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버려진 문짝의 변신

폐유를 발라 시커멓고 볼품 없는 문짝, 집과 함께 낡아간 문짝이 새 집의 일부로 변했다

BYELLE2017.06.09


애초에 문짝이 있었다. 일 톤 트럭 수 대가 와서 집안을 탈탈 털어간 후에도 문짝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왜 문짝을 버리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매번 당장의 시급한 문제를 논하느라 물어보는 걸 깜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짝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치웠나, 싶었다. 그런데 며칠 후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이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매우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짙은 색 문짝 열 개였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했더니 싱크대 하부장 문짝이었다. 기성품이 품을 수 없는 기품이 흘렀다. 그 미스테리한 느낌의 근원을 몹시도 궁금해 하는 우리를 보고 소장님은 흐뭇하게 웃으며 귀띔했다. 합판의 테두리를 굵게 덧댄 나무가 바로 우리 집에 원래 있던 목재라는 얘기였다.



문짝을 처음 발견한 순간.                

     

“유리 문짝 2개, 방 문짝 3개(방이 3개였으니), 그리고 천장을 철거했을 때 드러난 지지대를 가지고 만들었어요. 요즘은 천장 지지대를 대부분 금속으로 제작하는데, 그 시절만 해도 금속보다 원목이 더 저렴했을 거예요. 원래 있던 문짝 색 기억나죠? 시커맸던. 나무 썩지 말라고 오일을 바르는데, 돈이 많이 드니 그때는 폐유를 많이 썼어요. 그 탓에 시커맸던 거죠. 목공소에 보내 몸에 좋지 않은 데다가 이미 많이 헤진, 오일이 발린 겉 부분을 대패로 갈아내고, 그 속 부분만 켜서 비슷한 느낌의 합판에 붙였어요.” 다음 순간 소장님은 머쓱하게 웃으며 목공팀이 고생 많이 했다고 덧붙여 말했다. “처음에 제가 문짝을 가리키며 이 고재로 문짝을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목공팀 반장님은 ‘얘가 또 시작이구나’ 하는 표정으로 저를 한참 쳐다봤어요. 하지만 어차피 제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곧 포기하고 요청을 받아들이셨죠.”



싱크대 하부장 문짝. 40년 된 고재를 활용해 만들었다.


그냥 보기에도 기품 있는 목재가 꼭 이 집만큼 나이 먹은 고재였다니, 찬사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토록 완벽한 아이디어를 왜 우리에게 진작 제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소장님은 속 부분만 켜냈을 때 색깔이 들쑥날쑥 하거나 아니면 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혹시 실패할 수도 있는 최악의 순간을 생각하여 미리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고 덧붙여 말했다. “지금은 육안으로 봤을 때 색깔이 비슷하지만 여기에 오일을 바르면 색이 확 달라질 수도 있어요. 오일까지 바른 후 활용 가능성을 점쳐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고재, 그것도 이 집의 일부였던 고재를 켜서 만든 문짝에 이미 매료됐기에 색의 미세한 차이쯤 용납할 수 있다며, 원래 변수가 있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느냐고 주창했으나, 소장님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실제로 오일을 발랐는데, 문짝 2개가 유난히 색이 짙게 나왔다. 두 팔 벌려 열렬히 환호했던 우리조차도 순간 주저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고민거리로 남았다. 막판에 페인트칠을 하고 싱크대에 대리석을 얹고 상하부장 사이에 회색 타일을 깔고 난 후 문짝을 임의로 붙여봤다. 몹시도 떨리는 순간이었다. 전체 그림 속에서 유난히 짙은 문짝 2개의 색깔이 희석되며 잘 어우러졌다.



싱크대 하부장 문짝. 40년 된 고재를 활용해 만들었다.


우리는 고재 문짝을 달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싱크대 하부장의 고재 문짝이 없었다면 자칫 집이 너무 가벼워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문짝의 일부를 차지한 고재 덕분에 집에 깊이감이 생겼다. 고재 문짝 덕분에 원래 가지고 있던 오크 식탁도 가져올 수 있었다. 식탁 색이 너무 짙은 데다 8인용으로 덩치가 커서 화이트 페인트에 밝은 색 바닥을 깐 새 집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버려야 하나 몇 날 며칠을 고민했었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맞춘 가구여서 내심 아쉬웠는데, 막상 싱크대에 고재 문짝을 두르니 그 오크 식탁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살림 좋아하는 여자친구들은 우리집에 와서 가장 먼저 고재 문짝을 입에 올린다. 귀신 같이 그 깊이감을 알아보고 도대체 무슨 소재를 쓴 거냐고 꼭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들떠 이 고재가 원래 우리 집에 있던 소재며, 이를 켜서 합판에 붙였다고 답한다. 문짝 하나 덕분에 공간에 시간의 레이어가 더해졌으며 이야깃거리가 늘어났다고 할까. 그렇게 나는 항상 그 앞에 서고 싶은 주방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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