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오늘도 점집을 찾았다한 달에 한 번, S는 용한 점집을 찾아 다니며 상담을 한다. 친구들은 S에게 왜 그렇게 미래를 궁금해하냐고 핀잔을 주지만, 실제로 S는 점쟁이를 찾을 때마다 묻는 건 매번 같다. “저는 잘 할 수 있을까요? 이 길이 맞는 걸까요? 마음에 드는 남자는 만날 수 있을까요?” 식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나 자신에 대한 불신,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토로할 뿐. 수십 번 점을 본 결과, 어떤 점쟁이의 예언도 미래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그녀에겐 점을 보는 시간은 일종의 심리 상담시간과 같다. 한바탕 대화를 섞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 때문. 나와 이해관계가 1도 없는 점쟁이에게서 듣는 답변은 S가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괜찮은 결말이다. 불확실한 현재에 위안이 되니까. 그래서 S는 오늘도 새로운 점집을 찾는다. #2. 고민을 그림으로 그려드립니다테렌스 에두아르테는 ‘100일의 비밀’(100 DAYS of SECRETS)(www.trnz.co/100-days-of-secrets)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다. 100일 동안 100명의 낯선 사람들의 말 못할 비밀을 듣고 그림을 그려주는 것. 한 인물의 뒷모습만 그려 넣은 채, 익명으로 사람들이 전한 고민을 짤막하게 남겨 놓는다. 어린 시절 학대 받은 기억,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술에 의존한다는 무거운 고백부터, 남자친구의 전여친을 질투하고 있다는 귀여운 고민까지 다양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에두아르테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그에게 사연을 전달하는데, 대다수가 꼭 그림을 그려주지 않아도 괜찮다며 만족한다는 것. 즉, 그들의 비밀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에두아르테의 프로젝트를 빌미로 자신의 마음의 짐을 누군가와 덜고 싶은 마음가짐은 전세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같은 마음이다.#3. 당신의 기억을 보관해드립니다타인의 기억을 ‘대신’ 보관해주는 메모리 키퍼,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직업이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타라재이라는 필명의 송재영 작가가 그 주인공. 기억을 보관하고 싶어하는 사람, 의뢰자를 만나 상대의 기억에 녹아 들어가 그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타라재이는 타자기로 의뢰인의 기억을 한 문장으로 적어주면, 물물교환처럼 작은 소지품, 기억 관련 물건, 현찰 등 기억 보관료를 놓고가면 기억보관소 이용 완료다. 완벽한 타인에게 내 기억을 전한다는 건, 사실 지나간 추억을 돌아보는 것 보단 고민이 훨씬 많다고 한다. 한 문장의 글을 통해 타인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 그녀의 블로그에는 기억보관소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타라재이가 상대의 기억, 고민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글을 남겨 놓았다. 타라재이 블로그(www.taarajay.com)에 남겨진 기록을 읽으면서, 기억보관소에 기억을 맡기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기에 모르는 사람에게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세세하게 털어 놓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4. 나미야 상담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청년문화허브에서 진행하고 있는 ‘나미야 상담소’ 프로젝트(www.namiya.kr)는 익명으로 고민 상담사들과 손편지로 소통하는 창구다. 자신의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고 위로 받고 싶을 때, 나미야 상담소 소통 창구에 편지만 넣어 놓으면 된다. 자원활동가들이 고민 편지에 자필로 정성스레 답장을 적어 나미야 상담소에 다시 넣어두는 방식으로 상담이 진행된다. 답변이 꼭 전문적이지 않아도, 낯선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청년문화허브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이유 역시 인간관계가 단조로워지고, 인간적 연결 고리가 점점 끊어져가는 고독 사회에서 높은 자살률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시작했다고 한다. 광주에서 시작해 우편을 통해 전국에서 고민 상담을 받고 있는 이곳. 친구, 부모님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이야기를 편지로 꾹꾹 눌러 써가면서 자기만의 위안 방법을 찾는다.#낯선 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다는 것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이야기를 쉽게 털어 놓는 이유를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점. 사회적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적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인생의 목표와 우선순위가 관계 형성과 유지 보다는 취업 등 자기 성공에 몰두하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불안과 두려움이 커져간다. 이런 이유로 점, 사주 등을 통해 위로 받거나, 나와 이해관계가 겹치지 않는 완벽한 타인에게 비밀을 털어 놓는 것이 오히려 안정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SNS의 보편화 역시 이런 지인에게 비춰질 나의 모습, 소문이 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매개체가 되었을 뿐. 그렇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불안해진 인간관계만큼 이를 되돌리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늘고 있으니까.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이 작은 행동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