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에 대처하는 패션계의 자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초여름처럼 무더운 봄. 우리는 멋진 여름 옷을 구매하기 이전에 그 옷이어디서 왔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 패션,온난화,칼럼,일상,환경,친환경,엘르,엣진,elle.co.kr :: | :: 패션,온난화,칼럼,일상,환경

몇 해 전 프라다와 버버리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길 때 전 세계가 탄식했다. 영국에서는 지역 경제 위축과 일자리 축소를 우려해 찰스 왕세자, 영화배우 엠마 톰슨, 맨유의 알렉슨 퍼거슨 감독까지 버버리 이전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프라다의 경우는 자국의 섬유산업을 휘청거리게 했다. 이탈리아는 여느 유럽 국가들과 달리 제조업 비중이 높은 나라다. 그들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프라다마저 기술력의 이탈리아 대신 저임금의 중국을 택한 건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소비자들도 유쾌하지 않았다. 명품 브랜드의 가장 큰 시장인 아시아는 특히 그랬다.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을 단 유럽 디자이너 브랜드를 ‘명품’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결과적으로는, 브랜드들이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 남미, 동남아 혹은 인도에 생산기지를 갖추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 왔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언론의 타깃이 되긴 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의류 업체들이 이런 식의 ‘세계화’에 동참하고 있다. 가격 경쟁이 심한 중저가 캐주얼이나 SPA 브랜드들은 더 심하다. 아제르바이잔과 파키스탄, 이집트에서 생산한 목화를 이탈리아에서 가공해 섬유를 만들고, 인도에서 염색하고, 캄보디아에서 만든 단추와 지퍼, 브라질에서 만든 가죽 패치를 이용해 중국 노동자들이 최종 완성품을 만드는 식이다. 우리가 H&M의 저지 티셔츠를 단돈 1만5천원에 살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러나 의류 제조 공정의 세계화는 ‘제3세계에서 생산된 제품에 유럽 디자이너나 인터내셔널 브랜드의 라벨을 다는 것이 혹세무민이 아니냐?’는 의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식품과 일부 공산품에 적용하던 ‘탄소 마일리지 표시제(Carbon Footprint)’를 의류에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탄소 마일리지란 하나의 제품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발생시킨 탄소량을 의미한다. 문제는 지구 온난화다. 물론 인간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지고 빙하가 녹는다는 가설은 황우석 사태나 신종플루처럼 환경과학자들의 사기극일 뿐이라는 음모설도 있다. 하지만 2월 중순에 봄옷을 꺼내 입어야 하는 현실, 그 명백하고 체감 가능한 증거 때문에 지구 온난화는 환경계의 그 어떤 이슈보다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얼핏 패션계와는 상관없는 얘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레이첼 루이즈 스나이너의 저서 에 따르면 섬유 1kg을 만들 때마다 평균 2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의류 1kg을 만드는 데 60kg의 물이 사용되고, 그 중 45kg이 공업 폐수로 다시 방출된다. 면을 만드는 소재인 목화는 지구상 농지의 3%를 차지할 뿐이지만 전 세계 살충제의 4분의 1을 소비한다. 개발도상국의 사고 사망자 가운데 10%는 살충제 중독과 관련이 있다. 스톤 워싱 진은 돌아온 80년대 트렌드를 소화하기 위한 필수품이지만 그 수요를 감당하려면 전 세계의 경석을 모두 사용해도 부족하다. 워싱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 오염도 심각하다. 패션은 결코 우아한 산업이 아니다. 환경 문제에 대해 각성한 일부 브랜드들은 유기농 라인을 만들고, 에코 캠페인을 벌이면서 소비자들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유기농 마크가 그들의 면죄부가 될지는 의문이다. 현재 의류 산업에 참여하는 국가는 60~70개국에 이른다. 그 중 원자재 조달부터 제작, 포장, 판매까지 모든 것을 자체 해결할 수 있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 때문에 각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도 엄청나다. 그나마 자동차나 배는 덜하지만 비행기로 운송할 때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인도산 유기농 순면을 유럽에서 가공하고 비행기로 들여온 옷을, 중국에서 일반 합성섬유로 만들고 배로 들여온 옷과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친환경적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물론 현지에서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가장 낫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통공예 장인이 베틀로 짠 모시 한복만 입고 사시사철 지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면은 1백% 수입됩니다. 미국, 인도, 이집트가 주요 수출 국가죠.” 친환경, 공정무역을 실천하는 패션 브랜드 ‘그루’의 이명희 대표는 현 상황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능하면 국내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합니다. 이것이 지구 환경보호와 탄소 배출 절감에도 긍정적이고요.”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경우 현지 환경에 해를 끼치는 않는 방법을 찾고, 현지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공정무역을 실천한다. 또 운송수단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면을 수입할 때 배를 이용합니다. 운송비 절감 의미도 있지만 배가 비행기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운송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친환경 캐주얼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아예 홈페이지에서 제품의 이동 경로를 공지하고 있다. 그들의 핵심 아이템인 순면 티셔츠는, 터키산 목화를 이용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직조, 재단, 가봉, 염색, 프린팅되고, 자동차와 배를 통해 소비자에게 배달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터내셔널 브랜드들이 또 하나의 트렌드인양 앞 다퉈 펼치는 에코 캠페인도 위선일 수 있다. 한 날, 한 시에 전 세계 매장에 같은 포스터를 걸고, 같은 라인의 옷을 전시하기 위해서는 비행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또한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산 단추와 남미산 가죽 패치를 이용하느라 엄청난 이산화탄소가 발생했는데도 단지 유기농 코튼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에코 패션’이란 태그를 다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어제 런웨이에 나온 옷을 오늘 매장에서 판매하는 ‘패스트 패션’의 유해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환경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끝없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건 패션의 속성이자 사명이니까. 차선은 현명하고 윤리적인 소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유기농’ ‘친환경’이란 말이 붙는 순간 의류 가격이 훌쩍 상승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006년 갭, 아르마니, 컨버스 등이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해 ‘레드 캠페인’을 벌이자 일부 언론은 ‘50달러짜리 갭 청바지에 레드 라벨만 붙으면 198달러가 된다’고 비난했다. U2의 보노가 아프리카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만든 친환경 공정무역 데님 브랜드 ‘에덴’의 경우, 제조 단가가 일반 청바지에 비해 훨씬 비싸 프리미엄 데님과 비슷한 가격에 팔린다. 고객층 역시 윤리적인 자기만족을 위해 5백달러짜리 청바지를 살 수 있는 중산층들이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이 같은 브랜드들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탄소 마일리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의류의 탄소 마일리지 표시제에 대한 공식 논의가 없다. 소비자들이 요구하지 않는다면 브랜드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리 없다. 그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발생하는 비용을 함께 부담해줄 소비자들이 일단 많아져야 한다. 영국의 탄소 마일리지 표시제에 대해 현지의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탄소 마일리지가 높은 의류에 대해 콜레스테롤이 높은 식품을 사는 것만큼 거부감을 갖는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곧 패션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디자이너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설마 지구가 너무 달아올라서 F/W 컬렉션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