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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건이 뭐 어때서

‘짐차’라는 편견을 버리면 왜건은 꽤 매력적이다. 탈 만한 차, 그 이상의 가치를 넉넉하게 싣고 있다

BYELLE2017.06.23

김혜수가 자동차 광고에 등장했다. 영상 속의 그녀는 더 뉴 볼보 크로스컨트리를 타고 우아하게 도시를 벗어난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조린다. “내가 꿈꿔온 삶, 바로 지금.” 말하는 이가 김혜수이기 때문일까. 그녀의 일기장에서 발췌한 듯한 철학적 메시지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김혜수가 자동차 광고 모델이 됐다고 했을 때 작고 아담한 ‘패션카’이거나 여성 타깃의 차종일 거라고 짐작했다. 상식과 관례에 비춰보면 늘 그랬으니까. 두 눈을 감고 망치질한 것처럼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광고에서 김혜수가 타는 차는 그보다 큼직하고 강한 인상을 풍긴다.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한 외모를 지닌 데다, 국내에서는 비인기 차종으로 꼽히는 왜건이다. ‘짐차’. 왜건 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다. 대다수 사람들은 전형적인 3박스 형태의 세단에 익숙하다. 때문에 후면이 박스형으로 생긴 왜건의 모양새를 어색해한다. 홀리지 않으면 ‘내가 찾던 차’라는 마음이 확 들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 판매되는 왜건의 수는 매우 적다. 판매하는 회사들도 ‘왜건’이란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마케팅용 명칭을 따로 짓기도 한다. 왜건을 왜건이라 부르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진다. 종류가 적고 수요가 많지 않다 보니 왜건은 골수 자동차 마니아들이 선택하는 차로 통하기도 한다. 결국 김혜수처럼 우아하고 치명적인 배우와 왜건이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도 억지는 아니다. 사실 왜건은 여자들의 차였다. 미국에서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주부를 일컬어 ‘사커 맘(Soccer Mom)’이라 부른다. 축구를 비롯해 여러 과외활동에 아이를 데려가고 데려오려면 크고 넓은 차가 필요하다. 트렁크 공간이 넓고 뒷좌석 시트를 접을 수 있는 왜건은 199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며 사커 맘들의 차로 통했다. 넓은 실내와 짐칸 활용도를 따를 차가 없었다. 왜건의 적재능력은 잔뜩 장비들을 싣고 다녀야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러브 콜에도 부응하고,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운전자에게도 흡족하다. 뒷좌석을 접으면 자전거 한두 대는 접지 않고도 여유롭게 탑재할 수 있다. 김혜수가 모델로 나선 더 뉴 볼보 크로스컨트리는 왜건 중에서도 오프로드 적응력을 키웠다. 지상고가 높아 험하고 거친 길도 거뜬히 다닌다. 아스팔트에서만 달리라고 만든 차가 아니란 얘기다. 누군가는 짐을 싣는 일은 SUV도 거뜬한데 굳이 왜건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냐고 물을 수 있다. SUV는 키가 크다. 이에 따른 장점이 분명 있겠지만 개인 성향에 따라 세단만 못한 승차감과 주행질감, 불안한 움직임이 뒷걸음치게 만들기도 한다. SUV와 놓고 보자면 왜건은 작고 가볍다. 세단에 더 가깝다. 누구나 무난하게 탈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장한다. 여기에 실용성을 더한 차, 그게 바로 왜건의 덕목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왜건에 덧씌워진 ‘짐차’라는 인장은 미학적인 점수도 갉아먹었다. 두툼하고 투박한 외모? 이제는 낡은 얘기다. 요즘 출시되는 왜건의 디자인 언어는 전형적이지 않다. 꽤 근사하게 나온다. 특히 여러 차종의 특징을 버무려 만든 크로스오버 모델이 두각을 보인다. 뒷부분을 살짝 늘린 해치백이나 키가 낮은 SUV 형태를 닮았고, 이전 세대보다 과감하게 곡선을 강조하며 세련미를 더했다. 볼보의 V40, V60, 크로스컨트리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의 C클래스 에스테이트와 CLS 슈팅브레이크, 미니 클럽맨, 푸조 308 SW 등이 그렇다. 이들에 대한 첫인상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누가 봐도 왜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거나, ‘못 보던 왜건’이라는 생각이 들거나. 왜건의 행보를 보면 새로운 형태와 성격을 곳곳에 심으며 패션 카로서 영역 확장을 꾀하는 듯하다. 생긴 것 때문에 타박을 받는 일은 훨씬 적어졌다. ‘세단 아니면 SUV’에 쏠리는 편협한 시각 속에서 왜건을 몬다는 건, 의외성이라는 매력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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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글 임유신 (자동차 컬럼니스트)
  • 에디터 김영재
  • 디자인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