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습관과 잡초

습관이란 게 무서운거더군, 이라던 롤러코스터의 노래 가사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오늘은 잡초보다 질기고 강한 것, 습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BYELLE2017.03.14



패션에디터였던 시절, 마감 마지막날 즈음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면 친한 동료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주로 회사 근처의 신사동 가로수길이 목적지였다. 수면부족과 카페인 과다로 수척해진 좀비꼴을 하고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두 손 가득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적당한 가격의 옷이나 신발, 자잘한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었다. 그쯤 되면 괜히 머쓱해 변명하기 시작한다. “이건 내가 산 게 아니야! 마감귀신이 산거야!!” ‘신상’을 제일 먼저 만져보고 촬영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쇼핑욕구는 당연한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엊그제 깨달았다. 


엊그제 일어난 일이다. 오랜만에 짧은 패션 기사를 쓰게 됐다. 따로 촬영이 필요하지 않은, 텍스트 위주의 기사를 시골 새댁이 감히 쓰게 된 것이다(할렐루야!). 1년 8개월만에 에세이가 아닌 트렌드 기사를 쓰다 보니 처음에는 두근두근하다가 곧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전엔 매일 자연스레 접하던 것들이 어느덧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사해야 했다. 고작 두 페이지짜리 기사였는데도 자료 조사에만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자료 수집을 끝내고 원고를 뿌리고(대략의 글의 흐름을 잡아 문장의 연결을 신경쓰지 않고 주루룩 나열하는 일), 반나절동안 글을 다듬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갑자기 너무나 강렬한 쇼핑욕구에 휩싸였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강도의 것. 즐겨찾기 목록을 열어 전에 눈여겨보았던 물건을 찾아 나섰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면으로 만든 키친 크로스 두 장. 귀여운 앵두 무늬와 밤비 무늬가 그려진 것이었다.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에 성공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잠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대체 이게 뭔가 싶어졌다. 그렇다. 그 시절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본능적으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것은 덜 녹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잡초만큼 질기고 강한 것, 우리가 습관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시골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수면 습관이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치우고 앉아있다 보면 곧 잠이 쏟아지고, 조금 버티다가 결국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새벽에 꼭 한번씩 잠에서 깨 화장실에 간다는 것. 새벽 다섯시 혹은 여섯시 즈음 잠에서 깨 말똥말똥해지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다시 잠들기 위해 애쓰다가 다시 몇 시간 더 잔다. 그렇게 느지막히 일어나면 매우 피곤해진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대체 왜 자꾸 새벽에 깨는거지?” 우리 둘의 자리를 바꿔보고 침구를, 침대 머리의 방향을 바꿔도 보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이것 역시 습관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10시나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면 대여섯시쯤 잠에서 깨는 게 당연하다. 그저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 것인데, 나는 일찍 일어나는 게 억울해서 억지로 다시 잠자리에 들곤 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억울해하던 감정조차 습관이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유치원 입학하던 첫날부터 작년까지, 그러니까 삼십년 가까이 아침마다 겪어온 아침기상의 억울함이란 쉽게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시골에 내려와 결심한 것 중 하나는 알람을 맞추지 않는 일.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깰 때까지 자유롭게 잠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이것은 진짜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이 반드시 늦게까지 자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늦게까지 자야한다는 강박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보다 더 몸을 피곤하게 한다는 것도. 오늘 아침, 남편은 조깅하러 나가고 나는 조금 더 누워 있다가 한가지 다짐을 해본다. 내일은 눈이 떠지면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마셔야지. 그리고 책을 조금 읽다가 해가 뜨면 마당에 나가 보자. 아직도 죽은 것처럼 누런 잔디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를 뽑으러!




P.S
epi 13. <식물 살해전과자의 고백> 편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가을에 심었던 아이리스와 튤립 구근이 모진 추위를 견뎌내고 드디어 싹을 틔웠다는 소식을 알립니다(잠시 눈물 좀 훔치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앞의 자갈밭을 뚫고 올라온 잡초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