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대 대리석 상판부터 천장조명까지 모두 제나의 손을 거쳤다. 원형 테이블 위에 설치된 대형 화기와 꽃들은 대담하면서도 우아한 제나 제임스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 아담한 벽돌 건물 2층에 올라가니 향기로운 꽃 내음이 퍼져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펼쳐지는 편안하면서도 감각적인 무드. 서울 하늘 아래 이렇게 ‘뉴욕스러운’ 공간이 있다니! 손을 내밀어 인사를 건네는 파란 눈의 남자는 뉴욕에서 온 플로리스트 제나 제임스(Zinna James). 뉴욕 최고의 플로리스트 로베르타 벤다비드의 어시스턴트로 플라워 디자인에 입문했고, 유명 패션 브랜드와 매거진 촬영, 레스토랑 공간 연출 등을 맡으며 감각적인 스타일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뉴욕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한국인 아내(메이크업 아티스트 홍현정. 차후에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할 기회가 있길!)를 위해 지난해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수개월간 땀 흘려 완성한 이태원 작업실은 그 자체로 제나 제임스의 포트폴리오나 다름없다. 하나하나 공들여 고른 가구와 오래전부터 소장해 온 소품과 함께 연출된 꽃과 식물은 자연스러우면서 색다른 미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엘르>를 위해 준비한 스낵과 음료, 슬쩍 눈길이 가는 멋진 양말, 그가 일상을 다루는 모든 방식에 아름다움에 관한 자기만의 본능과 스타일이 녹아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스튜디오 입구. 항상 신선한 꽃으로 장식한다.가장 공들여 고른 가구 중 하나인 카우치에서 포즈를 취한 제나 제임스.꽃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된 계기 항상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플로리스트로 일한 지 15년 정도 됐다. 그전에는 페이스트리 숍에서 일했고 헤어 디자이너로 활동한 적도 있다. 모두 손으로 하는 일이고 컬러와 관계가 있다. 당신의 멘토, 로베르타 벤다비드(Roberta Bendavid)는 어떤 사람인가 뉴욕에서는 잘 알려진 유명 인사다. 랄프 로렌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등 패션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인물로 일반적인 플로리스트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그녀와 일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뉴욕에서 했던 작업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너무 많다. 포토그래퍼 그렉 카델(Greg Kadel)과 일하는 걸 즐겼는데, 그와의 작업은 항상 창조적이고 재미있고 에너지가 넘쳤다. 모마(MoMA) 레스토랑의 꽃 장식도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모마는 늘 ‘에지 있는’ 스타일을 원해서 매번 스스로를 몰아부쳐야 했다. 유명 레스토랑 프리맨즈(Freemans)의 오너 타보 소머(Taavo Somer)와 함께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아메리카 빈티지 무드를 불러일으킨 주역이라고 들었다 지금은 타보 소머와 그의 레스토랑들이 워낙 유명하지만, 6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는 그렇지 않았다(웃음). 길을 걷다가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그를 보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뉴욕이란 그런 곳이니까! 내가 작업한 플라워 데커레이션이 입소문을 타면서 레스토랑이 유명세를 얻는 데 한몫했고, 이를 벤치마킹한 식당들이 늘어났다. 건축가 출신인 타보 소머와 일하면서 나 역시 배운 점이 많았다. 앤티크 시계, 스피커 등 뉴욕에서 가져온 소장품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뉴욕의 로프트를 연상시키는 공간.뉴요커들은 일상에서 꽃을 접하는 게 익숙한가 그렇다. 집과 호텔, 레스토랑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단지 꽃으로 꾸민 공간이 멋있어서 그 장소를 찾아가기도 한다. 뉴욕의 <미슐랭 가이드> 레스토랑 그래머시 타본(Gramercy Tavern)에 가본 적 있나? 그곳의 꽃 장식은 정말 멋지다.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내겐 아내가 중요하니까. 뉴욕에서 산 지도 20년이 지났고, 변화란 좋은 것이니까. 한국에서도 꽃과 관계된 산업이나 문화가 발전할 때라고 생각했다. ‘굿 타이밍’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태원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유는 나도 안다. 어쩌면 강남이 더 좋은 선택이었겠지. 그러나 2~3년 후면 아주 달라질 거란 예감이 들었다. 뉴욕에 살면서 이런 걸 많이 봐왔거든.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 아무런 정보 없이 이 동네를 둘러봤는데 본능적으로 여기가 미래의 ‘그곳’이 될 거란 느낌이 왔다. 작업실을 꾸미면서 염두에 둔 컨셉트는 여기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와우!”다. 편안하면서도 크리에이티브한 기운이 넘치는 곳, 바로 뉴욕에 온 것처럼 느끼길 바랐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골랐다. 카운터의 나무 상판도 대구에 있는 목공소에서 직접 만든 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 코랑 보타이를 새겨 넣은 게 보일 거다. 실내에 들인 장미 정원.입구 쪽에 붙여둔 장미 사진이 방문자들을 반긴다. 스튜디오로 향하는 계단. 천장에 매단 커다란 나무 조각은 제나가 수년 전부터 보관하던 것.제나 제임스의 플라워 스타일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스타일만 가진 사람은 좋은 플로리스트가 아니다. 나? 클라이언트에 따라 달라진다. 기상천외한 것이든 아주 심플하고 모던한 것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고객들이야말로 내 스승이다. 물론 언제나 ‘제나답다’는 느낌도 중요하다. 내가 일하는 방식은 아티스트들과 비슷하다. 모든 작업에는 모티프가 있고, 즉흥적인 느낌을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선보이는 꽃은 귀엽고 예쁘기만 한 건 아니다. 어른스럽고 강렬한 편이지. 라스베이거스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무얼 하든 늘 섹시한 느낌이 나는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꽃은 가든 로즈를 좋아한다. 정말 향기롭거든. 프렌치 튤립은 키가 커서 움직임이 마치 춤추는 것 같다. 히야신스는 여행 갈 때마다 꼭 챙기는 꽃 중 하나다. 집에서든 호텔에서든 15년간 내 침대 맡에는 항상 꽃이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 플라워 업계를 좀 더 끌어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3~4년 전과 달리, 이제 서울에서도 특색 있는 작은 플라워 숍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운명적이라고 할까, 딱 맞는 시기에 딱 맞는 장소에 온 것 같다. 더 일찍 왔더라면 사람들이 내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청담동에 오픈하는 요가 스튜디오의 공간 디자인을 작업 중이다. 바람이 있다면 호텔이나 레스토랑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꽃과 함께하는 삶, 정말 행복한가 물론이지! 다른 사람들이 웃는 걸 보는 게 참 좋다. 요리든 꽃이든 인테리어든, 내가 해온 일들은 모두 누군가를 즐겁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할 때, 내가 더 행복하다. 이 공간도 나를 위해 만들었지만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곳이기도 하다. 나만의 특제 레서피로 만든 아보카도 과카몰리가 있는데, 한번 맛보고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