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의 어느 밤, 파리의 옛 수도원에서는 까만 가죽 봉투에 담긴 초대장과 함께 한동안 뒷전에 밀려났던 ‘섹스’가 어둠속으로 소환됐다. 선명한 네온사인의 YSL 로고 뒤로 생 로랑 하우스의 새 시대를 이끌어갈 안토니 바카렐로가 데뷔 컬렉션을 선보인 것이다. 헬무트 뉴튼식의 관능적인 하이힐과 글로시한 레더, 시어 블랙 레이스 그리고 반짝이는 실버 니플 패스티가 긴장감 넘치는 밤을 사로잡았다. 아마 그 순간이 공식적으로 파리 패션위크를 통해 섹스어필이 수면 위로 떠오른 때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전에도 섹스에 관한 디자이너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알렉산더 왕은 배기 팬츠와 매치한 비키니 톱을, 올리비에 데스킨스는 코르셋을, 라텍스 ‘콘돔 케이프’를 선보인 발렌시아가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극적인 요소만이 섹스의 전부는 아니다. 겨우 중요 부위만 가린 생 로랑의 니플 브라가 발표된 며칠 뒤, 디올의 첫 여성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We should all be feminists’라는 슬로건 티셔츠로 점잖으면서 강력한 메시지를 어필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했으니. 그렇다면 화이트 트레이너와 클래식한 구찌 로퍼가 포착되는 프런트로, 섹시한 사이하이 부츠가 오가는 캣워크가 대조를 이루는 파리에서 포르노와 스트리퍼가 떠오르는 섹스 아이템은 어떻게 페미니즘과 부합할 수 있을까? 그전에 패션계의 급작스러운 섹슈얼한 전개를 짚어보자. 늘 그렇듯 현실을 반영한 것일까? 아장 프로보카퇴르의 크리에이티브 디텍터인 사라 쇼턴(Sarah Shotton)은 진실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은 섹스를 너무 안 한다는 거다. 10년 전만 해도 집에서 할 만한 일이 뭐 있었겠는가. 지금은 스마트폰을 쳐다보느라 저녁 시간을 다 보내고 있으니. 패션은 현실에서 할 수 없는 환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테크놀로지와 패션의 복잡하고 끈끈한 조합은 최근 이슈가 된 누드 셀피만 봐도 알 수 있다. 킴 카다시언이 토플리스로 주요 부위를 교묘하게 가린 채 SNS에 사진을 포스팅하니 곧바로 ‘블랙 반두’, ‘블랙 비키니 톱’ 등이 검색 순위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커머셜 이익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성(sex)을 파는 것에 그치는 걸까? 아니다. 이런 현상은 남의 눈보다 자신의 섹시미를 스스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페미니즘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노출에 대한 옳고 그름의 의견은 각자의 몫이지만 섹슈얼 파워가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섹시 룩은 현재 패션 피플을 사로잡은 이지 트렌드와는 아주 동떨어진 얘기라고 생각될지 모른다. 하지만 헐렁한 티셔츠 위에 떡하니 코르셋을 입힌 미우치아 프라다를 보면 그리 무관한 일도 아니다. 패션 인플루언서인 사라 러슨(Sarah Rutson)은 말한다. “요즘의 섹시미는 본연의 모습을 얼마나 아름답게 감출수 있느냐에 달렸다. 더 이상 노골적인 노출로 클리비지를 보여주거나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스커트를 입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컷아웃 디테일 사이로 은밀히 드러나는 쇄골이나 어깨, 코튼 셔츠를 어깨까지 내려 입거나 허리에 묶어 살결이 슬쩍 보이는 것만으로 충분히 섹시하다.” 패션계에 새롭게 섹스심벌로 등장한 니플에 대한 의견은 각자가 정하는 것이지만 바카렐로는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단지 수많은 패션 취향 중의 한 면을 제시할 뿐이다. 맛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금보다 맛의 풍미를 더하는 시즈닝 소스를 뿌린 것.” 아무리 보수적인 패션이 지배하는 시대라도 섹스는 언제나 그 안에 잠재돼 있다. 언제든 풀 수 있고, 들춰낼 수 있게끔 감춰져 때론 위험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