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올해부터 텃밭을 만들어 가꿔보면 어떨까? 그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이런 결정을 할 때 우리의 성향은 반대를 향하곤 한다. 남편은 이리저리 따져보고 결정하는, 실리를 추구하는 사람. 그에 반해 나는 아무리 가보나마나 한 길이라고 해도 호기심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첫 걸음을 떼고야 마는 사람이다. 남편이 돌다리를 건너기 전 두드려볼지 말지 미리 조사하는 동안 나는 이미 돌다리 중간쯤을 뛰어가고 있다. ‘건너가보면 알겠지’라고 생각하는 타입이랄까. 우리가 먹는 식재료의 양을 대충 따져 보아도 사 먹는 게 낫다는 실리주의자의 결론을 뒤로 하고 나는 ‘여기까지 와 살기 시작했는데,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겠다!’ 라는 다짐을 품게 되었다. 나의 작정을 남편이 막을 수 없고 나 역시 남편에게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할 수 없다. 결국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시작해보기로 했다. 지난 편에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집 뒤편에는 전 주인이 텃밭으로 가꾸던 공간이 있다. 말 그대로 손바닥만한 땅이다. 지난여름에는 무성한 잡초가 모여 작은 숲을 이루었던 그 땅이 겨우내 얼어붙어 있다가 얼마 전 몇차례 내린 봄비를 보약 삼아 다시 잡초 생산을 시작했다. 하룻밤 자고나면 잡초가 두배쯤 늘어나 있고, 비라도 내린 다음날엔 한뼘쯤 자라 무성해지니,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나도 처음부터 텃밭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쪼그려 앉아 땅을 후비적거리는 일을 기꺼워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텃밭가꾸기에 대한 작은 호기심을 강한 열망으로 바꿔준 사람이 있었다. 지난 2월, 홀로 아래채에 하룻밤 묵으러 오신 손님이었다. 지금까지 우리집에 민박 손님 중 가장 고령일 그분은 대학생 딸을 둔 어머니셨다. 어떤 계기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대화하던 중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퇴직한 분이라는 것, 그리고 하동에 집을 구하고 싶어 홀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남편이 발령을 받아 강원도 어느 시골에서 몇 년 살게 됐어요. 이사 간 집 앞에 조그만 땅이 있었는데 거기에 텃밭을 만들었지요. 어느 날 장에 나가 삽, 호미 등을 사다가 돌밭이었던 땅을 일구고 씨앗과 모종을 심어 수확해 먹었어요.” 벌써 이십년 가까이 된 일인데, 마치 어제의 일을 회상하듯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 “새끼손가락만한 오이가 열린 걸 발견했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해요. 나중에 따서 먹어보면 맛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힌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몇 년,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 때가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인 것 같아요.” 그 몇 년을 지낸 뒤 지금까지 줄곧 아파트에 살았지만, 그 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잊지 못해 다시 시골집을 찾는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씨앗을 심기 위한 준비물, <텃밭 가꾸기 대백과>, 호미, 꽃삽, 씨앗과 흙 그리고 꽃을 사온 뒤 버리지 않고 모아 둔 모종 포트. 모종 포트에 대파, 로메인상추, 부추 등의 씨앗을 심었다. 싹이 나면 텃밭으로 옮길 것이다.손님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건드렸다. 그날 이후로 뒷마당의 그 손바닥만한 땅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여러 날의 고민 끝에 텃밭을 작게 시작해보기로 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씨앗을 사는 일이었다. 오일장 한쪽 늘 같은자리를 지키는 씨앗 아주머니를 찾아가 대파와 로메인 상추, 당근, 옥수수, 고수 등의 씨앗을 샀다. 씨앗으로 심으면 잘 안난다, 비료를 안 뿌리면 제대로 안자란다, 비닐 멀칭을 해야 한다 등등 다양한 정보와 주변의 조언이 있었지만, 나는 단순한 방식을 택했다. 한권의 책을 맹신하기로 한 것이다. 우선 모종으로 키워 옮겨 심어야 하는 것과 씨앗상태로 땅에 뿌려야 하는 것을 구분했다. 그리고 모종으로 키울 씨앗은 꽃 모종을 살 때 딸려왔던 모종 포트에 흙을 채워 심었다. 거기까진 쉬웠다. 문제는 땅 준비하기다. 뒷마당에 나가 보니 한숨이 절로 났다. 전혀 관리되지 않은 땅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까. 둘러보고 한숨만 쉬고 돌아오기를 몇 날. 며칠 전 드디어 첫 삽을 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움을 느꼈다. 쪼그려앉아 후비적거리는 단순한 노동이 꽤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냄새, 흙이 풍기는 냄새가 참 좋았다. 봄비 내리면 비 맞게 두고, 햇볕 잘 맞으면 언젠가 싹이 날 것이라 믿는다. 어디 싹 뿐일까. 그 열매가 내 식탁 위에 오를 날을 꿈꿔 본다. 나는 여전히 밭일 나가기 전 무엇을 입고 일할까 먼저 고민하는 이상한 초보지만, 자연은 언제나 제 일을 충실히 해낸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난해 11월에 심었던 구근이 땅 속에서 모진 겨울을 버티고 아름다운 튤립을 피워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는가!뒤에 보이는 꽃들은 지난 가을에 심었던 구근이 틔운 튤립.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