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홈 그라운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패션계에 진짜 그녀들의 마음을 아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페미니즘,여성,우먼스 마치,캠페인,셀러브리티,엘르,elle.co.kr:: | 페미니즘,여성,우먼스 마치,캠페인,셀러브리티

지난 1월 21일, 워싱턴 DC를 비롯해 시카고, 뉴욕, 덴버, 보스턴 등 미국 전역은 물론 런던, 호주, 도쿄 등 전 세계 700여 개가 넘는 도시에서 대규모 핑크 물결이 일어났다. 여성을 상징하는 핑크 비니를 쓴 엄청난 인파는 반트럼프를 외치는 ‘우먼스 마치(Women’s March)’ 행진이었던 것! 워싱턴 DC에서만 무려 50만 명이 넘게 모인 행렬은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여성만이 아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생각을 적은 팻말과 함께! 이곳에는 시민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슈퍼스타들까지 동참했다. 마돈나는 작업복 팬츠와 워커, ‘자신을 표현해라’고 적힌 슬로건 티셔츠를 입고 연설대에 올랐고, 그녀의 딸 루데스 레온도 엄마의 연설을 들으며 행진에 참가했으며, 지지와 벨라 하디드 자매는 양손을 꼭 붙잡고 ‘우먼스 마치’ 행렬에 앞장섰다. 이들뿐 아니라 클레이 모레츠는 평화시위 전부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노골적인 반트럼프 이미지를 포스팅하며 일찌감치 ‘우먼스 마치’를 지지했고, 스칼렛 요한슨은 짧은 쇼트커트로 변신, 여장부의 이미지로 등장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엠마 와슨은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시위 현장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며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여성인권 신장에 동참했다. 수많은 스타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우먼스 마치’에 참여했지만 그중에 특히 눈에 띈 여성은 만삭의 몸으로 나온 내털리 포트먼. 그녀는 “여성이 바로 주체적인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여성 권리와 소외된 약자들의 보호를 위해 앞장서야 합니다”라고 힘 있게 주장했다. 그녀의 연설 뿐 아니라 당시 입었던 티셔츠 또한 빅 이슈가 됐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합니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란 슬로건이 커다랗게 적힌 화이트 티셔츠는 라프 시몬스의 후임으로 디올 하우스 역사상 첫 번째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가 2017 S/S 디올 데뷔 컬렉션에서 선보인 것. 데뷔 무대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교집합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한결 힘 있게 완성됐고, 이를 통해 패션계 우먼 파워를 입증했다. 그리고 그녀의 티셔츠는 마치 여성운동 캠페인처럼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내털리 포트먼의 모습이 디올 인스타그램에 포스팅된 이후, 리한나를 필두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키아라 페라그니, 루스 벨과 메이 벨 자매, 아미송, 디올 쿠튀르 무대에 오른 모델들이 뒤를 이었다. 뿐만 아니라 스트리트 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 한 명의 새로운 여성 디렉터로 부각된 이가 있으니 그녀는 바로 14년간 앨버 엘버즈가 이끈 랑방을 이어받은 부크라 자라(Bouchra Jarrar). 1996년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함께 발렌시아가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10년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며 이름을 알린 그녀가 2016년 랑방에 합류했다. 전임자였던 앨버 특유의 볼륨을 강조한 여성스러운 스타일과 아이코닉한 일러스트레이션을 자신만의 남성성 짙은 파워플함으로 단숨에 제압하고 뉴 랑방 시대를 선포했다. 아직 단 한 번의 컬렉션을 발표한 터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한층 모던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제 곧 선보일 F/W 컬렉션부터 신랄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지만. 두 명의 슈퍼스타급 여성 디렉터의 탄생으로 하이패션계에는 다시 한 번 여성 파워가 입증되고 있다. 사실 패션 영역의 강력한 힘을 지닌 주인은 여자 아닌가! 비록 이번 F/W 시즌을 끝으로 잠시 패션계를 떠날 예정인 끌로에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를 비롯해 여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스텔라 맥카트니, 셀린의 피비 파일로까지 하이패션을 선도하는 이들도 여성 디렉터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끌로에는 새로운 디자이너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 중 하나였어요. 정확히 말하면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캐치해 언니처럼 옷장을 채워주는 역할이죠. 휴식을 포기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어요.” 클레어 웨이트 컬러가 출산 휴가를 마다하고 끌로에에 합류했을때 한 말이다. 동시대 여자가 만드는 여자의 옷. 제아무리 천재적인 남자 디자이너라 해도 여자의 마음을 꿰뚫어보지 못한다면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새로운 우먼 파워로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그녀는 뎀나 바잘리아의 조력자로 잘 알려져 있다. 뎀나의 베트멍은 물론 발렌시아가, 고샤 루브친스키의 쇼 스타일링에서부터 광고 캠페인 등 전반적인 비주얼 작업을 도맡아 한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핫’한 두 브랜드 외에도 겐조, 멀버리 등 새롭게 변화를 시도하는 브랜드의 쇼 스타일링에서부터 매거진 <리-에디션 Re-Edition> <맨 어바웃 타운 Man About Town> 고문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으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매거진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며 패션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여성’으로 손꼽힌다. 이렇듯 패션계 여성 파워들의 활발한 움직임에 따라 트렌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기존 남자 디자이너들이 만든 패션 판타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페미닌한 여자들이 현실 세계에서 진짜 입고 싶어 하는 옷들로 넘쳐나기 시작한 것. 최근 일고 있는 안티 섹시 신드롬을 타고 시어한 소재의 니플 프리 드레스를 비롯해 ‘여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핑크 컬러, 잔잔하고 아기자기한 플라워 패턴, 50~60년대 하우스 와이프 스타일, 로맨틱한 벌룬 슬리브 등 여자라면 누구나 입고 싶고 갖고 싶은 아이템들이 2017 S/S 메가 트렌드의 중심을 차지했다. 남자 디자이너들이 내세우던 기 세고 무서운 이미지, 여자들이 100%는 공감하기 어려운 판타지 요소들은 도통 찾아볼 수 없다. 파리 컬렉션 취재 중 우연히 옆자리에서 담소를 나누던 해외 에디터들이 잘나가는 빅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혹평하기 시작했다. “저 컬렉션은 여자의 몸을 전혀 모르고 만든 옷 같아!”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컬렉션을 눈앞에서 보니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이전의 존 갈리아노나 알렉산더 맥퀸 등 패션계의 주도권을 쥐고 스펙터클한 쇼를 위한 쇼피스에 집중했던 패션 시대가 저물고 여자들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 당장 사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동시대의 여자 디렉터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패션의 새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패션계는 언제나 새 바람을 원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