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스코긴스(Michael Scoggins)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지드래곤의 전시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에서였다. 스프링 노트의 찢어진 페이지를 확대한 듯한 커다란 종이 위에 농담처럼 진담인 듯 끼적인 이야기. 어린아이의 일기장이나 누군가의 고민이 담긴 낙서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랄까? 2004년 뉴욕에서 열린 첫 개인전 <Paper Work>를 통해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으며, 미국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 대거 소개되면서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그의 작품을 서울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그에게 이메일을 띄웠다.     드로잉 작업에 열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트 스쿨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1년쯤 지났을 때 붓과 물감으로는 내 아이디어를 뚜렷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부분의 미술 학도들처럼 나 역시 가난했기에 값싼 스프링 노트에 스케치를 끼적거리곤 했는데, 어느 날 노트를 들여다보니 회화에서 부족했던 에너지와 즉흥성이 느껴지더라. 아예 드로잉을 전문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노트 페이지를 확대해 캔버스로 삼았다. 그 후로 회화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서울에서 열린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 참여 작가 중 유일하게 지드래곤이 누구인지 몰랐다던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초청을 받은 후 호기심이 생겨 정보를 찾아봤다. 그의 예술적인 재능과 표현력이 마음에 들었고, 굉장히 좋은 협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평소 미술관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스케줄이 꼬이는 바람에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언젠가 지드래곤을 만날 기회가 다시 있으면 좋겠다.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든. 당신 작품은 누군가 쓰다 버린 일기장을 엿보는 느낌을 준다. 옛 일기장 속 당신의 모습은 어땠을까 어린 시절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다. 10대 때나 지금도 비슷하고. 파티에 놀러 가는 것보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거나 만화책 읽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예술과 정치, 웃긴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긴다. 드로잉은 어린 시절에 그리던 것에서 크게 바뀌진 않았고 글씨체도 그때와 아주 유사하다. 다만 지금은 훈련된 아티스트의 눈으로, 다 큰 어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게 다른 점이지. 작품 속의 메시지들은 오롯이 본인의 것인가 작품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관객에게 정직하지 못한 아티스트의 메시지는 공중에 흩어질 뿐이다.  ‘Fuck Your War’ 같은 작품이나 다양한 가족 형태를 그린 ‘All-American Family’ 시리즈 등 정치사회적인 메시지로 해석되는 작품도 있는데 예술은 소통 방식이자 정치적 표현의 한 방법이다. 나는 평등과 자유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서 매일 아침 신문을 찬찬히 읽는다. 중요한 일을 알리거나 교육적 역할을 하는 것도 아티스트의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불평등으로 고통받거나 스스로 보호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힘이 돼줄 거라고 믿는다. ‘I’m A Real Patriot’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요즘의 미국 상황을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2007년 작품이더라. 10년 전에 만든 작품이 현재 상황과 ‘맥락 있게’ 읽히다니 트럼프는 ‘위험한 멍청이(Dangerous Idiot)'다! 2016년 대선을 통해 깨달은 교훈은 미국의 선거체제는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는 것. 낡은 정치체제는 새로운 생명을 찾아야 하고 현대의 기후에 맞게 재정비돼야 한다. 흥미롭게도 우린 생각보다 그리 빠르게 진보하지 않는다. 작품 속 메시지가 다른 나라, 다른 관객에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히거나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나 마이클 스코긴스의 페르소나는 종종 나를 떠나 정반대의 새로운 관점을 만들기도 한다. 때론 문자 그대로를 해석해 작품 속의 아이러니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고. 미국 밖에서 작품이 전시된다는 건 흥미롭고 놀라운 경험이다. 해석은 다를지라도 어디서나 다들 호기심을 갖고 무엇을 표현했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내 생각에 줄무늬 노트에 그린 드로잉에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강력한 정서가 있는 것 같다. 예술에 익숙한 사람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즉흥적으로 이뤄지나? 아니면 스케치한 뒤 큰 종이로 옮겨 작업하는가 작품마다 다르다. 몇몇 작품은 스케치북에서 수없이 고쳐서 탄생한다. 컨셉트를 생각하고, 구성을 짠 뒤, 여러 버전의 작품을 거쳐 최종안이 결정된다.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 퍼뜩 영감이 떠올라 곧바로 커다란 종이 위에 드로잉을 시작할 때도 있다. 이른 아침에 무언가를 읽거나 혹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디어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한다. 다른 종류의 종이도 시도해 볼 생각이고, 더 많은 다양성을 탐구할 계획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종이와 연필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대체하면서 ‘낙서’라는 행위조차 아날로그 문화가 돼가는 것 같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을 표현할 것이다. 다만 도구가 바뀔 뿐이지. 나는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에 태어났고, 무엇보다 그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목격했다. 사람들은 막연히 단순했던 시대를 갈망하지만, 진실인즉 세상이 그렇게 단순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린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고, 난 예술을 통해 약간의 명료함을 선사하려고 한다. 세상을 향해 요즘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서로에게 예의를 지킬 것(Just be nice to each other).’ 마이클 스코긴스 개인전은 5월 24일부터 6월 24일까지 청담동 지갤러리(g.gallery)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