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웠지만 불안정했던 60년대, 영국 팝아트의 시작을 알리며 데뷔한 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올해 80세의 현재진행형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그의 대규모 전시가 5월 9일까지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열린다. 아마도 그의 작품 중 모두가 기억하는 한 점은 ‘물거품 Bigger Splash’일 텐데, 작품 속의 대단히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호크니의 성장 과정에서는 매우 반항아적인 족적을 찾을 수 있다. 급진적 정치 성향을 지닌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졸업하는 데 필요한 작품 설명 글을 쓰지 않아 졸업장을 줄 수 없다는 영국왕립예술학교를 향해 보란 듯이 ‘학위 The Diploma’(1962)라는 제목의 작품을 만든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물거품’으로 돌아가면 이 작품은 호크니가 왕립예술학교 졸업과 함께 런던을 떠나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아티스트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 서부 해안의 빛과 색을 담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해안의 하늘을 배경으로 간결하게 서 있는 야자수 두 그루와 지붕이 낮은 단층 주택, 누가 방금 물에 뛰어들었는지 더 크게 튀어 오르는 물거품(Bigger Splash). 1년의 대부분을 우중충한 날씨와 살아야 했던 영국 요크셔 출신의 호크니에게 캘리포니아의 빛과 태양, 그것을 받고 있는 ‘스위트 홈’은 깊은 인상을 남긴 듯하다. 그가 그린 작품 속 수영장 너머로는 캘리포니아식의 낮은 건물이 보이고, 언제나 야자수와 맑은 하늘이 함께한다. 그 외에 등장하는 오브제들 역시 파스텔 계열로 채색됐다. 그가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졌는지 디자인에 흥미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후대의 디자인 애호가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필연을 품고 있다. 우리가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 때 거론하는 모든 법칙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유색 지붕을 얹은 독채 주택과 항상 가까이 있는 식물, 채광이 훌륭한 야외의 개인 공간 같은 것은 요즘을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상적으로 동의하는 집의 요소가 아닌가. 얇고 가벼운 캘리포니아의 빛과 평면들을 파스텔 톤으로 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무척 가볍게 느껴진다. 실제로도 그는 수영장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재료인 아크릴 물감을 활용했다. 캔버스에 두텁게 물감을 쌓아나가는 유화나 바탕이 되는 종이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수채화와는 달리, 아크릴 물감은 두껍지 않으면서 가볍게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2006년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이 작품을 260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들여 구매하기 전까지 가로와 세로 크기가 각 2.5m에 달하는 ‘물거품’은 작품의 크기를 소화할 수 있는 어느 저택의 어느 빈 벽에 자리하지 않았을까. 아니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만나더라도 보통의 집 천고와 동일한 사이즈의 작품을 보며 가상의 복고풍 캘리포니아 에어비앤비를 마주한 기분을 느낀 건 아닐는지. 호크니는 친절하게도 홈페이지(hockneypictures.com)를 통해 5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주요 작업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회화 작업의 경우 10년 주기로 스무 점의 대표작을 시기별로 선별해 놓았는데 70~80년대의 대표작 중에는 로스앤젤레스로 거처를 옮기고 자신의 집을 마련한 호크니가 바라본 실내 공간을 그린 작품들을 스스로 여럿 추려 업로드해 두었다. 그가 본 미국 서부의 실내는 작가 특유의 색감과 밝은 빛이 가득한 공간에서 출발해, 말리부 해안에 마련한, 어딘지 모르게 멤피스 디자인의 가구와 소품을 연상케 하는 오브제로 둘러싸인 작가의 집으로 이어진다. 이 이미지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호크니가 자신의 집을 매우 사랑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호크니의 실내에선 의자에 앉은 인물을 그린 초상화나 공간에 의자가 놓인 장면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물들은 대체로 뭔가 하고 있는데, 무릎에 고양이를 얹어놓거나, 신문 혹은 책을 펼쳐 읽는 중이기도 하다. 호크니가 작품 제목을 꽤 담백하게 짓는 편이기에 ‘중고 의자 Used Chair’(1988) ‘파란색 기타가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Blue Guitar’(1977) ‘풍경이 보이는 말리부 집의 거실 Livingroom at Malibu with View’(1988)처럼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해 주는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작가의 작업은 꾸준히 변화해 왔으며, 호크니의 삶에도 적지 않은 사건과 변화가 일어났다. 2012년에는 작업을 보조하던 어시스턴트가 약물 과용으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이 호크니는 미국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왔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를 겪었고, 그 탓에 60년 동안 피워온 담배를 끊기도 했다. 사물이 지닌 다양한 모습을 한 번에 보여주려는 다소 과격한 시도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시선에 따라 형상을 추상화하고, 밝은 빛이 비치는 공간에 놓인 듯 그려지는 사물의 색상은 짙은 원색도, 창백한 무채색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 사물의 윤곽선은 여전히 날카롭게 구분되지 않지만, 경계가 흐려지거나 뭉개지는 일 없이 각각의 오브제가 하나의 공간에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무게중심을 맞춘다. 여든의 호크니는 50여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태양도 지금은 그의 머리 위에 없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회화 작업을 지속하고 있고, 여전히 보는 이에겐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조금이라도 ‘카피’해 보고 싶은 공간을 창조한다. 어디에도 없는 그림 속의 공간을 보고, 어디에나 있는 현실 공간을 구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지피는 부차적 생산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