서성거리듯 1시간 넘게 가게 안을 파헤쳤다. 그런 내게 주인 아주머니가 전단지 하나를 건넸다. 20년 넘게 운영해 온 그곳에서 매년 토이 쇼와 코믹 북 쇼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산 호세에 다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



하프 문 베이로 가는 길목.


19세기 지은 빅토리아 양식의 칼슨 맨션. 유레카의 랜드마크로 현재 회원제 클럽으로 쓰이고 있다.


‘램버트, 헨드릭스 & 로스’ LP 앨범.


다시 유레카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산 호세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하프 문 베이(Half Moon Bay)라는 조그만 해변 도시에서 숨 고르기를 했다. 해 질 녘 바다의 낭만은 보너스였다. 그곳에서 2시간을 더 채워 도착한 유키아(Ukiah)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유키아에서 2시간 반, 유레카에 입성했다. 유레카는 한적한 항구 도시에 가깝다. 규모가 작아 둘러보기에도 좋다. 마천루 병풍이 하늘을 가리는 일도 없다. 시원하게 뻥 뚫린 하늘에서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온화하고 여유로운 정경은 운치를 더했다. 인적이 드문 광장은 여백의 미학이 느껴졌다. 가족 여행자를 태운 마차가 노면의 굴곡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광장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화평한 적막함을 깬 건 골목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커플. 그들의 멜로디에 맞춰 한 청년이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었다. 제법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 이 판타지 같은 광경에 심취해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빅토리아풍의 건물들이 띄엄띄엄 늘어선 유레카 거리 곳곳에는 서점과 카페, LP 가게가 포진해 있다. 그 안에서 마을 사람들은 자리를 잡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난감만큼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1971년에 문을 연 LP 가게 ‘The Works’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어김없이 주인 아저씨가 다가와 몇몇 음악을 추천해 줬다. 방대한 음악적 지식을 늘어놓는 주인장의 입담에 홀렸다. 빈손으로 나올 리 없다. 1960년에 발매된 재즈 보컬 트리오 ‘램버트, 헨드릭스 & 로스(Lambert, Hendricks & Ross)’의 LP 앨범을 구입했다. 그들의 하모니는 유레카의 고풍스럽고 우아한 풍경과 잘 어울린다.



궂은 날씨에도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유레카의 중심가. 주민들의 옷차림이 동네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유레카에서 잠시 들린 카페.


유레카의 중고 서점 ‘Booklegger’.


유레카에서 1박을 하고 30분 거리의 펀데일로 향했다. 비구름이 여기까지 쫓아왔는지 아기자기한 풍경을 간직한 마을에도 비가 내렸다. 이윽고 삭풍이 날을 세웠다. 그 기세에 눌려 눈앞에 보이는 카페로 황급히 들어갔다. 카페 안에는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몇 테이블 건너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자기 몸의 20배가 넘는 소파를 통째로 차지해 아침잠을 자고 있었다. 이를 깨우거나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카페 상호명은 ‘Mind’s Eye Manufactory & Coffee Lounge’. 이름 그대로 목공 작업실과 카페가 문 하나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어김없이 주인 부부와 말을 섞었다. 아내가 카페 운영을 맡고, 남편은 카누를 만들며 가끔 목공 수업을 연다고 했다. 원래 목공소만 있는 자리였는데 부부는 마을 주민들이 언제든지 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카페를 열었다는 사연까지 덧붙였다. 어쩌면 펀데일의 온화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우려낸 미덕일지도 모른다. 굳이 이 말이 아니어도 이번 여정에서 가장 흡족한 시간을 꼽으라면 펀데일에서 보낸 이틀이다. 복숭아 색이 배인 빅토리아풍의 숙소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농후하게 무르익었고, 마을 역사를 기록한 사진들로 장식한 오래된 햄버거 가게는 성인 2~3명이 들어서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당당하고 기품을 잃지 않았다. 



펀데일의 중심가.


펀데일의 숙소.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사실 찬란한 태양과 푸른 바다, 자유로운 감성으로 상징되는 캘리포니아에서 한적한 샛길과도 같은 유레카와 펀데일은 그리 매력적이거나 특별한 여행지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여행길에 오르는 것 자체가 특별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유레카와 펀데일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자동차 여행으로 나를 이끌었고, 안개로 뒤덮인 마을에서 눈뜨고 한 폭의 대형 수묵화 같은 곳을 거닐며 잊지 못할 기억들을 채집하도록 인도했다. 익숙하고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생애 첫 로드 트립을 통해 경험하고 일깨운 이치다. 유레카! 여행의 기쁨을 누리는 방법은 이처럼 단순하고 단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