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채워지지 않은 소금의 빈자리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너무 당연해서 소중한 지 느끼지 못하던 것일수록 막상 흘려버리고 나면 그 빈자리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음식으로 치자면 소금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 푸드,칼럼,소금,일상,엘르,엣진,elle.co.kr :: | :: 푸드,칼럼,소금,일상,엘르

네팔에서 기적의 소금(Krishna Black Salt)이라 불리는 주먹 크기 암염과 신안의 자랑 천일염.내가 최초로 도전했던 요리다운 요리는 김치찌개였다. 이왕 이야기를 꺼낸 거, 솔직해지자. 그 정도쯤, 우습게 보긴 했다. 김치에 물을 넣어 푹 끓이면 되겠지. 뭐, 별 거 있겠어. 물론 안일한 생각이었다.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주려 해도 그걸 김치찌개라 부르려면 페르시안 고양이도 강아지라 우겨야 할 판이었다.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먹어봤던 그 맛이 아니었다. 솜씨는 한참 모자라도 까다로운 입만은 여전히 진짜를 구별하고 있었다. 시행착오는 그 후로도 오래 계속됐다. 유사 종목인 된장찌개로 목표를 바꿔봐도 별 진전은 없었다(아니, 된장찌개는 오히려 한 레벨 위였다). 인터넷 레서피를 뒤져가며 시키는 대로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도 내보고 돼지고기도 듬뿍 넣어봤지만 여전히 한끗이 부족했다. 흠. 대체 뭐가 문제일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모든 요리사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도 말하자면 그때부터다. “에이, 싱겁잖아.”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소박한 밥상을 함께하던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해결책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나를 멍하게 하는 것이었다. “응?” “그러니까, 소금을 좀 더 넣으라고. 아님, 간장을 섞든가. 싱거우면 맛이 안 나잖아. 오케이?” 쿵. 그랬다. 요리를 글로 배웠다는 게 이런 거구나. 게다가 어릴 적부터 만성 소화불량으로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온 터라 소금이란 무조건 덜 쓰기만 하면 좋은 건 줄 알았으니. 맑으면서도 깊은 맛, 텁텁하지 않으면서 달짝지근한 맛, 그 차이를 가로 짓는 화룡점정, 바로 소금, 간장 ‘적당량’을 익히지 못한 탓이었다. 너무 짜도 곤란하지만 싱거우면 맛이 안 난다는 단순한 진리를 나는 잊고 있었다(물론 억울한 기분도 들었다. 어차피 레서피에 적혀 있던 건 한결같이 ‘적당량’이었으니까). 그 후로 조금씩 요리에 재미를 붙이면서 가장 먼저 깨닫게 된 건 ‘간 보기’의 중요성과 양념의 소중함이었다. 특히 무색무취한 소금의 활약은 기대 이상이었다. 재료의 고유한 색상이나 맛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도 입에 착 달라붙게 만드는 거다. 육즙이 살아 있는 1등급 한우 꽃등심에 단 하나만 매치하라고 하면 역시 소금뿐이고 참기름 두 방울을 떨어뜨린 소금이 없는 삼겹살 구이라거나 소금기 없는 프렌치 프라이는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소금 한 스푼, 또 한 스푼 사이에서 맛의 색깔이 갈라지곤 했다. 때론 날카롭게, 때론 감칠맛나게, 때론 뚜렷하게. 얼굴로 치자면 인상을 바꾸는 눈썹처럼. 눈썹이 없다고 얼굴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감당할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처럼. 한 음식평론가는 이런 말도 했디. “세련된 다이어트의 이름을 빌어 음식에 소금을 일부러 덜 치는 것은, 조리의 음악에서 조화를 이루는 모든 맛과 냄새 밑에 깔리는, 빠져서는 안 되는 베이스 선율을 생략한 것과 같다.” 아주 오랫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은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봉급(salary)과 병사(soldier)라는 단어가 라틴어 소금(sal)이란 말에서 비롯된 건 병사들의 봉급을 소금으로 지급하던 관례 때문이었다. 소금은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 때론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성서에서도 “소금은 하나님의 약속”이라 했다. 귀하기만 하던 소금이 조심해야 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건 현대인의 고질병인 고혈압과 뇌졸중, 심장마비 등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지목되면서부터다.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소금 섭취량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지나친 나트륨 함량은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 지난 1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이 레스토랑 내 흡연과 트랜스지방 사용 금지에 이어 소금과의 전쟁을 선언한 것도 이러한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렇듯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과 슬로 트렌드 덕에 비로소 다시 존재감을 알린 소금도 있다. 천일염이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이른바 ‘굵은 소금’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식품 취급조차 받지 못하던 천일염이었다. 1963년 ‘제재염, 가공염, 정제염’으로만 소금의 정의를 가둔 염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오랜 역사의 유산이었던 천일염은 관계법상 광물 취급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천일염이 식용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건 고작해야 3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현실적인 유통 경로를 확보한 이래 이제는 세계 유수의 소금들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을 만큼의 위치에 올라섰다. 소금 하면 짠맛의 대명사지만 천일염은 짜지 않아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중이다. 아득한 교과서 속 상식을 되돌려보자. 소금의 화학기호는 NaCl, 즉 염소(Cl)와 나트륨(Na)이 결합한 결정체란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화학 공정을 거쳐 생산된 소금은 짠맛을 내는 염화나트륨 비율이 거의 99% 내외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다시 천일염은 특별한 존재가 된다. 국내 천일염의 최대 생산지인 전남 신안군을 비롯한 국내산 천일염의 염화나트륨 함량 비율은 85% 정도로 현저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염전에서 해수를 자연적으로 증발시켜 얻은 천일염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는 건 마그네슘을 비롯한 각종 미네랄과 무기질 성분이다. 성분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시 제조 과정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똑같은 바닷물에서 탄생하지만 정제염은 이온투과막 방식을 거쳐 염화나트륨 성분을 추출해 만드는 데 비해 갯벌에서 생산된 우리 천일염은 바닷물을 갯벌로 끌어들여 정화작용을 거친 후 오직 햇볕과 바람만을 이용해 빚어낸다. 햇살과 바람만이 결국엔 최고의 천일염을 만든다. 말 그대로 자연에서 온 그대로, 하늘에서 내린 걸 사람의 손으로 거두는 형태다. 그래서 천일염을 만드는 건 무수한 기다림의 과정이고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소금 가운데 천일염의 비중은 0.1%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귀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대략 1년에 2억6천만 톤 정도의 소금이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데, 이중 우리 천일염은 30만 톤 정도를 차지한다. 아직 작은 수치지만 지난해 1천억 규모였던 국내 천일염 시장은 향후 5년이면 1조원대로 성장할 거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들린다. 한참 인기몰이를 했던 죽염도 알고 보면 천일염을 대나무 속에 넣고 황토로 막은 다음 쇠가마에서 아홉 번 구워낸 소금이다. 물론 천일염에 대한 시선이 한결같이 우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천일염을 지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두 가지 키워드는 저염도, 그러니까 나트륨 함량이 낮다는 것과 풍부한 미네랄 함량인데, 이에 반해 최근 천일염의 기세에 밀리는 정제염은 깨끗함을 강조한다. 천일염이 가장 큰 강점으로 내세우는 '자연의 힘을 과연 불순물에 있어서도 믿을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 제기다. 우리나라 천일염의 거의 대부분은 전라남도에서 생산된다. 그중 신안은 증도에 자리 잡은 태평염전을 기반으로 천일염의 메카로 떠올랐다. 수입 소금 중 가장 잘 나가는 프랑스의 게랑드 지방의 소금과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백화점이나 유기농 전문 상가를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는 수입 소금에 비해 오히려 성분 함량에 있어 훨씬 우월하다며 신안의 소금에 한 표를 들어준 상태다. 캐나다 동부 해안, 브라질 아마존 유역 등과 함께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로 꼽히는 우리나라 서남해안 갯벌은 염도가 낮은데다 각종 미네랄 함량이 풍부한 걸로 유명하다. 그만큼 최상의 천일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신안군 일대는 이미 유네스코가 지정한 ‘신안 다도해 생물권 보전지역’이기도 하지만 전라도 최남단 신안군에 자리한 증도가 아시아 최초로 슬로 시티로 지정되기까지 일등공신 또한 소금이었다. 지난 겨울, 산 넘고 물 건너 섬이 많기로 유명한 신안에서도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새롭게 조명 받는 증도를 찾았다. 온종일 차를 몰고 선착장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배를 타고 20분 남짓, 작은 섬에 다다른 건 가장 뜨거운 태양이 막 비껴가고 서서히 주변에 어스름한 기운이 잠길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았다. 두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태평염전과 마치 오래된 초등학교 교실을 떠오르게 하는 나무로 지은 소금 창고들을. 온통 하얀색으로 산처럼 뒤덮인 거대한 소금을. 밀레의 그림 속 이삭 줍는 사람들처럼 묵묵히 염전을 오가는 이들의 차분한 몸짓을. 한 스푼의 소금이 밥상 위에 올라오기까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 반복했을 무수한 기다림을.*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