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난 어느 날, 동네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밖으로 나와 감나무 가지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절기만큼 정확한 촌부들의 습관에 감탄하였다. 그렇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하동에서의 첫 겨울을 보내며 주택살이 초보인 나는 마당을 살필 때마다 되뇌곤 했다. “다들 살아 있는 거 맞지? 죽은 거 아니지?” 근처 농장에서 칠만원어치 사다가 남편과 둘이 쪼그려 앉아 심었던 잔디도, 아기 엉덩이만한 대봉감이 열렸던 감나무도, 지난 봄 큰 기쁨을 주었던 수국도, 사색이 된 채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 초록이란 것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휑뎅그렁한 풍경. 그렇게 이가 딱딱 부딪히던 몇 달이 흘러 겨울이 물러가고 입춘과 우수를 지나 이제 봄을 맞이해야 할 때다. 옆 마당의 매화나무가 가장 먼저 작게 외친다. 여중생 여드름처럼 발갛게 솟아오른 작은 꽃망울을 내보이며, 나 여기 살아있다고. 이 집을 계약한 게 2년 전 가을, 공사를 시작한 건 지난해 4월이었다. 집을 설계하고 고쳐줄 사람을 찾고 계약하고 의논하는 사이 봄이 닥쳐왔다. 공사가 막 시작됐을 때였다. 반쯤 철거해 뼈대만 남은 집에 잠시 들렀을 때, 팝콘처럼 터져 있는 매화꽃을 보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집 곁에 삐쭉 서 있는 앙상한 나무를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는데, 글쎄 그것이 저 홀로 만개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땐 꽃이 피었던 자리마다 작은 매실이 알알이 맺혀있었다.(왼쪽)지난해 4월 초, 옆 마당 매화나무에 작은 매실이 열렸다. (오른쪽)6월 초, 조금 못생겼지만 옹골찬 매실을 한바구니 땄다.당시 매화나무의 생김새는 조금 거칠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제멋대로 마구 자라나 여기저기로 뻗은 가지들은 머리칼을 너울너울 산발한 미친년의 모습이었다. 왠지 막막해진 우리는 앞집 할머니를 초빙해 산발한 미친년을 진단해보기로 했다. 나무를 본 할머니의 입에서는 한마디 탄식이 흘러나왔다. “우야꼬~”그 와중에도 나의 욕심은 과연 이 나무에서 매실을 따 먹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향했다. 공사 인부들이 쉬는 날, 바구니를 들쳐 메고는 억척스레 매실을 땄다. 자잘하고 못생기고 상처도 많았지만 한바구니 가득 딴 매실은 네 병의 매실액기스가 되어 우리집 집밥의 양념으로, 때때로 얹힌 속을 달래는 소화제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새 봄을 앞두고 내 마음을 괴롭혔던 건 과연 매화나무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지난 봄, 마당에서 딴 매실로 매실청을 만들며 벅차오르는 뿌듯함을 경험했지만 한편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내 손으로 돌본 적 없는 나무에서 과실을 딴다는 게 죄스러웠던 것이다. 거저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불편한 마음 때문에 돌연 저 나무를 가꾸고 싶어진 것인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 나무를 돌보고 싶어진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 나무 밑에서 우리의 고양이가 잠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 번째 고양이, 현금이꼬리가 없는 작은 고양이였다. 어떤 이유에선지 현금인출기 밑에 숨어들어 지나는 사람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 연명하다가 구출되어 ‘현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녀석이었다. 현금이는 우리와 함께 산지 두 해만에, 하동으로 온지 석달만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어느 때부턴가 밥을 잘 먹지 않고 자꾸만 살이 빠지는 녀석을 근처 도시 시내의 병원으로 데려갔다. 구내염인 것 같다는 진단. 한동안 약을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살은 계속 빠지고 여전히 밥을 먹지 않고 여러 번의 구토를 한 현금이는 어느 밤 가만히 누워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짧고 조용한 싸움이었다. 처음으로 시골행을 후회했다. 서울에서 다니던 고양이 전문병원에서 치료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 곧 괜찮아질거라고 생각했던 안이한 생각이, 직장생활을 할 때와는 달리 치료비 생각을 먼저 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주저가 원망스러워 한참을 울었다. 차갑게 굳어버린 현금이의 몸을 닦고 깨끗한 천으로 염하고 상자를 만들어 담아 매화나무 밑에 묻었다. 오며가며 큰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남편과 나는 아침마다 나무를 보며 현금아, 현금아 말을 걸었다. 우리에게 그런 의미가 있는, 가장 소중한 나무를 어떻게 가꿀 것인가.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가, 한다면 어떻게? 가장 쉬운 방법은 다시 할머니를 초빙하는 것. 할머니는 쳐내야 할 가지를 단번에 알아보는 수십년 노하우를 가졌다. 마당에 열리는 과실을 내다 팔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키우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독학. 책과 인터넷에는 여러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한 두 해 직접 해보면 시행착오를 겪고 우리만의 노하우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기로 했다. 본디 가지치기란 우량목재나 좋은 품질의 열매를 생산하기 위한 것.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 자연상태로 자라 나름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던 녀석을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만약 작년처럼 열매를 내어주는 친절을 베푼다면, 현금이를 추억하며 감사히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나무들은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하고도 고독하게 삶을 버티어 간 사람들 같다. 나무 꼭대기에서는 세계가 윙윙거린다. 나무뿌리들은 무한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무들은 모든 생명력을 끌어모아 오직 한가지만을 위해서 분투한다. 그것은 바로 나무들에 내재해 있는 고유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다. 나무들 본래의 형상을 완성해 나가면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일이다. 아름답고 강인한 나무보다 더 성스럽고 더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중에서.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