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CAFA 어워드’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선정된 아이리스 아펠 여사.베트멍의 신상 컬렉션을 입은 시니어 모델.파스텔컬러의 패션을 즐기는 91세의 엘리자베스 여왕. 1992년 케이트 모스가 10대 시절, 상의 탈의를 한 채 ‘전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촬영한 캘빈 클라인 캠페인은 패션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를 몰고 왔다. 18세 소녀의 파격적이고도 섹슈얼한 상업사진이라는 혹평 속에서 그녀는 단숨에 스타 모델로 성장했고, 이후 캐스팅 디렉터들은 점점 더 어리고 신선한 얼굴을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패션계는 젊고 에너제틱한 이들의 홈그라운드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입을 법한 브랜드도 젊고 탄탄한 모델들을 기용해 ‘이 옷을 입으면 우리처럼 어려 보이죠’라는 식의 이미지를 어필한다. 청춘이라 불리는 ‘유스 컬처’는 최근 대단한 열풍을 몰고 왔다. 선두주자로 꼽히는 고샤 루브친스키와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의 신선한 등장으로 하이패션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동유럽풍의 스트리트 스타일이 패션계를 삽시간에 평정했다. 런웨이에서도 지지 하디드와 켄덜 제너 등 밀레니얼 슈퍼모델 대신 고샤와 뎀나의 친구들(그 모습이 희한할 정도로 낯선 젊은이들)을 무대에 세워 독특한 패션 신을 완성했다. 82세의 여류 소설가 존 디디온.은발의 아이콘, 조이 벤추리니 비안치.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85세의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 유스 컬처는 패션뿐 아니라 음악과 사진, 아트 등 문화 전반을 지배했지만 패션계의 습성은 어떤가? 쉽게 타오른 열풍은 양은냄비보다 더 빨리 식기 마련. 너도나도 유스 열풍 탓에 이제 그 단어조차 철 지난 유행어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오히려 그런 문화를 쫓는 자들이 뒤떨어진 듯한 느낌까지 들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다음 행보는? 패션계는 극단적인 차선책을 택했다. 바로 백발의 아름다움, ‘시니어 뷰티’에 눈을 돌렸다. 이번에도 시작은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수장 뎀나 바잘리아였다. 어떤 하우스보다 가장 먼저 2017 F/W 컬렉션을 선보인 베트멍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백발의 할머니 모델을 첫 번째로 내세웠다(할머니가 입을 법한 올드한 밍크 코트를 입고!). 두 번째 모델 역시 나이 지긋한 중년의 아저씨 모델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고 이어 할아버지 모델까지! 발렌시아가 남성복 쇼에서도 거대한 ‘어깨 코트’를 입은 회장님 포스를 지닌 할아버지 모델들이 대거 등장하며 놀라운 광경을 연출했다. 누구보다 젊은이들의 문화 현상을 만들어낸 뎀나 쇼에 백발의 시니어 모델이라니! 이 패션 신은 마치 1999년 로봇이 샬롬 할로의 드레스를 페인팅하는 알렉산더 맥퀸의 쇼나 2000년 소파와 테이블로 변하는 후세인 살라얀의 드레스를 보는 듯 가슴 찡한 전율이 느껴졌다. 비단 에디터만이 느낀 감정은 아니었는지, 쇼가 끝난 직후 베트멍 쇼에 선 할머니 모델은 인스타그램에 수백 개가 넘게 포스팅됐고, 매체들은 다양한 세대와 문화를 다룬 베트멍 쇼를 집중 보도했다. 그 바람을 타고 본격적인 4대 패션위크에서는 시니어 모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 모델까지 등장한 베트멍의 2017 F/W 쇼.돌체 앤 가바나가 추구하는 시니어 뷰티.돌체 앤 가바나가 추구하는 시니어 뷰티.이번 CH 캐롤리나 헤레라 캠페인에 등장한 오페라 가수 조이스 카르파티.시몬 로샤는 특유의 플라워 드레스를 입은 로맨틱한 할머니, 가레스 퓨는 그로테스크한 매력의 비닐 드레스를 입은 할머니, 네헤라는 탐스러운 긴 백발의 우아한 할머니, 돌체 앤 가바나, 보테가 베네타, 드리스 반 노튼, 안토니오 마라스 등 셀 수 없이 많은 브랜드에서 최신상의 컬렉션을 톱 모델 대신 나이 지긋한 백발 여인들을 내세우며 새로운 아름다움에 시선을 돌리게 했다. “30대 초반만 돼도 무대 위에 오를 기회가 많이 줄어들어요.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죠. 훨씬 젊고 신선한 이미지의 친구들이 많잖아요. 시니어들의 활발한 활동은 모델에게 이보다 더 희망적인 일이 있을까요?” 해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한 모델이 고백했다. 시몬 로샤 쇼에 등장한 백발의 여인.우아한 할머니로 변해가는 메릴 스트립.가레스 퓨의 기괴한 의상을 입고 퍼포먼스르 선보인 할머니 모델.이제 레전드가 된 그레이스 코딩턴. 사실 패션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환갑을 바라보거나 이미 훌쩍 넘어버린 지 오래다. 패션계 악마로 손꼽히는 카린 로이펠트는 62세, 애나 윈투어 67세, 그레이스 코딩턴 75세, 칼 라거펠트 83세,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Carmen Dell’Orefice) 85세, 배디 윙클(Baddie Winkle) 88세, 아이리스 아펠(Iris Apfel)은 무려 95세! 노익장들의 활약은 가히 놀랍다. 칼 라거펠트, 애나 윈투어 등 이미 레전드가 된 이들의 활약은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올해 88세인 배디 윙클은 308만이라는 팔로어를 거느리며 어린 친구들도 하기 어려운 파워 인스타그래머로 등극, ‘인스타그램 오브 더 이어(Shorty Award for Instagrammer of the Year)’ 위너로 뽑히며 ‘노 리미트(No Limit)’ 즉, 한계란 없음을 보여주었고, 73세의 로렌 허튼(Lauren Hutton)은 보테가 베네타 런웨이에 지지 하디드와 함께 나란히 걸어 나와 우아한 아우라를 뽐내더니, 라프 시몬스의 첫 번째 2017 캘빈 클라인 언더웨어 캠페인의 모델로 당당히 노출 신을 촬영했다. 점점 우아한 할머니로 변해가는 메릴 스트립은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과감한 지방시 가운을 걸친 채 거침없는 반 트럼트 내용의 수상 소감을 전하며 젊은 배우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연륜을 느끼게 했고, 독특한 스타일의 95세 아이리스 아펠은 꼼 데 가르송을 입고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영국의 커버 촬영은 물론 아이그너의 새로운 뮤즈로 활동하고, 봉 마르셰 백화점과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패션은 살 수 있죠. 하지만 스타일은 바로 당신이 만드는 거랍니다.” 스타일에 관해 확실한 철학을 지닌 아이리스 아펠 여사. 지난 4월 캐나다의 아트 & 패션 시상식 ‘2017 CAFA 어워드’에서 내로라하는 패셔니스타들을 제치고 인터내셔널 스타일 아이콘으로 선발됐다. 82세의 여류 소설가 존 디디온(Joan Didion)은 셀린의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유르겐 텔러의 피사체가 됐으며, 73세의 뮤지션 조니 미첼(Joni Mitchell)은 에디 슬리먼 시절 생 로랑의 록 뮤즈로 등극했다. 돌체 앤 가바나 캠페인의 세 자매 할머니, 구찌 크루즈 캠페인에 등장한 80세의 영화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 등 젊고 싱그러운 모델보다 산뜻한 시니어 뷰티가 각광받는 시대다. 밀레니얼 시대의 조연이 아닌 주연급으로 떠오른 노익장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Long Live Gran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