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총아, 자비에 돌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단지 세상의 끝>으로 돌아온 자비에 돌란과의 인터뷰::자비에 돌란,단지 세상의 끝,인터뷰,영화,영화감독,엘르,elle.co.kr:: | 자비에 돌란,단지 세상의 끝,인터뷰,영화,영화감독

  <단지 세상의 끝>은 프랑스의 극작가 겸 연출가 장 뤽 라가리스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작품과 처음 조우했을 때 <아이 킬드 마이 마더>를 찍은 직후 배우 앤 도벌과 노닥거리다 아주 예전에 그녀가 연극으로 올렸던 절대 잊지 못한 작품이 있다는 추천을 받고 대본을 처음 접했다. 그땐 내가 어렸거나 멍청했는지 등장인물들에게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4년 뒤, 거실 서재의 책 더미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품을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인물들이 가진 불완전함이 크게 와닿았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 이 작품은 12년 만에 집에 돌아온 루이 그리고 그런 그가 반가우면서도 낯선 가족들의 대화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가족간의 갈등이지만, 발화된 것과 발화되지 않은 것 사이사이에 강렬한 감정이 깃들어 있다. 그걸 표현하는 문체, 그러니까 희곡에서도 지문을 없애 오직 대사로서 임팩트 있게 무대에 세웠는데 영화에서도 그런 원작자의 생각을 고수했다.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하고, 그 말을 고쳐 다시 말하는 특정 부분을 살려 인물들의 상처나 감정이 살 수 있게 하는 데 신중을 기했다.   전작들과 비교하면 비주얼 적, 음악적 요소가 옅어진 느낌이다. 그보단 ‘언어’의 힘을 강조했다고 할까? 의도적인 결정이었나 물론이다. 이전 작들보다 감정적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어찌 됐든 이 영화는 가족 그리고 죽음을 주제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좀 더 극적이면서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 걸 원했다. 지나치게 많지 않은 음악적 요소를 피하고 대신에 배우들의 연기를 위한 ‘공간’을 생성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다. 회상 장면만 좀 밝은 무드인데, 그건 그저 영화적인 표현일 뿐이다.   원작과 차이가 있다면 연극에 비해 좀 더 팽팽한 긴장감을 마련했다는 것. 몇 개 장면의 이야기 순서를 바꾸긴 했지만, 대부분 연극에 있던 내용이고 아예 새롭게 창조한 내용은 거의 없다.   오프닝 OST의 가사 ‘The house does not have the heart. There are no blood vessels. The House is a place for getting hurt’가 영화의 모든 걸 압축적으로 설명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미유의 노래 ‘Home is where it hurts’가 아무래도 영화의 테마를 잘 소개해주지. 오프닝 OST는 ‘루이(=우리)가 모순투성이의 집으로 이제 막 들어가려고 한다’는 걸 알리는 일종의 서막이다. ‘Home is where I’m scared’ 역시 카미유가 썼는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에겐 이 노래의 제목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이 있을 거다. 왜냐하면 집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이잖아. 물론 명징하게도 루이스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이긴 하지만.   마리옹 꼬띠아르, 레아 세이두, 뱅상 카셀, 가스파르 울리엘, 나탈리 베이 같은 세계적인 배우들과 드림 팀을 꾸렸다 그간 내가 가보지 않은 곳으로 더 나아가고 싶었다고 할까? 그들을 위해 시나리오를 썼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한 가스파르 울리엘을 제외하고 한 번의 리딩을 했고 각자 따로 리허설을 한 번 한 게 전부다. 심지어 모든 배우가 한 장소에 모이는 장면은 6일 만에 끝났다. 촬영현장은 아주 깊이 있으면서도 기분 좋은 분위기였다.   전체 영화 출연진이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영화 촬영을 마친 건 오직 일주일에 불과했다는데, 맞나 이건 좀 더 정확하게 수정하고 싶다. 우리는 대략 30일 가까이 촬영했다. 그러나 모든 배우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건 전부 합쳐 6일에 불과했다. 그래서 사실 촬영팀에겐 ‘챌린지’ 였다. 하지만 좋은 측면에선 그 6일 동안 실수가 거의 생기질 않았다. 그 짧은 기간은 되려 우리를 자극했다. 스릴 넘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가족 구성원 중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카트린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녀는 가족이면서 루이의 형인 안토니오와 결혼하면서 가족 구성원이 된, 따지고 보면 ‘제3자의 입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녀는 사실 아웃사이더다. 그러면서도 가족에 포함된 한 사람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앙투안이 카트린을 어떻게 대할지라도 그녀는 남편을 사랑한다. 그녀는 이 가족의 고함과 다혈질적으로 내뱉는 감정 표현에 세월의 흐름과 함께 차츰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그녀는 들을 줄 알고, 볼 줄도 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그리고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공감할 줄 아는 여자다. 사실 이 정도 공감 능력은 누구나 유심히 이야기만 들을 줄 알면 가질 수 있는 건데, 안타깝게도 루이의 가족 중 누구도 그런 기본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사실 원작 시나리오엔 없는 장면인데, 영화 초반 카트린이 루이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나는 그에게 동지가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카트린은 족이 루이의 비밀을 아는 고통에서 보호하고 싶어 했다. 이 비극적인 뉴스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 자체가 실은 굉장히 이기적인 행동이며, 의미가 없는 동시에 자신이 혼자 짊어져야 하는 문제라는 걸 루이가 받아들이게 하는 거다.   클로즈업 장면이 많아서 숨이 막히기까지 했다 원래는 더 심했다. 앞서 말했듯 장 뤽 라가리스의 희곡은 언어로 극의 긴장감을 조여갔는데, 영화에서도 그런 긴장감을 이어가기 위해 화면 비율을 바꿨다. 클로즈업을 통해 루이와 가족 간의 거리감 같은 것들이 살아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