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1일이 되면 신춘문예 기사들을 확인한다. 문학에 관심을 두고, 거기 발을 걸치고 있는 이라면 거개가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나만 해도 습작하던 시절에는 누가(나를 밀치고) 작가가 됐나 보고 싶은 마음에 확인을 했고, 작가가 된 이후로는 어떤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했는지 궁금해서 확인했으니까.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를 기다리기에, 새로 등장한 작가에게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신춘고아’라는 말이 생겨났다. 신춘문예로 데뷔하고도 지면을 얻지 못한 작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한때 신춘문예가 일종의 축제였던 시절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궁금히 여기고, 누가 신춘문예로 등단했다면 마을 초입에 현수막을 걸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제 그런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옛날 일이 돼버렸다. 문학으로는 도저히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 탓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춘문예를 비롯한 등단제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탓이기도 했다. 신춘문예를 비롯한 여러 문학 제도의 총체적 침체가 매우 긴 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신춘고아라는 현상 자체만 따져보면 원인은 명백하다. 매년 수십 명의 작가들이 등장하지만, 지금 지면은 그 숫자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수십여 명을 등단시키면서도 문학 지면은 그들을 충분히 다룰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등단한 모든 신인이 살아남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도 사라진 작가들은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지금의 등단자와 발표 지면 사이의 불균등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런 불균등 속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작가들이 충분히 자신의 기량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없다. 특히 신춘문예로 데뷔한 이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한데, 안정적인 지면을 확보하고 있는 월간 혹은 계간 문예지의 신인 공모로 데뷔한 이들은 이후 최소 한두 번가량 발표 지면을 받을 수 있는 데 반해, 신춘문예로 데뷔한 이들은 그 같은 안정적인 지면 확보가 불가능하다. 신춘고아라는 말 역시 이런 연유에서 탄생한 것이다. 신인은 지면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보임으로써 점점 인준을 받아야 하는데, 신춘문예의 경우에는 작가가 데뷔할 수는 있어도 작가로서 지면을 얻을 수는 없는 제도다. 특히 소설의 경우, 과거엔 일간지를 비롯한 여러 지면에서 소설 연재를 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얼마 되지 않는 종합 문예지를 제외하면 소설 지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검증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여러 신인들이 점점 시간에 밀려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밖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몇 문예지에서는 매년 신춘문예 신인 특집 등을 기획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신춘문예는 문학에 뜻을 둔 이들에게는 다소 꺼려지는 매체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무슨 문제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시장 경쟁을 예로 들며 초기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은 21세기에 매우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신춘문예를 비롯한 한국의 문학 제도는 이 같은 시장논리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신인상 제도는 오디션이 아니다. 더불어 공모를 통해 뽑힌 신인은 시장에 나온 상품이 아닌 것이다. 문학 제도에 있어 문학시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하기 십상이지만, 문학 제도가 상품과 연결되는 순간은 그것이 책으로 나올 때이지, 새로운 작가가 등장한 순간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신춘문예 등의 공모제가 갖는 의의는 오히려 시장 논리로부터 문학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다. 신인상 제도란 바로 그 시장 논리로부터 벗어나, 지금까지 갖지 못한, 충분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릴 수도 있는, 새로운 목소리를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작가란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갱신하고 그 궤적을 마주봄으로써 점차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갖지 못한 새로운 목소리를 기다리고 찾는 것이 신인상 제도의 역할이라면, 그런 목소리를 들어볼 기회는 충분히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관례대로 신인을 뽑기만 하지, 거기에 별 의의를 두지 않는 작금의 신춘문예 운영에 불만이 많고, 쏟아지는 신인들을 충분히 지켜볼 여유를 가질 수 없는 문학장의 상황에 불만이 많다.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운영돼 온 ‘우수 문예지 지원사업’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결국 2015년에 폐지돼 버렸다. 경영이 어려워진 문예지들이 문을 닫고, 지면이 줄어들어 크게 손해 볼 이들은 이미 자리 잡은 작가들이 아닌 만큼, 신인들이 앞으로 더욱 고생하리라는 점은 명백하다. 한편으로 이런 난국은 지금까지 신춘문예와 문예지 등을 중심으로 구성돼 온 기존의 문학 제도가 한계를 맞이한 까닭이기도 하다. 연이어 벌어진 ‘신경숙 표절 사태’와 ‘문단 내 성폭력’의 공론화 등은 결국 기존의 문학 제도가 고착화되며 생겨난 문학 권력이 만들어낸 것이었으니 말이다. 변화해 가는 문학장의 상황에 맞춰 새로운 제도 역시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생각해 볼 수 있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넘쳐나는 신인들과 그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없는 지면 간의 불균등을 해소하는 것. 그러나 이것은 문학장 전체의 확대와 활성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쉽게 해결될 수 없으리라. 다른 하나는 신춘문예를 비롯한 신인상 제도와 문예지를 중심으로 하는 발표를 벗어나는 다른 제도를 마련하는 방법이다. 한 예로 수년간 확대해 가고 있는 독립출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고착된 문학 제도로부터 벗어나, 진입이 훨씬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행할 수 있다면 신춘문예와 신인상 공모전 등을 둘러싼 볼멘소리들과 답답한 상황들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문학에 그런 고민을 할 여유가 충분한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writer 황인찬who's he?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고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를 냈다. 그의 시를 두고 문단은 이렇게 평했다. “예술적인 다양한 ‘방법론’을 지워버리는 희귀한 ‘방법론’으로 최근 우리 시에서 볼 수 없었던 농도 짙은 개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