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만 깎아주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물건을 골라 담던 내가 오일장을 즐겨 찾기 시작했다. 초보 시골 새댁의 장보기에 관한 이야기.::김자혜, 하동, 지리산, 마당, 시골집, 가드닝, 고양이, 귀촌, 여유, 민박, 힐링, 라이프스타일, 에세이, 한옥, 레노베이션, 건축, 집, 엘르, elle.co.kr::




시골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푸른 잔디밭, 마당에서 지글지글 구워 먹는 바비큐, 계절마다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과 나무들. 툇마루, 예쁜 바구니 같은 것들. 그리고 시골생활자라면 응당 집 앞 텃밭을 일궈 채소를 수확하고 나무에서 과일을 따 먹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망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깊은 강이 흐르는 법.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도 식재료는 사먹습니다) 어떤 날은 <삼시세끼> 농촌편을 보며 괜스레 투덜거렸다. 텃밭 채소를 수확하는 장면은 나오는데 왜 거름주고 심고 약뿌리고 잡초 뽑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가. 저들은 지금 막 밴을 타고 시골집에 도착했는데 어째서 텃밭에는 싱싱한 채소가 저절로 자라고 있지? 이런 의문을 갖다가, 더 나아가 누가 평소에 저 채소들을 가꾸는가 궁금해지고, 막내작가의 고충을 상상하며 연민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이르고 마는 것이다. 아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오지랖이여!

아무튼 하려던 얘기는 그게 아니고, 사는 곳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쉽게 변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이 어디 그리 간단하게 바뀌겠는가. 변명하려는 건 아니지만, 초보에게는 언제나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텃밭은커녕, 지난 여름부터 겨울까지, 식재료는 주로 마트에서 샀다. 시골에서 웬 마트냐고? 읍에 있는 작은 마트에서 주로 식재료를 사고, 한달에 한두번은 30분정도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대형마트 ‘홈더하기’에서 장을 봤다. 하동오일장과 구례오일장, 광양 옥곡 오일장에 가긴 했지만 주로 놀러 가서 구경만 하는 식이었다.



장터 바닥에 놓인 메주 다섯 덩이. 아마도 할머니가 집에서 직접 손으로 빚어 들고 나오셨을 것이다.



시골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매우 재미있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오일장 구경이다. 덩그러니 비어있던 넓은 터에 오일에 한번 씩 장이 서는 풍경, 새벽부터 보따리 장수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어 각자 좌판을 벌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왕만두와 도나쓰, 번데기도 사먹을 수 있고, 예쁜 바구니도 살 수 있으며 제철을 맞은 식재료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벌써 두릅이 등장했습니다 여러분!)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쉽사리 식재료를 사지 못했다. 정량의 물건을 깨끗하게 포장해 100g당 가격을 붙여 둔 마트 물건에 익숙했던 우리는 오일장의 푸짐한 바구니가 부담스러웠다. 가격을 묻는 소심한 서울말에 돌아오는 투박한 대답에도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만 바가지쓰는 것 같은 근거 없는 의심. 장터의 인심이란 ‘할인’이 아닌 ‘덤’인데, 그것 또한 우리 같은 2인가족에게는 부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일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너무나 싱싱해보이는 대파가 보여 어렵게 입을 뗐다. “할머니, 이 대파 얼마예요?” “이거 진짜 좋은 파야. 내가 키운거야. 이런 거 써야 돼.” 할머니는 동문서답 하시며 이미 검은 봉지에 대파를 담으셨고, 당황한 나는 어쩔수 없이 돈을 지불했다. 심지어 대형마트보다 훨씬 비쌌던 대파. 그런데 집에 와 강매당한 그것을 다듬다가 깜짝 놀랐다. 이전에 사던 대파와는 전혀 다른 향이 아닌가. 눈물콧물 흘리며 파를 썰다가 나는 문득 ‘푸드 마일리지’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푸드 마일리지란 식품의 생산에서 소비자의 섭취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총 거리를 뜻한다. 식품이 생산되고 운송되고 여러 유통단계를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그 길고 긴 여정. 생각해보면 농장에서 물류창고를 지나 대형마트를 거쳐 내 손에 들어온 것과 할머니 밭에서 오늘 아침에 수확한 것은 그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파 뿐 아니라 토마토와 무와 시금치와 봄동에서 기적의 맛을 경험한 우리는 오일장에서 식재료를 사기 시작했다.

사실 푸드 마일리지를 더 줄여 ‘Farm to Table(농장에서 테이블로)’을 실천하려면 역시 텃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집 안채 뒤편에는 이전 주인들이 텃밭으로 가꾸던 공간이 있는데, 그것을 못 본 척 시침을 떼고 산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올해부터 텃밭을 가꿔보면 어떨까? 우선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만 시작해보기로 했다. 특별히 즐겨 먹는 작물 몇 가지를 키우되, 키우기 쉬운 작물 몇 가지를 포함시킬 것이다. 그래야 금방 절망하지 않고 조금씩 성취감을 느낄 테니까. 아아, 그 전에 우선 척박한 땅을 뒤집어엎어 일구는 단계에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텃밭 일구기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시간에 다시 만나요!)



지난 달, 오일장에서 먼저 만난 봄. 수선화와 눈꽃, 각종 허브 모종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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