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와 누마루가 있는 작은 집, 소보루의 앞마당에는 곁에 서면 무릎높이 정도 되는 작은 나무 두 그루가 있다. 지난 초 봄, 친구들이 심어주고 간 새 식구들이다. 그들이 우리 집 마당에 나무를 심겠노라 했을 땐 사실 좀 부담스러웠다. 집 주변에는 이미 많은 나무가 있었고, 직접 관리하는 것이 녹록치 않아 몇몇은 베어버린 참이었다. 작은 묘목을 심어 가꿔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죽게 되면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아 걱정도 됐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던 선물이었다. 하지만 집 앞 마당에 대한 도시인들의 로망은 집주인의 걱정을 이겼고, 결국 두 개의 작은 묘목이 우리집 마당에서 살게 되었다.(왼쪽부터) 홍매화, 향나무, 수양(능수)매화. 향나무는 이사 오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 두 매화 묘목은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십 년 전 막내에디터 시절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의 선물이다. 긴 가지가 수양버들처럼 능청능청 늘어지는 수양매화. 능수매화라고도 불리는 이 녀석은 흰 꽃을 가득 피운 채로 우리집에 입양을 왔는데 첫날부터 어찌나 벌들이 꼬이던지, 내 눈에는 아름다운 처녀처럼 보였다. 다른 하나는 우리 집에 가장 자주 놀러온 단골손님, 후배 부부의 선물이다. 나의 두 번째 직장에서 옆자리 후배였던 그녀는 함께 갔던 매화축제에서 이 작은 묘목을 보자마자 값을 치러버렸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두 번째 손님은 분홍 꽃이 피어있던 홍매화 묘목이다. 그 꽃의 색이 얼마나 예쁜지, 낮 동안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막 집에 뛰어 들어온 아이의 빰같은 색이다. 집에 데려온 날 촬영한 홍매화 묘목. 지금은 어여쁜 형태의 가지마다 푸르른 잎사귀가 가득 달렸다. 흥미로운 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크기의 나무를 사다가 심었는데 녀석들의 모습이 좀 다르다는 것이다. 둘 중 한 녀석, 능수매화는 벌써부터 열매를 맺었다. 그 크기가 뒷마당의 수 년된 커다란 매실나무 못지않은 튼실한 매실을 스물여덟알 수확했다. 다른 한 녀석, 홍매화는 열매를 맺는 대신 잎사귀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저기 저 녀석은 열매를 맺었는데 너는 왜 꽃만 피웠다 떨구고 말았느냐?“ 라고 따져 묻지 않는다. 자연은 저마다의 속도를 지키며 살아간다. 홍매화 나무의 열매는 내년에 다시 기대해보면 될 일이다.아침마다 마당을 한 바퀴 휘 돌며 점검하는데, 이 작은 묘목을 볼 그때마다 마음이 애틋해진다. 나무는 날마다 씩씩하다.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는 언제나 어제의 나무가 아닌 것이다. 그런 그들의 씩씩한 모습을 보면 나무를 선물해준 두 친구를 생각하게 된다. 그저 떠올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곰곰이 생각해본다. 요즘 어떻게 지낼까, 힘든 일이 없을까, 아프진 않을까. 그리움이 깊어, 이렇게 친구들을 떠올려 본 적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묘목을 선물한 두 사람 뿐 아니다. 도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나의 옛 전우들을 생각한다. 십년 동안의 직장생활이 내게 남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다. 내게 남은 것은 단 두 가지. 거북목 그리고 아름다운 전우들이다. 패션 관련 일에 종사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안다. 그것은 매순간 새로운 자극을 마주하는 흥분되는 일, 그런데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나기도 하는 일이다. 매 달 혹은 매 시즌 형언할 수 없는 성취감과 쾌감을 안겨주지만 그에 따른 허탈감도 만만치 않다. 이것이 과연 이 지구에 옳은 일인가 하는 요상한 물음에 시달리기도 하고, 가끔은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삶을, 속도를, 압박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당신은 그곳에서 힘을 내세요. 당신의 나무는 여기에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하면서 말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