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내 시계는 늘 10분 빠르게 맞춰져 있었다. 침대맡에 놓인 탁상시계부터 손목시계 그리고 아이폰까지. 매일 아침 알람은 6시, 실제는 5시 50분에 울린다. 침대에서 일어나 30분간 스트레칭이나 조깅을 한다(운동 OK). 다음은 아침 식사. 인기 인스타그램 속의 사진 그대로 과일 샐러드와 아보카도 토스트 또는 치아 시드를 넣은 뮤즐리를 먹는다(웰빙 식단 OK). 식사하면서 구독 중인 <뉴요커>를 읽거나 인터넷 뉴스를 확인한다(최근 이슈 파악 OK). 거울 앞에서 심혈을 기울여 ‘무심한 듯 시크하게’ 차려입고 출근하는 길(쿨 걸 OK), 여성과 관련된 주제를 다룬 TED 강연이나 팟캐스트를 훑는다(너무 무겁지 않은 페미니즘 탐구 OK). 근무 중엔 모든 동료들에게 친절한 동시에 능률적으로 일하려 애쓴다(셰릴 샌드버그 닮기 OK). 퇴근 후에는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한다. 레드 와인 두 잔 정도가 적당하고 디저트는 먹지 않은 채로 11시 30분 이전에 잠자리에 든다(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친목 도모 OK). 능력 있고 매력적인 내가 되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충실한 하루. 영국의 유명 정신건강 클리닉 ‘더 프라이어리(The Priory)’의 심리학자이자 영국패션협회 테라피스트로 활동 중인 엘레인 슬레이터(Elaine Slater)는 이런 내 일상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말을 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슈퍼우먼 신드롬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죠.” ‘쿨’하고 똑똑하고 ‘보기 좋게’ 날씬하고 유쾌한 데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세계 정세와 최신 정치 이슈, 테이트 모던에서 열리는 전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 켄덜 제너의 새로운 헤어스타일 등 업데이트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지. ‘파에야 레서피 익히기’ ‘난민지원단체에 기부하기’ 같은 ‘To Do’ 리스트가 아이폰 메모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30대에 막 진입한 주변 친구들 역시 조금씩 욕망의 내용만 다를 뿐, 비슷한 강박에 쫓기며 살고 있다. 특히 ‘육아’의 의무를 지고 있는 워킹 맘의 경우는 더욱 처절하다.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는 니콜(31세)은 임신하고 육아휴직을 쓴 2년 동안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애기를 학교에 데려가서 쉬는 시간에 모유수유를 했던 적도 있었죠. 사람들은 나를 제정신이 아닌 여자처럼 쳐다봤어요. 남편은 내게 제발 욕심을 줄이라지만 일과 가정,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없어요.” 니콜과 나 같은 여자들을 향해 엘레인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게 확실한가요? 스스로를 자학하며 얻은 도파민에 홀린 건 아닌가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떠오른 또 다른 친구는 리사(29세)다. 그녀는 유능한 광고 컨설턴트로 특히 무자비한 스케줄을 버텨내는 데 최고봉이다. “어떤 약속도 놓칠 수 없어서 저녁 식사를 세 번 한 날도 있어요.” 그녀가 ‘중증’이라는 증거는 또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밤늦게까지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해요. 일찍 자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불안하거든요.” 이렇게 나와 친구들의 상황을 돌아보자니, 문득 영화 <위플래쉬>의 플래처 교수가 떠올랐다. 자신에게 불가능한 미션을 하사한 후, 스스로에게 광기의 채찍질을 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멈춰야 하는 걸까? 그간의 치열한 삶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최근에 들었다. 늦잠을 자고, 정해진 시간까지 일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친구들을 만나 생산성 없는 농담을 좀 주고받는 거다. 그런다고 삶이 무너지거나 내 평판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한번 해보기로 했다. 일단 시계들을 제시간으로 돌려놓는 것부터 시작했다. 모닝 콜은 7시 30분으로 늦췄고, 숙면 후에 일어나서는 운동을 건너뛰고, 설탕을 입힌 시리얼을 먹으며 인터넷 쇼핑을 했다. 출근길에는 ‘선곡의 고민’ 없이 음악 차트 톱 10에 오른 팝을 들었고, 회사에서는 평소보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덜’ 했다. 점심시간에는 샐러드나 케일 주스 대신 레스토랑에서 느긋이 코스 요리를 먹고 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살이 찌거나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늦거나, 주변 사람들한테 비난받지도 않았다. 퇴근 후 오랜 친구인 윌을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내게 온 일련의 변화에 대해 털어놓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윌은 내가 학생 때부터 숙제와 시험에 안달복달하던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언제나 나보다 3, 4등 뒤의 성적을 받았지만 덜 바빴고 더 웃겼다. “대강 살아도 괜찮아.” 친구의 조언대로 그날 밤 우리는 늦도록 위스키를 마시며 ‘봉인 해제’의 즐거움을 맛봤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을 초대해 킨포크식 식사를 하거나 넷플릭스에서 ‘요즘 뜨는’ 영화를 찾아보는 ‘억지 노력’을 하지 않았다.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증이나 가벼운 조깅으로 몸매 관리를 했다는 자기위안, 조카에게 스케이트보드를 가르쳐주고 그걸 페북에 올림으로써 나와 남에게 좀 더 선량한 사람으로 어필하는 행동 등 스스로를 속였던 모든 과제에서 벗어나려 했다. “현대 여성들은 ‘선택의 폭격’을 받고 있어요. 너무 많은 옵션은 오히려 선택지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엘레인의 이야기가 진짜 내 마음을 울린 대목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성공이나 타인의 평가에서 평안과 안정감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진정한 자신감은 내면에서 나오는 거예요. 질병이나 이별, 반려동물의 죽음 같은 고통의 순간에도 ‘내적인 기반’이 단단하면 극복할 수 있어요. 슈퍼우먼에게도 예상치 않은 고난은 찾아오며, 쳇바퀴 굴러가듯 공허한 만족감을 쌓은 사람일수록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어요.” 실험적인 1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슈퍼우먼’이 돼야 한다는 강박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숨가쁜 하루의 끝에서 이따금 나한테 되물을 것이다. “나, 지금 이대로도 괜찮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