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빛나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다시 빔 벤더스를 만난다. 이 거장의 이름은 1970년대 회고전과 신작 <팔레르모 슈팅>사이에 놓여있다. 세월이 흘러도 그의 영화는 변함없이 길을 좇는다. 그것이 인생이든 예술인든, 삶의 회한이든, 모든 것이 길 위에서 피고 사라진다. ::빔 벤더스, 페터 한트케, 로비 뮬러,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도시의 앨리스, 미국인 친구, 팔레르모 슈팅, 캄피노, 데니스 호퍼, 잘못된 움직임, elle.co.kr, 엘르, 엣진:: | ::빔 벤더스,페터 한트케,로비 뮬러,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도시의 앨리스

"골키퍼는 공이 라인 위로 굴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1970년 페터 한트케의 은 이렇게 화두를 던지며 시작한다. 이 책은 시작부터 참으로 이상하다. "마침 오전 새참을 먹고 있던 현장감독이 그를 힐끗 올려다보는 순간 그는 그것을 해고 표시로 이해하고 공사장을 떠났다. 그는 길에서 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옆으로 지나가는 차는 택시가 아니었다. 사실 블로흐가 택시를 부르려고 팔을 높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났다." 이 짧은 몇 개의 문장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블로흐의 이상한 행동을 묘사하는 글은 시작부터 종잡을 수가 없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그런 걸까? 우리에게는 연극 으로 알려진 이 작가의 글은 난해했다. 읽는 사람을 시종일관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당시 한트케의 나이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평론가 카를하인츠 보러는 이 책을 "지난 십 년간 독일어로 쓰인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더 재미난 것은 스물다섯 살의 뒤셀도르프 출신의 젊은이가 이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가 바로 훗날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로 떠오른 빔 벤더스였다. 빔 벤더스의 1970년대 영화는 , 등이 국내 시네필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영화광들이라면 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지만, 그 동안 필름으로 직접 볼 수 없었던 영화다. 이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70년대 영화청년 시절을 돌아보다'라는 주제로 '빔 벤더스'전이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 25일까지 열린다. 한나 쉬굴라와 나스타샤 킨스키가 주연한 (1975), (1976) 등도 만날 수 있다. 의 경우, 한트케의 소설과 벤더스 영화를 비교해보면 더욱 재미가 있다. 사실 벤더스의 영화에서 블로흐는 불안이나 혼돈이 깃든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블로흐(아서 브로스)는 그보다는 무료하고 무기력해 보인다. 극장과 여관과 술집만이 그의 안식처다. 심지어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쫓기는 불안이나 양심조차 없어보인다. 원작에서 인간이 지닌 실존의 불안과 골키퍼의 불안을 연결시키는 지점이, 영화에서는 상당히 약화되어 있다. 목적없이 도착한 시골 마을에서 그는 불안을 일으키는 존재라기보다는, 평범한 마을에서도 일어나는 사건들을 조용히 목격하는 제3자의 위치에 가깝다. 원작과 가장 다른 지점은 미국 대중문화에 동경이 슬쩍 담겨있는 부분들이다. 미국에 대한 이야기(엽서나 동전)는 소설의 힘이 아니라 벤더스의 사적인 관심사를 상당히 반영한 부분이다. 영화의 엔딩은 소설의과 거의 똑같다. 블로흐가 골키퍼의 고뇌를 말하는 부분에 이르러서야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이렇게 친절한지 이해할 수 있다. "문학은 언어가 가리키는 사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라고 말하는 한트케의 작품에서는 블로흐의 말과 행동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안에 인간의 소외와 불안이 담겨 있다. 영화 속의 블로흐는 다소 혼란을 일으키지만, 그저 일상을 거니는 무기력한 인물일 뿐이다. 한트케가 벤더스 영화의 시나리오에 참여했지만, 영화가 주는 쓸쓸한 심상은 한트케보다는 로비 뮬러의 영상에 의지하고 있다. 물론 벤더스와 계속 호흡을 맞춘 70년대 로비 뮬러의 카메라가 그것을 입증했다. , , , , 초기 빔 벤더스 영화의 주제는 아버지 세대를 잃어버린(혹은 지워버린) 아이들의 트라우마로 귀결 된다. 1970년대 로드무비 삼부작으로 전후 세대의 고통과 방황을 포착하다가 멀리 미국으로 날아가 (1984)에까지 이른다. 미국에 대한 동경이 비판으로 이어지는 2000년대에는 LA를 배경으로 , 를 내놓았다. 그후 상처의 치유와 가족의 회복이라는 테마를 (2005)에서 실현하는 걸 보면, 미국 로드무비 삼부작을 완성시킨 셈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벤더스의 최신작 을 보면 거의 37년 동안 벤더스는 같은 주제에 천착하며 고민해왔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기서 유명 사진작가 핀(캄피노)는 한시도 쉴 새 없이 일을 한다. 우연히 유령을 보는 사건을 겪으면서 그의 삶은 더욱 공허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팔레르모로 향하고, 이 곳에서 카메라로 시칠리아의 풍경을 담으려는 순간 불현듯 화살의 공격을 받는다. 핀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죽음의 사신(데니스 호퍼)과 만나 삶의 의미를 다시 되찾는다. 팔레르모에서 벤더스는 자신의 분신 핀과 함께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에너지를 축적한다. 그는 피나 바우쉬에세 바치는 뮤지컬 의 후반 작업이 끝나면 곧 도쿄로 날아갈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에게 오마주를 바쳤던 (1985)의 공간 말이다. 광기의 베르너 헤어초크가 오지나 밀림, 심지어 바닷 속까지 들어가면서 극단의 모험을 즐겼던 것처럼, 벤더스는 언제나 '도로 위의 왕'이었다. 그는 결코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방랑의 영혼을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