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노력하지 말아요> <너무 애쓰지 말아요>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모두 다른 작가가 쓴 책이라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요즘 서점가에는 ‘쿨’한 위안이 넘친다. 한때 출판계를 휩쓴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와 같이 인내를 미덕으로 삼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참지 않아도 괜찮다고, 참을 필요 없다고 책이 사람을 다독인다. ‘할말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의 무기력한 역사는 저물고 ‘팩트폭력(사실을 기반으로 상대의 정곡을 찌르는 일)’의 당찬 시대가 왔달까. 그중에서도 20, 30대 여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일본 여성 작가들의 에세이 출간이 눈에 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인지, 벌써부터 쿨내 진동하는 세 책의 제목은 안부인사라고 건네는 사람들의 오지랖에 대처하는 대답용으로도 적당해 보인다.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는 일본의 저명한 여성 학자 우에노 지즈코와 사회학자이자 시인인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이다. 두 사회학자가 자신의 경험과 거시적 데이터를 통해 개인과 시대의 변화를 거침없이 논했다. 요지는 이렇다. “싱글로 혼자 지내는 게 대체 뭔 문제일까요?” 그렇다. 결혼을 안 한 미혼이든, 안 할 비혼이든 그게 왜 문제란 말인가? 두 사회학자는 원인 중 하나로 관습을 들었다. 때가 되면 결혼하는 게 정상이라는 관습. 남녀가 결혼해야 아이를 낳고 그래야 대가 이어진다는 관습. 흥미로운 건 다음 분석이다.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녀의 비율은 변함없는데, 혼인율만 떨어지고 있어요.” 왜 그럴까? 답은 이 책의 부제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결혼이 위험 부담인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이 책은 낡은 관습과 결혼에 대한 배려가 부재하는 사회 시스템의 충돌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이들을 향한 논리적인 응원이다.<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는 10여년 전 산문집 <결혼의 재발견>을 통해 독신임을 밝히며 서른 살 이후에도 비혼 생활을 즐기자고 말한, 시대를 앞선 비혼주의자 사카이 준코의 에세이집이다. 그로부터 12년, 그녀는 이젠 아이는 괜찮다고 한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아이를 싫어한다고도 고백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지나가던 아이 발을 걸어 넘어트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내 아이 사진을 보여주기 민망하다”고 피하거나, 여전히 그녀가 결혼을 ‘못’하는 거라 믿곤 “아이라도 낳으면 좋을 텐데”라며 온 우주를 향한 간절한 염원을 아끼지 않는다. 사카이 준코의 주장대로 출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임에도, 아이 없는 인생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자녀의 유무로 타인의 행복을 재단할 수는 없다고, 답은 오롯이 자신이 내릴 문제라고 사카이 준코는 느긋이 말한다.한편, 손 번쩍 들고 외쳐야 할 어조의 제목 <문제가 있습니다>는 의외로 내용이 세 책 중에서 가장 평화롭다. 저자인 사노 요코는 2년 시한부의 유방암 선고를 받자마자 수중의 재산을 털어 재규어를 산 뒤 여생을 즐긴 일화로 유명한 일본의 할머니 일러스트레이터다. 이 책은 이제 세상에 없는 그녀의 일생이 담긴 산문집이다. 파리 잡기에 평생 쓸 집중력과 담력을 모두 소진한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고약한 엄마였다고 평하는 중년 시절, 지난 세월을 두고 필사적으로 살아냈다고 되짚는 노년 시절까지…. 평생 당당하며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온 사노 요코의 인생을 훑다 보면 무엇이 문제인가 싶다. 이것이 문제였다. 사노 요코는 언제나 그녀의 전작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에 담긴 철학처럼 자신만의 삶을 살아왔다. 암묵적인 규범의 굴레에 갇힌 평범한 삶과는 다른 문제적 인생인 셈이다. 그런 그녀가 <문제가 있습니다>를 통해 전한다. “산다는 건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그러니 걱정일랑 하지 말고 오늘도 느긋하고 박력 있게!” 나다운 삶을 살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눈치 보지 말라는 ‘언니’들의 조언이 오늘도 문제투성이 시간을 헤매느라 정신없는 우리의 등을 툭 친다. 당차게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라는 언니들의 조언에 한 마디만 더 덧붙인다면 이 정도이려나. “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