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은 멕시코 출신의 유명 건축가다. 1980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남미 건축가로서 최초 수상한 기록을 꼽지 않더라도, 그는 누구나 ‘바라간이 지은 건물’이라는 걸 눈치채게 하는 개성 강한 건축가다. 가령 바라간의 건축물에는 단순한 선과 기하학적 형태, 시그너처 컬러인 분홍색이 빠지지 않는다. 푸른 하늘과 절대적으로 어울리는 분홍 벽, 하늘을 향해 뻥 뚫린 공간감이 기묘한 이 집 카사 페드레갈(Casa Pedregal)처럼 말이다. 한창 개발 붐이 일던 1940년대, 바라간은 오래전 포포카테페틀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덮인 멕시코시티 남서부 지역의 대부분을 사들였다. 당시 디에고 리베라, 마티아스 고에리츠 같은 예술가들이 영감의 산물로 사랑하던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와중에 한 가족이 지역의 도시인 엘 페드레갈에 집을 의뢰했고 바라간은 도시가 멕시코의 유토피아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을 지었다. 그가 디자인한 집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건축적 요소를 아낌없이 발휘한 집이 바로 카사 페드레갈이다. 집주인이 될 프리에토 가문에 바라간이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원래의 집 상태 그대로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 것. 1951년부터 2011년까지 거의 60여 년 동안 약속을 굳건히 지킨 프리에토 가문이 떠나자 돈 가진 사람들이 들개처럼 모여든 건 놀랍지도 않다. 카사 페드레갈은 이젠 세상에 없는 바라간의 선물이자 도시를 대표하는 보물과 같으니까. 현대건축이라는 이름 아래 흉측한 건물로 변할 뻔한 카사 페드레갈을 구원한 이는 사업가 겸 전직 현대미술 작품 수집가인 세사르 세르반테스다. 3년 전 매물시장에 나온 카사 페드레갈을 본 세르반테스는 이사를 위해 1년 동안 공사 중이던 집을 내팽개치고 당장 카사 페드레갈에 매달렸다. “다른 사람 손에 잘못 들어가서 바라간의 작품을 잃어버릴까 두려웠죠.” 카사 페드레갈을 구입하는 과정에 대해 무척 비싼 프로젝트였다고 덧붙였다. “바라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이 집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무척 비쌌어요. 제가 열정적으로 임했던 예술 작품 수집도 굉장히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죠. 그래서 새로운 모험에 전념하기 위해 내 작품들을 팔기로 했어요.” 그가 ‘전직’ 현대미술 작품 수집가가 된 이유이자 카사 페드레갈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다. 카사 페드레갈의 주인이 된 세르반테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개조 작업이었다. 바라간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면서 개조라니. 어쩐지 앞뒤가 안 맞는 설명에 의구심이 들었으나, 집을 눈으로 쓱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의심은 금세 거둬진다. 단순한 선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공간. 난간 없이 낸 계단들.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는 창문들. 멕시코 전통문화를 품은 오브제. 바라간을 대표하는 선명한 분홍색으로 이뤄진 벽. 카사 페드레갈은 처음 지어진 모습 그대로다. 세르반테스는 바라간의 손길 그대로 집을 부활시켰다. “그전까지 많은 예술품을 모아왔지만 사실 저는 벽에 액자를 걸지 않고 빈 상태로 놔두는 스타일을 선호해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그림자의 향연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죠. 그에 비춰보면 바라간의 건축 구조와 그의 상징인 분홍색 벽들은 완벽해요.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죠. 해질 무렵이 되면 벽들이 금색으로 변할 겁니다. 한번 지켜보세요.” 다만 세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수정한 부분도 있다. 바라간이 디자인했던 오리지널 가구는 이미 상당수 분실된 상태였고, 나무 벽난로는 전기 버전으로 교체해야 했으며, 다이닝 룸과 공간 구분이 필요해 벽을 세웠다. 그 외엔 바라간의 건축적 취향을 그대로 보존했다. 세르반테스는 낡은 외벽에 치장 벽토를 덮은 후 40여 차례나 페인팅을 해 바라간이 추구하던 선명한 색을 되찾았고, 골동품 딜러와 벼룩시장을 헤집고 다니며 바라간이 디자인한 오리지널 가구를 찾아내 집 안을 채웠다. “오리지널 제품을 찾기 위해 광고도 냈어요. 덕분에 바라간이 디자인한 세라믹 램프들과 나무 의자들, 장식용 가죽 소파를 구할 수 있었죠.” 꿈에 그리던 장난감을 손에 쥔 꼬마처럼 웃는 그에게 궁금해졌다. 왜 자신의 집을 ‘바라간의 집’처럼 꾸미고 싶을까? 세르반테스의 집이 아니라 여전히 ‘카사 페드레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괜찮은 걸까? 석양과 함께 금빛으로 변한 분홍 벽 앞에서 그가 말했다. “대단한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꿈이자 특권이죠. 무엇보다 카사 페드레갈은 그동안 내가 소유한 아트 피스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