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힘, Yozoh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시인 함민복은 노래했다. 안으로 구멍을 팔지언정 표면은 부드러운 수평을 유지하는 뻘 생물의 말랑말랑한 힘에 대하여. 달콤한 목소리 뒤로 차돌 같은 자아를 숨기고 있는 그녀는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잡아끈다. 요조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 싱어송라이터,인터뷰,음악적인,예술적인,부드러운,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싱어송라이터,인터뷰,음악적인,예술적인,부드러운

My Name is Yozoh주성치와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좋아하고, 가끔 어른인양 아메리카노를 홀짝대지만 실은 시럽 듬뿍 넣은 달달한 커피를 더 선호하는, 폭 패인 볼우물이 마냥 귀엽기만 한 싱어송라이터, 요.조. 청량한 목소리와 예쁘장한 얼굴, 남다른 ‘옷발’에 위트 넘치는 글 솜씨까지, 신의 불공평함을 몸소 보여주는 그녀에게 ‘반칙’이라고 적힌 옐로카드를 들이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요조는 시종 겸손했고, 때때로 심각했으며, 아주 가끔 웃겼다. 한 단어 한 단어 신중히 말을 고르는 모습은 자신의 개인홈페이지(www.yozoh.com) 속 엉뚱 발랄한 모습 - 주성치 얼굴이 앞뒤로 박힌 ‘희극지왕 티셔츠’를 주문 제작한다든가 - 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하기야 요조라는 예명부터 어쩐지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의 주인공 ‘오바 요조’에서 따온 것이다. 머시멜로우 같이 달콤한 그녀에게 음울하기 짝이 없는 오바 요조라니!) “아! 그거 어떤 건지 알아요. 저도 남들에게서 그런 걸 느낄 때가 있거든요. 한번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아주 우울한 문체의 아티스트를 봤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굉장히 활달한 타입인 거예요. 근데 그분은 반대로 절 보고 놀라시더라고요. 생각보다 너무 얌전하다고… 서로 충격 받고 멍하니 서 있다가 어색하게 헤어졌던 기억이 나요. 하하.”홍대 앞 도넛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평범한 대학 시절. 스물 셋의 요조는 그야말로 ‘얼떨결에’ 마이크를 잡았다. 당시 데뷔 앨범을 준비하던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이지린이 동네 친구인 그녀에게 새 곡의 가녹음을 부탁한 것. 그렇게 재미삼아 부른 두곡의 노래 ‘샐러드 기념일’과 ‘바나나 셰이크’가 그대로 앨범에 수록되면서 뜻밖의 인기를 모았고, 요조의 아기 같은 목소리와 속살대는 창법은 감성적인 10~20대 리스너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후 그녀는 드라마 OST에 객원 보컬로 참여하는 한편 015B, 드렁큰타이거 등 굵직한 가수들의 피처링 작업을 도우며 차차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2006년, 또 한 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으니 담백한 가사와 어쿠스틱한 멜로디로 홍대 일대를 주름잡던 2인조 혼성듀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이하 ‘소규모’)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우연히 같이 술자리를 가진 요조에게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 그들은 그녀에게 코러스 보컬 자리를 제안했고, 홍대 앞 클럽을 전전하며 함께 무대에 서기를 여러 차례, 급기야 요조를 객원 보컬로 영입해 스페셜 앨범 (2007)를 발매하기에 이른다. 드럼과 기타가 전부인 소규모의 소박하고 조촐한 세션은 요조의 산뜻한 음색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고, 요조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인트로 ‘My Name is Yozoh’를 비롯해 주성치에 대한 사적인 애정을 토로한 ‘슈팅 스타’, 아기자기한 의성어가 귀를 간질이는 ‘바나나 파티’ 등 단순하면서도 흥겨운 이들의 음악은 싸이월드와 블로그를 넘나들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그때 음악을 들으면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게 느껴져요. 중간 중간에 튀어나오는 추임새도 다 즉흥적인 거구요. 다 같이 이불 덮고 둘러앉아 마이크 하나 놓고 부른 곡도 있고, 메트로놈 없이 그냥 저냥 잡담하면서 녹음한 곡도 있죠.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요조씨 그때 웃으면서 노래 부르지 않았냐고. 노래하는 발음이 꼭 웃는 것 같다구요.” 이후 신화의 에릭과 디지털 싱글 를 발표하며 또 한 번 유명세를 치른 요조는 2008년, ‘일상의 여행자’라는 의미를 담은 첫 정규앨범 를 발표하며 홍대 인디신의 특별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허밍 어반 스테레오와 소규모, 캐스커, 세렝게티, 재주소년, 루싸이트 토끼 등 언더그라운드의 쟁쟁한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이 놀라운 데뷔작은 소규모에서 벗어난 독립체로서 그녀의 매력을 한껏 드러냈다. 요조는 타이틀곡 ‘에구구구’를 비롯해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는데, 일상의 장면 장면을 세밀하게 포착해 가사로 엮어내는 솜씨는 단순히 ‘귀여운 보컬’로만 각인되었던 그녀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I'm Not a Muse“나의 사랑하는 남자친구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앉아있다 일어설 때면 언제나 에구구구구구구구구구 소리를 내지요.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어요. 에구구구~” 요조의 정규 앨범에 수록된 ‘에구구구’의 가사다. 그녀의 노래는 순간의 감상을 재빨리 종이에 옮겨 담은 크로키처럼 즉흥적이다. 사소한 일상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서 유의미한 리추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바로 요조식 화법이다. 어린 시절 ‘해골 그리기’ 놀이의 주제곡을 재치 있게 풀어낸 ‘아침 먹고 땡’, 누구나 읽었을 를 통해 관계의 본질을 재조명한 ‘바오밥나무’ 같은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하찮은 일상의 풍경 위로 근사한 액자 프레임이 포개지는 느낌이다. “우연히 원하는 옷을 엄청 싼 값에 건지는 때가 있잖아요. 제가 좀 그런 타입인 거 같아요. 별 일 없이 지내다가 “어?!” 하고 쓸데없는 데서 충격을 받는 거죠. 작정하고 가사를 쓰는 타입은 아니고, 쇼크가 먼저 찾아오면 그걸 글로 풀어내는 게 일반적인 순서예요. ‘에구구구’ 같은 경우가 그런 건데, 그러고 보면 제 음악을 만드는 건 다 주변 사람들인 거 같아요. 모든 노래에는 다 보이지 않는 주인이 있죠. 후후….” 난데없이 나타난 이 재능 많은 보컬에게 질투의 시선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반반한 얼굴과 예쁜 목소리로 이름을 알린 탓에 요조는 종종 진중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아야만 했으니. 그중에서도 가장 속상한 건 데뷔 때부터 따라다닌 ‘홍대 여신’, ‘홍대 얼짱’이라는 수식어. 실제로 그녀의 외모에 따른 인기 편중으로 소규모와의 활동에 잠시 이상기류가 생기기도 했으니, 그저 배부른 투정이라고 넘기기엔 좀 심각한 얘기다. (이것은 올해 초 개봉했던 음악 다큐멘터리 에서 주요 갈등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신’이니 ‘얼짱’이니 그런 수식어가 부각되면서 저를 덮어놓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생겼어요. 제가 만든 말도 아닌데 말이죠. 예를 들어 음악은 좋은데 외모가 그저 그런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있다고 쳐요. 그럼 그냥 음악이 좋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저를 걸고넘어지는 거예요. ‘얼굴 하나 믿고 노래하는 요조보다 당신이 훨씬 아티스트답다’ 이런 식으로. 한때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 화가 나서, 인터뷰 할 때마다 ‘여신’이라는 말만은 제발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물론 지켜진 적은 거의 없지만요. 하하. 솔직히 제 입으로 말하기도 웃긴 얘기잖아요. 어찌 보면 칭찬인데 제가 뭘 그리 잘났다고… 어려운 문제예요.” 요조가 그저 얼굴만 반반한 아티스트가 아니라는 건 최근의 행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얼마 전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감독 입봉작 에 출연하며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요조가 맡은 역은 슬픈 사랑의 기억을 가진 신하균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나는 여자 ‘은하’. 사랑의 상처로 얽혀있는 다섯 명의 슬픔과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이어 노테르담국제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되며 국제적인 화제를 모았다. 요조로서는 자랑스러운 스크린 데뷔작이 된 셈이다. “영화 보고 나서 감독님한테 그랬어요. 이제까지 살면서 제일 무서운 영화가 이었는데 이제 로 바뀌었다고. 제 얼굴이 스크린 한가득 나오는데 어찌나 손발이 오그라들던지… 너무 쑥스러워서 시사회 내내 의자 속에 푹 파묻혀 있었어요. 물론 저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정말 굉장했지만요.” 사실 처음 배역을 제안 받았을 때 그녀는 펄쩍 뛰며 거절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출연하면 영화에 폐가 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정성일 감독은 평소처럼 노래하듯 연기하면 된다며 그녀를 격려했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이를 수락한 그녀는 시나리오를 보고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제 홈페이지에 있는 일기들 있잖아요. 그거로 제 대사를 다 만드신 거예요. 덕분에 힘 들이지 않고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감독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에요. 사실 저랑은 녹차 아이스크림 하나 놓고 맛이 있네, 없네 티격태격 하는 사이거든요! 영화 끝나고 우연히 인터넷에서 감독님 평론을 보는데 묘한 배신감 같은 게 들더라고요. 하하하.” 그녀의 영화 출연은 스크린 나들이 수준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단편영화 으로 유명한 김종관 감독의 첫 장편영화 는 이미 촬영까지 다 마친 상태. 영화 삽입곡까지 직접 작곡했을 만큼 깊숙이 참여했다. 뮤지션으로서의 길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얼마 전에는 일본 진출을 앞두고 그동안 부른 노래들 중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온 10곡을 모아 일본어 앨범을 완성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KBS DMB 라디오 ‘프레시 업’의 DJ로 활동한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라디오에서는 평소 낯가리기로 유명한 요조의 의외로 당찬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어눌한 말투로 가끔 “요조씨, 일본 분이 한국말을 참 잘하시네요!” 라는 피드백을 듣기도 하지만.)올해로 서른 살. 여전히 청춘 같기만 한 인디신의 꽃, 요조. 촬영을 마친 후 자신의 사진을 보고 실제로 이렇게만 생기면 소원이 없겠다며 능청스레 농을 치는 그녀에게 삼십대가 된 소감을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다. “이번에 일본어 앨범 녹음할 때 모니터 한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고요. 목소리가 맛이 갔다고. 푸하하. 일단 뭐 술도 너무 많이 먹고, 담배도 많이 피다보니… 제가 봐도 좀 안 예쁘기는 해요. 전 그게 아주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방향이라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안 그런가 봐요. 제가 김현철 선배님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분 앨범이 굉장히 많잖아요. 1집부터 쭉 듣다 보면 목소리가 변하는 과정이 보여요. 저도 그렇게 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삼십대가 된 요조의 음악이 궁금하다고 묻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주 슬픈 노래일 텐데, 장르는 댄스가 될 지도 모른다고. 과연 요조다운 대답이다. 말랑말랑한 음색 속에 숨겨진 단단한 자아. 그 이중적인 매력이야 말로 요조가 가진 힘일 테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