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국수의 오리진을 찾아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자고로 '막'이란 글자가 들어간 것 중에서 좋은 것이 있었나? 막장, 막말, 막사발.... 거칠게, 성기게, 대충이란 뜻으로 쓰이는 '막'이 '국수'와 만나 절대미각을 자극한다. 오늘은 막국수가 막 먹고싶다. :: 푸드,칼럼,소개,정겨운,친근한,활기찬,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푸드,칼럼,소개,정겨운,친근한

[Profile]이름: 낭만식객성별: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양성성 소유자취미: 한 종목에 꽂히면 석 달 열흘간 한 놈만 팬다.특징: 사주팔자에 맛 미(味) 자가 있다고 용한 점쟁이가 일러줌과제: 어지러운 중원에 맛의 달인, 진정한 고수 찾기주변에 막국수 좋아하는 인간들이 많아 손에 붙들려 여기 저기 무던히 먹으러 다녔다. 심지어 취재한답시고 막국수 촌을 방문한 적도 수차례. 막국수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막국수'란 단어에서 모종의 기운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것은 흡사 본 식객이 냉면을 떠올릴 때 드는 느낌과 비슷한데, 기억의 가장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맛의 원형질에 대한 모태적 신앙과도 닮았다. 종목 자체가 주는 신성불가침의 믿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고 해도 턱 무릎 꿇고 아, 이 집이 정말 지존이십니다요 할 만한 곳은 만나지 못했더랬다. 막국수는 분류상 국수가 아닌가. 국수는 역시 면이 생명 아닌가. 하지만 여느 막국수집에서는 그저 그런 면에 고춧가루, 설탕, 참기름 범벅을 해서 혀를 마비시킴과 동시에 면에 대한 평가 자체를 가로막아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메밀을 넣은 것인지 전분을 넣은 것인지 메색을 내는 검은색 가루를 넣은 것인지. 10년~20년 전통의 막국수집이라는 간판을 크게 내걸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최 그런 맛으로 어떻게 1~2년을 버틸 수 있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신기할 따름인 곳들이 많았기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진짜 막국수는 멸종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조용히 체념하기 시작했다. 춘천에서 한 고수를 만나기 전까지는.막국수의 주 재료는 메밀가루다. 강원도에서는 메밀국수라 부르고, 원래 강원도 사투리로 하면 모밀국수다. 소금을 흩뿌린 듯 숨막히게 아름답다는 도 원제목은 이다. 문학적 배경지인 봉평은 메밀국수집들이 집단촌을 이루어 관광객과 시즌에 몰려드는 스키어들로 주말에 주차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물레방아도 걸어놓고 옛날 쓰던 농기구들도 걸어놓아 한옥에서 허생원과 조선달을 이야기 삼아 재료비 얼마 안 들어 보이는 메밀국수를 제법 돈 주고 먹는 기회를 얻는다. 먼데까지 찾아가서 문학여행도 하고 메밀국수도 먹고 뭐가 나쁘겠냐고 하겠지만 그 음식이라는 것이 지방 고유의 색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소울푸드까지는 아니더라도 토속음식의 원형질에 가까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물을라치면 대답이 좀 궁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전시 관람용으로 집단 촌을 이루어 으리으리하게 한옥 지어 대충 국수 척척 말아내면 다가 아닌 게다. 봉평보다 숫적으로 월등히 앞서는 춘천의 막국수집들은 최근 춘천고속도로 개통으로 난리가 났다. 서울에서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편의성 때문에 막국수 강자의 자리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춘천하면 닭갈비가 아닌가라고 묻는 이도 있지만 춘천하면 역시 또 막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헌데 이 춘천막국수의 역사도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원래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땅이 비옥하면 오히려 웃자라서 영 못 쓰게 된다. 하니 먹을 것 풍부하지 않고 땅 척박한 강원도에서 감자와 함께 즐겨 먹었던 것이 메밀국수. 면을 뽑아 막 삶아서, 아무때나 쉽게 막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춘천에서는 막국수로 불렸다. 춘천이 막국수 본령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1950년대 이후, 메밀제분의 중심지가 되면서부터이다. 척박한 땅에서 난 메밀을 가루 내 별다른 부가 재료 없이 간장이나 김치국물에 비벼 먹던 것이 양념도 세분화하고 위에 올리는 고명도 푸짐하게 담아 서울서 경춘가도 타고 콧바람 쐬러 놀러 온 사람들에게 저렴하면서도 지역색 있는 음식으로 각인을 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메밀면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생겨난다. 메밀은 원래 찰기가 없다. 해서 100퍼센트 메밀을 가루로 내면 입에서 툭툭 끊어진다. 막국수로 유명한 집들도 100퍼센트 메밀을 쓰기 어렵다. 30퍼센트 이상만 늘어나도 맛이 퍽퍽하고 까끌까끌한 감촉 때문에 대중선호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해서 메밀에 적당히 전분을 섞어 입에서 쫄깃하게 느껴지는 탄성을 늘이곤 한다. 메밀을 가루로 낼 때는 겉껍질을 벗겨내고 알갱이를 이용한다. 집에서 할머니가 해주실 때는 맷돌로 갈아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도정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에도 메밀 알맹이를 이용하면 거무튀튀한 색이 나지 않았다. 요즘 메밀 100퍼센트라고 우기며 시커먼 면을 내놓는 집들은 겉껍질을 함께 제분해 그렇다고 하지만 먹어보면 냉면 뺨치게 쫄깃해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하니 막국수 귀신들이여, 막국수집 가서 면이 찰기 없다고 불평하지 마시라. 달달하고 쫄깃한 막국수 먹으려면 집에서 해먹을 것이지 전국 팔도 막국수를 서울 사람 입맛으로 통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국 맛집들의 양념이 획일화하는 데에는 손님들이 '내 입맛에 맞게' 주문하기 때문이라는 향토음식점 사장님들의 불평이 환청처럼 귀에 울린다. 음식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온 나라의 찌개가 육개장 국물로 통일되고, 다시다 없으면 장사 못하게 되는 상황은 노 땡큐다. 춘천 400여 개 막국수집을 다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만난 대룡산 막국수는 경험하지 못했던 '막국수의 원형질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여기게 하는 집이다. 으리으리한 건물도 아니고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옛날 집을 개조해서 식당으로 쓰고 있다. 다소 생뚱맞게 '군장병우대업소'라는 간판이 실소를 자아내지만 어렸을 적 외가에 놀러온 때처럼 문지방을 넘어서면 군데군데 가정집에서 쓰던 서랍이며 액자 등이 보인다. 막국수를 주문할라치면 간식, 보통, 양많이로 나눠져 있어 보기와 다르게 소식인 사람에게도 선택이 열려있다. 양이 많은 사람이라도 전병이니 보쌈이니 전이니 하는 것들을 다 맛보고 싶은 욕심을 채울 수 있게 양 적은 막국수를 주문하면 배부른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도 메밀 음식의 파노라마를 경험할 수 있게 되어 반갑기 그지 없다. 주변 설명은 여기까지. 식탁에 앉으면 우선 면수가 나오는데 약간 단맛이 느껴지면서도 들척지근하지 않고 개운하면서 구수하다. 드디어 기다리던 막국수, 일단 소박한 모양새에 안도감이 든다. 둘둘 말은 면 위에 고추장 범벅을 흥건하게 올려놓은 것이 아니라 다소 적어 보이는 양념에 소고기 고명, 무채, 메밀싹을 조금씩 올려 재료 과다로 인한 맛의 뒤엉킴을 최소화했다.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한 메밀향이 느껴지는 면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바로 그 맛. 인공조미료의 억지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양념은 막국수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다. 그제서야 본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소박한 우아함이야말로 우리 음식의 정수가 아니겠는가. 한국음식 세계화한다고 온갖 희한한 프리젠테이션에 정성 쏟아 붓지 말고 아직까지 명맥 살아있는 숨은 고수들을 찾아 한국음식의 원형 탐구에 골몰해야 하지 않을까. 돌아서서 잠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읊조렸다. 죽기 전에 막국수의 원형을 경험해 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Information대룡산막국수 033-261-1421 왠만한 네비게이션에는 다 나와있다.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바로 나와 찾기는 어렵지 않다. 춘천고속도로 개통으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달려가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집. 주말 등산객들의 발에 채이지 않으려면 시간대를 잘 잡아 방문하는 것이 요령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