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우리 집.안방과 발코니를 터서 확장한 거실.화이트 큐브처럼 연출한 이 집의 유일한 방이자 침실.침실 안은 최대한 미니멀하게 꾸몄다. 사무 공간과 휴식 공간을 분리한 책장.인테리어 소품은 최대한 밝은 톤으로 통일했다.주방 통창이 시원한 개방감을 준다.종로 09번 마을버스 종점에 자리 잡은 옥인연립은 6가구가 사는 3층짜리 건물이 총 12동 있는, 나름 대단위 연립이다. 마음에 걸리는 점은 1980년대 초반에 지어진 낡은 건물이라는 사실. 지난겨울 부동산을 찾았을 때 매물로 나온 옥인연립은 두 집이었다. 하나는 2년 전에 전체를 수리하여 깨끗했고, 다른 하나는 곧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1주일가량 고민한 끝에 부동산에 연락을 취했을 때 전자의 집은 이미 나간 상태였다. 다행히 남편과 나의 선택은 후자였다. 부동산 사장님은 우리의 선택을 몹시 의아해 했다. 옥인연립은 이미 집 전체를 수리해서 들어온 젊은 부부가 많았다. 처음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왔을 때도 부동산 사장님은 수리 중인 집을 두어 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낡은 집을 안중에 둔 이유는 완공 이래 단 한 차례도 손보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집은 공사 단위가 큰 탓에 거래가 계속 성사되지 않아 2년 넘게 비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은 집을 택한 이유는 우선 수리한 집의 모양새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 집에 웃돈을 주고 들어간다고 해도 적지도 않는 돈을 들여 추가공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더 싼 집을 사서 바닥부터 천장, 벽까지 다 털어내고 제로 상태에서 우리 취향대로 채워 나가자 싶었다. 물론 믿는 구석도 있었다. 4년 전 회사생활을 접고 가로수 길에 술집을 차린 경험이 있었다. 그때 텅 빈 공간을 수리하고 채우면서 생소한 희열을 느낀 바 있었다. 그건 마치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1000만 원 단위의 쇼핑을 하며 느낀 즐거움과 같았다. 믿고 맡길 만한 설계 소장님도 곁에 있었다. 그리하여 덜컥 귀신 같은 집을 샀고, 한 달 반여 동안 설계와 시공을 빠듯하게 거쳐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장만했다. 나는 전형적인 아파트 키드다. 결혼하기 전까지 33년 동안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어릴 때 주택에 사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내게 엄마는 아파트를 벗어나면 겪게 되는 불편함을 나열했다. 내 주변에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네 살 때부터 대학 진학 때까지 기거했던 집은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여서 단지가 크고 동과 동 사이의 간격도 넓었다. 그래서 아파트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다. 문제는 대학 진학 후였다. 먼저 서울에 올라와 있던 오빠와 살림을 합쳐 잠원동에 있는 29평짜리 신축 아파트에 들어갔다. 학생 신분에는 과분한 집이었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겨우 구색을 맞춘 조그마한 놀이터를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감싼 아파트는 답답했다. 게다가 동네 친구도 없었으며, 있다고 한들 같이 술잔을 기울일 아늑한 술집 하나 없었다. 오빠가 장시간 집을 비우는 날에는 집이 17층임에도 지하에 갇힌 듯 갑갑증이 가슴을 짓눌렀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 신혼집 후보지 중에는 살고 있던 잠원동 아파트도 있었다. 내가 욕심을 내면 가족들이 못 이기는 척 열쇠를 내줄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일단 무조건 아파트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생각난 곳이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들렀던 서촌이었다. 경복궁 역에서 내려 가장 먼저 발견한 부동산에서 맨 처음 보여준 빌라에 우리는 신혼 살림을 풀었다. 아파트를 벗어난다는 건 생각만큼 거창하지 않았다. 마치 20대 때 생각으로는 서른이 되면 큰일이 날 것 같지만, 실제로 달라지는 게 없듯이. 오히려 수십만 원에 달하는 관리비를 내지 않고, 경비원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했다. 한 번 아파트를 벗어나니 용기가 났다. 빌라도 좋지만, 또 다른 주거 환경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이전에 살던 빌라는 집 전체가 뻥 뚫린 스튜디오 구조가 마음에 들었으나, 인왕산 자락과 너무 밭아서 햇빛이 잘 들지 않았다. 온종일 집 안이 어둑했고 그로 인해 습기가 찬 집에 오면 나는 거의 누워서 생활했다. 당시 기분 전환이라고는 잠들기 전에 맥주 한잔하며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었다. 그 생활을 반복하다 체중도 많이 불었다. 지어진 지 40여 년 된 옥인연립은 미디어에서 가난한 동네로 왕왕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 서촌에서 옥인연립은 꽤 인기 있는 주거 공간이다. 일단 아파트가 없는 서촌에서 동이 12개나 되는 옥인연립은 거의 유일한 대단위 주거 단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슬한 집 앞 골목을 벗어날 때마다 남쪽을 향한 옥인연립이 온몸으로 햇빛을 받는 모습을 황홀경에 빠져 지켜보곤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12개 동 중에서도 정남향의 동,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층인 3층 집을 택했다. 옥인연립 3층의 또 다른 매력은 넓은 채광 면적뿐 아니라 천장을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3층 집을 샀다고 하자,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옥인연립은 3층이 진리’라고 했다. 게다가 앞쪽으로 여러 동이 빼곡함에도 비탈 면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시야에 걸리는 게 없을뿐더러 골목 입구에 뿌리 내린 신령스러운 느티나무도 한눈에 보인다. 집 안 전체를 하얗게 칠하고 벽을 철거한 후, 안전상의 문제로 남겨둔 기둥에 밝은 노란색을 칠한 집의 색감을 완성하는 건 창밖 고목의 푸르름이다. 이 집에 오고 나는 좀처럼 침대에 등을 붙이지 않는다. 소장님이 고재를 켜서 만든 문짝을 두른 싱크대에서 많은 시간 동안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집을 쓸고 닦으며 고양이 화장실을 치운다. 그리고 가끔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밖 풍경과 따스한 빛이 스며드는 집안을 찬찬히 바라본다. 그렇게 나는 집을 가꾸는 사람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