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는 있어도 제대로 알지 못한 단어가 많다. ‘사색’이라는 말을 나는 한 편의 영화에서 배웠다. <카모메 식당>으로 국내에서도 꽤 두터운 팬덤을 형성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2007년작 <안경>.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조용한 섬으로 홀로 여행 온 주인공 타에코는 섬사람들의 생활에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간소한 식사와 별일 없는 일상 그리고 요상한 체조! 그중에서도 가장 그녀를 의아하게 했던 건 늘 사색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사색하는 건 이 동네의 습관 같은 건가요?” 라고 묻자 민박집 주인은 갸우뚱하며 답한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몸에 밴 거죠.” 사색이라는 걸 해보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자, 그녀는 다시 묻는다. “저...사색하는 데에 어떤 요령같은 게 있나요?” 그가 다시 답한다. “옛 추억을 그리워한다든지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든지 하는거죠. 저의 경우 여기서 그저 차분히 기다릴 뿐이에요. 흘러가버리는 것을.”영화 <안경>의 한 장면. 이 영화에는 사색이 특기인 사람들이 등장한다.몇 년 전, 무언가에 홀린 듯 자꾸만 제주로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만 나면 가방을 둘러메고 비행기를 탔다. 시간이 안날 때면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무리해서 내려갔다. 제주 공항이 용산역처럼 익숙해질 때 즈음, 제주행을 멈추고 서울살이를 접었다. 그 시절에 대하여 가장 선명하게 남은 기억은 소문난 맛집도, 관광지도 아니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놓인 낡은 캠핑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던 시간. 널찍한 마당과 건너 집 지붕, 저 멀리 보일까말까 하는 바다의 파도, 구름과 해가 시간에 따라 어딘가로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히 서울생활에 지쳐서 그랬던 건 아니다. 당시는 최대한 열정적으로 나의 일을 즐기던 때였고 금전적인 어려움도 없었으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만족스러웠다. 다만 내게는 ‘가만히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저명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말했다. “세상에는 완전히 외향적인 사람도, 완전히 내향적인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병동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외향적인 면과 내향적인 면이 공존하는데, 사회에서 소비되는 건 대체로 외향적인 쪽이다. 사회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거니까. 원기왕성하고 사교적이고 적극적이고 강하게 주장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성공하기 좋은 세상이다. 반면 우리 모두의 내향성은 외면받아 왔다. 수전 케인은 자신의 책 <콰이어트>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향적이지만 그들 중 대부분이 이를 숨기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가리켜 ‘가면 쓴 내향인’이라고 칭했다. 어디에서든 외향의 가면을 쓰고 타인에게 들키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마저 속이다가,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퍼뜩 자신의 참된 성향을 재고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에 빗대어 말하자면, 사회에서 외향적인 기질을 최대한 사용한 뒤 지쳐버리면 동굴로 들어가는 편이었다. 나의 동굴은 대체로 소설을 읽는 일이었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었고, 선베드에 가만히 누워 파도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다시 영화 <안경>으로 돌아가서, 사색의 재능을 묻는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색에 필요한 것은 재능보다는 역시 자연이 아닐까 한다고. 흰 벽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기는 건 사색이라기보다는 명상에 가깝다. 살아있는 고요한 것들 즉 바다나 산, 매일 다른 모습으로 떴다가 매일 다른 색채를 품고 지는 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멍해진다. 바다와 산과 하늘뿐이겠는가. 베란다에 놓인 작은 화분의 풀잎도 우리를 치유한다. 다만 그것을 바라볼 잠깐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왼쪽)우리집에서 사색하기 가장 좋은 공간, 아래채 높은 마루 (오른쪽)지난 가을, 툇마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