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보낸 포틀랜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뭐든 일방통행이 없는 포틀랜드. 보여주고 그러면서 느끼게 만드는, 진정한 참 교육에 대해 생각하고 느껴본 시간에 대하여::포틀랜드,미국,교육,일방통행,선현경,이우일,일러스트레이터,동화작가,작가:: | 포틀랜드,미국,교육,일방통행,선현경

며칠 전, 한국에서 동생 가족이 다녀왔다. 동생네는 한 달 동안의 미 서부 여행을 계획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해 그랜드 캐니언,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랜드,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시애틀까지의 일정이다. 그런데 하필 시애틀 바로 아래 포틀랜드에 누나가 있다고 하니 들른 것이다. 시애틀과 근처라는 이유만 제외하곤 동생이 이곳에 들릴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시애틀 바로 아래에 포틀랜드가 있다지만 세 시간이나 운전해야 하고 이곳에 와봐야 그리 유명한 볼거리도 없는 데다 마침 완벽한 우기인 겨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왔다. 우린 왠지 서부의 유명 관광 도시들에 맞서 볼거리 대결이라도 하는 기분이 되어 동생네 가족을 맞을 준비를 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최고의 대자연과 놀이동산까지 다녀온 초등학생 조카가 둘이나 온다. 그들을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다 우리는 오리건 동물원과 어린이 과학 산업 박물관 옴지(OMSI;Oregon Museum of Science and Industry)에 가기로 했다. 믿거나 말거나 두 곳 모두 여기 포틀랜드의 자랑거리니까. 게다가 둘 다 우리 집에서 트램을 타고 갈 수 있다.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다는 점이 다른 미국의 도시와는 가장 크게 다르면서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음, 아니라고? 잘 생각해보자. 이곳은 미국이다! 동네 구멍가게에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니까!) 동물원으로 가는 트램은 지하 260ft 아래에 있는데, 북미에서 가장 깊은 역이자 세계적으로도 두 번째로 땅속 깊이 놓인 역이라고 한다(세계에서 가장 깊은 역은 모스크바에 있는 포버리 파크(Pobery Park) 역으로 지하 318ft 아래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조카들은 그게 미국에서 제일 깊은 역이건 말건 감흥이 없었다. 그저 빨리 동물을 보고 싶다고 만져보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여기 동물원은 동물들이 자연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고 구경꾼들이 통로 안을 걸어 다니는 기분이 든다. 그 정도로 자연 친화적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좁고 협소한 데 비해 동물들이 지내는 영토는 조금 과장하자면 대자연 그 자체처럼 보인다. 오리곤 동물원은 멸종 위기에 놓인 21종의 동물들에 대한 생존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동물원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고 한다. 그중 가장 신경 쓰는 동물이 보르네오코끼리인데, 점차 코끼리들이 대가족을 이루길 바라면서 동물원 전체를 조금씩 더 환경친화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갇혀 있는 동물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좀 쓸쓸해진다. 코끼리와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특히 훨훨 하늘을 날아다녀야 할 콘도르 같은 맹금류나 침팬지처럼 진짜 정글이 필요한 동물들을 볼 때면 더 그랬다. 하지만 귀여운 해달이나 수달은 그런 무거운 마음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다. 장난을 치는 듯 웃는, 천진한 얼굴로 수영하는 모습이 정말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조카들과 함께여서 더 그랬다. 오랜만에 간 동물원에서 아이들보다 우리가 더 신이 났다. 힘들다는 조카들을 데리고 “조금만 더!”를 외치면서 무려 한나절을 보내고 돌아왔다. 다음 날은 우리가 정말 기대하던 옴지 박물관에 갔다. 사실 옴지는 우리 집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에 있다. 베란다에서 간판이 보일 정도다. 달리기하거나, 산책할 때마다 지나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가까이에 위치한 어린이 과학박물관이 포틀랜드를 소개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유명한 곳이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린이 없이 어른 둘이 가자니 좀 썰렁했다. 그러다 드디어 이번엔 조카들을 동반해 떳떳하게(?) 가게 됐다. 하염없이 비 내리는 아침, 정말 박물관 가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우리가 가기로 한 날은 레고 특별전까지 오픈하는 날이었다. 특별전까지 열리니 날 잘 잡았다고 우리끼리 콧노래를 부르며,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포틀랜드에 일 년 넘게 살면서 실내에 그렇게 사람이 붐비는 건 처음 봤다. 비가 계속되니 포틀랜드에 사는 아이들이 있는 가족은 모두 옴지로 모여든 것 같았다. 게다가 레고 특별전까지 겹치니 레고를 좋아하는 ‘덕후’ 아줌마 아저씨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합세한 것이 분명했다. 한여름의 맥주 페스티벌에나 모여 들만한 인원의 사람들이 모두 옴지에 다 모인 것 같았다. 그렇게나 사람이 많아 복잡하고 정신이 없는데도 옴지는 내게 특별한 박물관이었다. 그곳의 시설이 좋다거나, 체험관이 많아서가 아니다. 여느 어린이 박물관답게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왁자지껄함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체 관이다. 인체 관에 들어서면 처음엔 평범하게 인간의 장기와 혈관 그리고 어떻게 아이가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하는 모형과 만난다. 그러다 곧 원형 홀로 들어서게 되는데, 유난히 그곳만 조명이 어둡고 사진이 금지돼 있다. 작은 유리관 속엔 뱃속 아가들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는데, 잉태된 지 일주일 뒤부터 열 달 후 태어나기 바로 전까지의 모습들이다. 조금 많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모형으로 만들어뒀다. 알코올이 든 액체에 넣어 뒀고 그 모양이 소름 끼칠 정도로 섬세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곧 왜 그런 묘한 기분이 들었는지 알게 됐다. 그건 모형이 아니라 진짜였다. 그곳은 자연재해나 이상 증후군으로 태어날 수 없었던 아이들을, 부모의 동의로 기증받아 만든 방이었다. 그런 엄숙한 분위기로 만든 게 당연했다. 그곳은 배아에서 태아로 되어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었다. 그 방을 보고 나면 새삼 인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된다.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렇게 직접 눈으로 그 모습을 확인하긴 처음이었다. 해마처럼 생긴 배아에서 태아로 나아가 인간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저절로 모든 인간에 대한 존엄이 느껴졌다. 옴지를 나서면서도 교육은 이렇게 하는 거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냥 보여준다’. 느끼는 건 각자의 몫이다. 조카들과 함께 본 포틀랜드는 그 동안 우리끼리 본 도시와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어른에게 좋은 이 도시는 당연하겠지만, 아이들에게도 좋다. 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전편 보러가기 >  다음편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