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심폐소생술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디자이너들의 마법이 더해지자 트렌드의 뒤편으로 물러나 있던 패션이 하이엔드 패션으로 환생했다::트렌드,디자이너,하이엔드패션,크록스,패션,엘르,elle.co.kr:: | 트렌드,디자이너,하이엔드패션,크록스,컬래버레이션

지난 2017 S/S 런던 패션위크 기간 중 SNS 뉴스 피드에 흥미로운 이미지를 발견했다. 크록스가 크로스토퍼 케인 런웨이에 위풍당당한 자태를 드러낸 것. 크리스토퍼 케인이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Make Do and Mend(고쳐서 오래 쓰다)’ 컨셉트에는 적합한 만남이지만 감각적인 디자인에 반응하는 패션계의 특성을 생각하면 놀랄 만한 선택이었다. 지금껏 크록스는 <삼시세끼 어촌편 3>에서 윤균상이 3형제를 위해 준비했던 작업용 신발처럼 그저 편안한 신발 아니었나! 하지만 크리스토퍼 케인은 크록스에 대리석 문양과 원석의 자비츠 장식으로 고급스러움을 한껏 불어넣으며 “나는 예상치 못한 조합을 통해 새로운 럭셔리를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시스루 드레스나 플라워 드레스 룩에 크록스를 더한 믹스매치 패션은 소녀들의 취향을 저격하기에 충분했다. 패션을 재조명해 보겠다는 디자이너의 도전이 낳은 긍정의 결과인 셈이다. 18개 브랜드와 함께 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선보인 2017 S/S 베트멍 쇼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목격됐다. 2000년대 스트리트 패션에 획을 그었으나 추억 속 유물이 된 쥬시 꾸뛰르의 트랙 팬츠가 패셔너블한 귀환을 알린 것. 뎀나 즈바살리아는 해체와 조합에 익숙한 자신의 감각을 살려 쥬시 꾸뛰르의 DNA를 베트멍 버전으로 재해석했다. 패리스 힐튼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제니퍼 로페즈가 데일리 룩으로 입던 옛날 옛적 디자인은 과감하게 버리고 한쪽 소매를 과감하게 덜어내거나 강렬한 레드 컬러의 올인원 스타일로 파격을 더했다. 2000년대 시절의 브리트니 스피어스처럼 이 시대 패션의 중심에 있는 리한나가 바로 그 옷을 발 빠르게 낚아채 공식 석상에 입고 등장, 트렌드 뒤편으로 물러났던 쥬시 꾸뛰르에 다시 한 번 힘을 실어주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쥬시 꾸뛰르도 제2의 전성기를 노리며 #TRACKISBACK 태그를 단 SNS 마케팅이 한창이다. 그 결과, 브랜드 시그너처인 ‘Juicy’ 시퀸 장식은 이제 더 이상 촌스러워 보이는 옛것이 아닌, 뎀나식 쥬시 꾸뛰르로 화려하게 부활한 상징처럼 보인다. 추억앓이를 일으키는 패션 재조명은 뎀나의 절친인 고샤 루브친스키의 손에서도 일어났다. 그는 전 세계에 유스 신드롬을 일으킨 창시자답게 90년대 스트리트 패션을 상징하는 휠라와 카파를 트렌드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휠라나 카파 로고에 키릴 문자로 자신의 이름을 새긴 고샤 루브친스키의 로고 조합은 스트리트 패션 추종자라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쿨’한 아우라를 폭발시켰다. 사람들의 옷 입는 방식을 바꿔놓은 그가 3선과 스우시 로고에 밀렸던 스포츠 브랜드에게 트렌디하고 젊은 기운을 불어넣었으니 폭발적인 반응은 당연한 결과. 이런 맥락에서 하이엔드 패션과 크록스, 쥬시 꾸뛰르, 휠라, 카파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긍정의 교훈을 남긴다. 지나간 패션도 다시 보자!잠자는 패션을 깨운 건 2017 S/S 파리 컬렉션에서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특히 미우미우는 60년대 무드의 비치 걸을 런웨이로 소환하며 어릴 적 엄마가 씌워주던 꽃 달린 수영모를 꺼냈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엉뚱한 상상이 불러온 기발한 재치였다. 천을 일일이 꽃 모양으로 잘라 손바느질로 엮어 만든, 정성이 가득한 모자는 진짜 수영모는 아니더라도 쇼의 발랄함을 극대화시킨 ‘잇’ 액세서리임에는 분명했다. 휴양지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여자라면 시도해 봐도 좋을 스타일. 혹시 또 아나? 해변가에서 촬영한 미우미우 광고 캠페인 속 엘르 패닝이나 카렌 엘슨, 라라 스톤처럼 낙천적이고 발랄한 60년대 패션 판타지의 세계를 만끽하게 될는지. 한편, 발렌시아가와 발렌티노, 셀린, 카르벵은 다리를 향한 페티시를 컬러플한 스판텍스를 통해 드러내며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제안했다. 그중 제일은 발렌시아가였다. 팬츠인 동시에 슈즈가 되는 네온사인처럼 비비드한 스판텍스 부츠 팬츠를 컬렉션 전반에 선보이며 일명 ‘쫄쫄이’ 패션이 얼마나 멋지게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입고 벗는 시간은 오래 걸려도 이목은 단번에 집중시킬 막강 아이템으로 이만 한 팬츠는 또 없을 듯. 반면 발렌티노와 셀린, 카르벵은 빨간 스타킹의 각선미가 남기는 시각적인 자극을 세련된 스타일로 심화시켰다. 특히 셀린은 블루 롱스커트 룩과 레드 스타킹으로 컬러 대비를 살린 뒤 스니커즈를 매치했는데, 그 모습은 세련된 여자들이 따라 해도 될 만큼 근사했다. 셀린의 마법이 다시 통한다면 머지않아 옷장 깊숙이 넣어둔 컬러 스타킹이 거리로 나와 화려하게 부활할지도 모를 일이다. 스트리트 패션 퀸들은 거침없는 패션을 현실적으로 소화하는 방법에 도가 튼 능력자들이니까.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감각을 불어넣어 패션 창고에 있던 아이템을 환생시켰을 때, 지디는 사무용품의 패션화를 통해 새로운 유행의 탄생을 예고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피스마이너스원에 로고를 새긴 클립을 액세서리로 선보인 것. 2016/2017 샤넬 공방 컬렉션을 위해 파리에 방문했을 때 버킷 햇과 가죽 재킷에 클립을 꽂아 완성한 룩은 이슈를 낳으며 그가 하면 뭐든지 스타일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입증시켰다. 클립에 꽂힌 흥미로운 발상은 버클에 클립을 달아 백에 위트를 더한 오프 화이트에서도 발견됐다. 여자들의 마음이 같았는지 2017 S/S 시즌 때 ‘See Now, Buy Now’ 아이템으로 출시된 이 백은 홈페이지에서 솔드아웃된 지 오래다. 비즈니스 우먼에서 영감을 얻어 선택한 클립 장식이 그들만의 스트리트 감성으로 태어나 대중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 때문인가? 사무실에 쌓여 있는 클립이 다시 보일 정도다. 내가 쓴 모자에 달기까지는 용기와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색다른 관점이 낳은 기발한 발상이 흥미로운 패션 신을 만든 것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만약 크리스토퍼 케인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안전한 패션만 고집했다면 크록스가 하이엔드 패션계를 걸을 수 있었을까? 그가 주저했다면 크록스는 여전히 발 편한 신발로만 치부됐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케인은 이번 쇼를 준비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맞고 틀리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신을 제외하고 말이죠.” 그러니 디자이너들이 생명을 불어넣어 되살아난 뉴 시즌 마스터피스들을 ‘쿨’하게 즐겨보는 건 어떨까? 패션 월드에서 신분 상승에 성공한 흥미로운 패션 신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