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돌리는 족족 가파른 뉴스들만 경험하던 중 허기진 마음을 뜨끈하게 채워주는 일이 있었다. 옆자리 후배 에디터의 출산 소식. 반가운 인기척에 맨발로 뛰어나가는 이의 마음으로 축하를 보냈다. “진짜 어른이 됐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도 그랬다. 결혼한다는 후배의 전언에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됐다’며 뿌듯해 했다. ‘결혼하고 애 낳아야 진짜 어른’이란 어른들의 얘기에 휘둘려 건넨 진심 빠진 레퍼토리는 아니었다. 나보다 세상에 늦게 나왔어도 그녀는 나에 앞서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더 많은 세상사를 접했다. 삶의 경험치에 의미를 두고 서열을 매긴다면 후배는 ‘인생 선배’. 예능에서 봐온 ‘육아’라는 미지의 세계도 곧 그녀에게 다큐멘터리이자 현실로 작동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후배는 ‘선배, 이거 챙기세요’ ‘저거 해요’ 운운하며 이런저런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토를 달지 못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녀는 나보다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람이니 말이다. 그런데 경험치가 많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게 맞는 이치일까. 그러하다면 얼만큼의 경험을 쌓아야 할까. 어릴 적 내가 갖고 있던 어른의 이미지는 운전을 하고 쓴 커피를 마실 줄 아는 성인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핸들을 한 손으로 잡고도 운전을 하고, 어떤 날은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들이킨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20년 전의 나에게 “봐봐! 원하는 대로 어른이 됐어”라고 자랑하지는 못하겠다. 어른이 되기 위해 해야 하고, 또 알아야 하는 것들이 보이스카우트에서 배운 매듭법 종류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았으니까. 어른이 되는 길을 알려주겠다는 자기계발서와 지침서가 수두룩한 것만 봐도 그렇다. 심지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제목의 위압감은 막강하다. 허나 어른이라 믿었던 사람이 세상일에 치여 눈물을 글썽이는 걸 보면 어른이란 지위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어른이란 단어가 본래 의미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입 닫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도록 종용하는 일종의 진통제로 쓰이는 건 아닐까. 고생을 해야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기형적인 신화가, 고생이 곧 자산인 어르신들의 ‘요즘 애들은 안 돼’라는 푸념이 활처럼 휜 허리를 뻐근하게 만드는 요즘이다. 개인 사정을 접어둬도, 어른으로 사는 일은 세간의 관심사인가 보다. 매해 최고 이슈를 골라 ‘올해의 단어’로 박제하는 옥스퍼드 사전은 근래에 ‘어덜팅(Adulting)’을 후보로 거론했다. 어른을 뜻하는 어덜트(Adult)에 ‘ing’를 붙인 단어의 의미는 자못 익숙하고 고루하다. ‘어른들이 하는 일을 하며, 책임감 있는 어른의 특성에 맞게 행동하라는 것’. 윤리 시간에 배운 바른 생활을 하며, 책임감을 가지라는 지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이 단어가 지금 시점에 조명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옥스퍼드 사전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어덜팅은 과시적 어른다움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애정과 애증이 섞인 태도를 반영한다. 어른이란 지위에 감탄하면서도 어른답게 굴기 위한 체크리스트에 미묘한 불만을 느끼고 있단 얘기다. ‘어른답기’를 강요하는 세태에 대한 묘한 반항 심리랄까. 어덜팅이 지닌 양가적 함의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어른이란 단어는 지독한 실망과 아픔을 잘도 안기고 있다. 3년 전 이맘때 ‘어른들의 잘못’으로 무고한 아이들이 희생됐고, 어른들의 무능과 무책임은 잔인한 현실에 희생자들을 한 번 더 수장시켰다. 만약 그 아이들이 살아서 돌아왔다면 세월호 참사 당일 가장 큰 책임자임에도 나 몰라라 했던 사람보다, 수백 명의 삶을 집어삼킨 비극을 해상 교통사고라고 폄하한 사람보다, 관습처럼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라며 넘어가려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은 어른이 됐을 거란 생각을 하니 허망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기보다 생존이 더 시급한 현실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성인들에게 요구되는 ‘어른답기’는 유쾌할 리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어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진 참담한 현실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짊어지게 될 어른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다. 두 살짜리 아이가 헤집은 식판처럼 한국 사회를 마구 어질러놓은 어른들의 실수를 수습하고 책임져야 하는 ‘어른들의 어른’. 그런 사람이 진짜로 존재할까. 의문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한 번 더 믿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