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내기 섹스에 대한 기억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신의 분노나 처벌은 그저 망상에 불과할 뿐, 현실 속에선 그저 미숙한 두 육체가 접촉한 것에 불과했다::섹스, 칼럼, 엘르, elle.co.kr:: | 섹스,칼럼,엘르,elle.co.kr

Anti-Climax 스무 살을 몇 해 앞둔 여름. 연애에 풋내기였던 우리는 숲을 산책하거나 피크닉 담요 위에서 키스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거의 일 년 가까이 섹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지만 온갖 계획만 세웠을 뿐 정작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  보냈다. 어느 날, 그는 형이 숨겨둔 콘돔을 가져왔고, 우린 개봉해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과연 어떤 느낌인지 테스트해 보기로 했고….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게 끝나버렸다. 뭐가 뭔지도 모르게 끝나버린 행위 끝에 우린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갔다. 완전히 어설픈 섹스, 첫 경험은 최악이었다. 순진했던 나는 성인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질병에 대해 상상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HIV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고, 남자와 동침한 소녀들은 으레 에이즈에 걸릴까 봐 두려워했다. ‘접촉으로도 감염이 될까? 키스를 통해? 오럴 섹스는? 콘돔이 오래되거나 구멍 나 있었다면? 아침에 입맛이 없었는데 혹시 임신인 건 아니겠지?’ 소년들은 본능에 따라 아주 쉽게 동정을 버리지만, 소녀들은 얼떨결에 휘말렸다가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일곱 살 때, 성당 주일학교 선생님이 동정녀 마리아에 대해 얘기해 준 순간부터 나는 미혼모가 되는 걸 걱정했다. ‘세상을 만든 조물주가 왜 이런 방식으로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낳게 했을까? 도대체 왜?’ 미숙하고 어설픈 사춘기, 섹스에 대한 생각은 혼돈 그 자체였다. 70년대엔 자유 연애가 유행했고 90년대엔 섹스에 긍정적인 페미니즘의 시대가 펼쳐졌지만, 80년대는 마돈나의 시대였다. 그녀는 섹스와 종교, 에이즈에 대해 쉴 새 없이 외쳐댔는데, 하느님을 믿는 순진하고 심약한 나로서는 섹스를 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지고 커다란 벌을 받을 거라 여겼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결코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을 거라 결심했건만, 골든 리트리버 같은 눈망울을 지닌 남자친구에게 푹 빠져버린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후 양치질을 하면서(물론 거사 전에도 꼼꼼하게 했지만)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디가 달라졌을까?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을까?’ 하지만 아무런 징후도, 변화도 없었다. 나는 달라진 게 없었고 남자친구 역시 마찬가지. 오히려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신의 분노나 처벌은 그저 망상에 불과할 뿐, 현실 속에선 그저 미숙한 두 육체가 접촉한 것에 불과했다. 첫 경험 후 지금까지 몇 명의 남자친구들을 더 만나면서 나는 시인 예이츠의 말을 떠올렸다. “섹스의 비극은 영혼의 영원한 처녀성에 있다. 섹스는 영혼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이는 비극이자 희극적 요소이기도 하다. 좋았든지 나빴든지, 섹스는 본질적인 자아를 변화시키진 못한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그대로여서 오히려 신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온갖 것을 즐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Rachel Combe · <엘르> 영국 선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