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 뜯어 아니면 태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고생 끝에 낙이 찾아올지니. 염증과 통증, 쑥스러움의 삼단 콤보 고난을 거쳐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뷰티 덕후의 ‘비키니 왁싱’ 체험기::제모,왁싱,비키니왁싱,비키니왁싱후기,브라질리언,왁싱방법,왁싱숍,체험기,레이저,클리닉,피부관리,뷰티,엘르,elle.co.kr:: | 제모,왁싱,비키니왁싱,비키니왁싱후기,브라질리언

지난가을,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왁싱을 고민하는 아들 박수홍을 보며 그의 엄마가 경악을 금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왔다. 과년한 아들을 둔 프로그램 속 엄마들은 왁싱이 무엇인지 생전 처음 듣는 눈치였고, 이에 MC 신동엽이 “왁싱은 머리카락 빼고 온몸의 털을 제거하는 것이다. 백일 때로 돌아가는 것”이라라 설명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문득 몇 해 전 남자사람 친구들이 왁싱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 떠올랐다. ‘주변에 해본 녀석들이 있다’ ‘남자가 가도 여자가 해준다더라’ ‘그러면 서냐, 안 서냐’ 등 19금 대화가 오갔다. 그들에게 왁싱이란 낯선 여자에게 받는 합법적 스킨십인데 고통이 따르기에 선뜻 경험하기 망설여지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 모든 왁싱은 겨드랑이나 다리 털이 아닌 비키니 왁싱을 의미한다. 왁싱의 세계, 나 홀로 입문내가 비키니 왁싱을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물론 남자사람 친구들 같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다. 수영을 배우고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온 필요이자 매너의 일환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여성용 면도기를 사서 수영복에 노출되는 부분만 꼼꼼히 밀었다. 겨드랑이나 다리 털 미는 것과 당연히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주일 후 지옥이 찾아왔다. 한 올 한 올 털이 다시 자라는 그 모든 자리가 너무 간지러웠고 긁고 피가 나고 염증이 생기는 악순환이 며칠간 계속돼 몸도, 마음도, 그곳도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비키니 전용 왁스 스트립을 써보기로 했다. 빠르게, 깨끗하게, 쉽게, 예민한 부위의 털을 깨끗하게 뽑아준다는 카피가 쓰인 패키지는 셀프 면도로 지옥 불을 경험한 나에게 큰 위안을 안겨주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스트립을 꺼내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자 왁스가 녹진해졌고, 두 장의 스트립을 왼쪽, 오른쪽의 제모할 부위에 잘 밀착시킨 다음 오른쪽부터 번개처럼 떼어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통증의 불지옥…. 비명이 두성으로 터져나왔다. 왼쪽 스트립을 떼어낼 것인지 씻어낼 것인지 몇 분간 고민이 이어졌다. 용기를 내 스트립을 마저 떼어냈고, 그 길로 남은 왁스 스트립을 몽땅 휴지통으로 던져버렸다. 이 고통이 내 기술 부족인지 스트립의 문제인지는 알 길 없지만, 앞으로 내 손으로 왁스 스트립을 다시 녹이는 일은 없으리라. 왁스로 경험한 지옥, 레이저로 태우리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전문가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회사 근처 피부과에서 제모 레이저 할인행사를 한다는 광고 문자가 날라왔고, 점심시간에 찾아갔다. 제모 레이저를 비롯해 각종 미백 레이저와 필러, 보톡스, 지방제거주사 등 다분히 상업적이고 인기 높은 시술들만 선별해 비전문의가 파격적인 가격에 ‘공장식’으로 제공하는 클리닉이었다. 병원 안내 데스크에서 비키니 제모를 받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브라질리언 제모를 할지(치골에서 항문까지 전체 제모), 사타구니 가장자리만 다듬을지, 치골과 사타구니 쪽 전체를 할지 등 제모 부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했고, 나는 가장자리를 다듬는 제모를 선택했다. 간호사는 바로 탈의실로 안내해 주었고, 아래 속옷을 모두 탈의한 뒤 입으라며 산부인과용 스커트를 건넸다. 그리고 환자용 베드에 누웠다. 의사는 젤을 바르지 않고 제모하는 레이저라는 단 한 마디의 건조한 문장을 던졌고, 간호사는 말없이 내 스커트를 들췄다. 시원한 바람이 나와 레이저가 피부에 닿는지 느낌도 나지 않는 제모 레이저를 몇 분간 시술받았다. 겨드랑이 제모 레이저 때 느꼈던 뜨거운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은 없었지만, 바람에 날리는 털이 피부에 느껴지며 괜한 쑥스러움과 민망함이 찾아와 하염없이 시술실 천장의 무늬를 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셀프 왁싱 때의 고통보다 백배는 나았다. 이후 한 달 간격으로 5회 시술을 받았고, 분명 라인의 털이 줄어들긴 했지만 원하던 만큼의 깨끗한 느낌은 아니었다. 신생아 시절의 완벽한 매끈함을 원했다 결국 나는 왁싱과 제모의 종착역, 프로페셔널 왁싱 숍으로 향했다. 일생일대의 민망한 시술임이 분명해 지인에게 물어보고 후기 검색도 꼼꼼히 한 다음 왁싱할 때 사용하는 스틱을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린다는 ‘노 더블딥’ 왁싱 숍으로 마음을 정했다. 따뜻하게 덥힌 왁스에 스틱을 여러 번 담그면 각종 박테리아와 스틱에 묻어오는 털들이 왁스 안에서 뒤섞여 위생적으로 좋지 않을 테니까. 왁싱 숍은 웬만한 에스테틱을 방불케 할 정도로 깨끗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올 누드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기로 하고 룸에 딸린 샤워실에서 준비한 뒤 베드에 누웠다. 왁서는 1회용 마스크에 위생장갑을 낀 모습으로 들어와 일상적인 이야기로 한껏 쪼그라든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왁싱은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진행됐는데, 엄청나게 민망할 것이라는 걱정은 괜한 사치였다. 왁싱이 진행되는 10~15분 동안 어마어마한 고통으로 민망함 따윈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이것이 지옥의 맛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왁싱이 끝나고 왁서가 거울을 건네고 방을 나갔다. 나는 놀랄 만큼 깨끗하게 정리된 그곳을 바라보며 희열을 느꼈다. 그래, 이거지! 마치 털이 한 번도 나지 않았던 것 같은 매끈함, 이 순수함! 속옷을 입을 때도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왁싱 숍에 처음 갔던 그날 이후 지금까지, 두 달 주기로 꾸준히 브라질리언 왁싱을 받고 있다. 가끔 목욕탕에 가면 <미우새>의 엄마 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주머니들이 있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확실히 털이 줄었고 매일 화장실이나 생리 때 느낀 것과는 달리 훨씬 위생적인 느낌이라 삶의 질이 높아진 것 같다. 앞으로도 쭉 왁싱을 받으려 한다. 10분의 고통이면 두 달의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