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랑거리가 생겼다. 동네 친구가 나타났다! 이것은 붉은색의 볼드체로 써야 할 문장이다. 붉게 적어두고 크게 외칠만한 사건이다. “동네친구가! 생!겼!습!니!다!!!” 알게 된지도 얼마 안됐고 만난 횟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서 ‘친구’라 칭하기는 뭣하지만, 그래도 이 작은 시골마을에 비슷한 또래가 산다면 얼마쯤은 편하게 친구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곳은 노인들이 사는 작은 마을. 뒷집에서는 1920년대에 태어난 할아버지가 짱짱하게 고함을 치고, 지금도 거뜬히 밭일을 해내는 옆집할머니는 우리 부모님의 나이를 묻더니 “하이고야~ 아직 아가들이다. 내가 칠십만 됐어도~”라며 지나간 세월을 한탄하였다. 그런 마을 한가운데에서 섬처럼 지내던 우리는, 걸어서 5분거리에 우리와 같은 젊은 섬이 있다는 걸 지난 반년동안 모르고 살았다. 동네 친구 부부는 우리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둘이서 칩거하기를 즐긴다는 것,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려 딱히 애쓰지 않는다는 것, 뭐하던 사람이냐는, 여기서 뭐 먹고 사냐는 질문을 싫어한다는 것 정도. 무엇이 더 필요한가.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부부를 알게 되고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조금 엉뚱한데, 동네친구 남편이 최근 쯔쯔가무시병에 걸렸다가 나았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그녀의 블로그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읽게 됐다. 신기한 이름의 그 병에 걸리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점점 더 심해지는 두통과 오한을 견디다 못해 12시가 되기 직전 응급실행을 선택했고 나는 순천의 성가롤로병원으로 한밤의 레이싱을 해야했다.’ 그녀가 쓴 글을 읽고,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눈이 말똥말똥,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만일 내 남편이 많이 아프면 누가 응급실로 한밤의 레이싱을 하지? 여긴 우리 둘 뿐인데...’ 엉뚱한 데 꽂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보니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젠 나도 운전을 해야만 한다는. 드디어 제 기능을 하게 된 나의 운전면허증!운전면허를 취득한 건 2012년 초. 회사를 옮기면서 얻게 된 한 달의 휴가동안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이참에 면허나 따자 싶었다. 그 당시에도 언젠가 시골에 가서 살거라는 막연한 계획이 있었고 시골에서 면허가 없으면 곤란할거라는 생각이었다. 서른한살이었던 나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띠동갑 개띠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도로주행을 연습했다. 시험결과는 70점. 턱걸이 합격이었다. 그러곤 5년동안 운전대를 잡지 않았으니, 수십만원의 학원비를 내고 한 장의 신분증을 얻은 셈이다.할 수만 있다면 평생 운전이라는 것은 안하고 살고 싶다. 사실은 보조석에 앉아있는 것조차 두렵다. 하지만 시골에서 운전을 안한다는 건 고립을 택하는 일이므로, 2017년에 이루고 싶은 일들 목록 중 가장 윗줄에 운전연습을 적어두었다. 남편은 자꾸만 직접 운전해서 서울에 한번 다녀오면 실력이 크게 늘 것이라고 나를 격려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이번 생을 마치고 싶진 않다. 욕심을 부리지 말자, 조금씩 해보면 나아질거야, 라며 결국 우리 동네 입구에서부터 면 소재지까지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좁은 시골길이라서 중앙선도 없고, 맞은편 차들은 나를 덮칠 기세로 빠르게 달려오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내가 운전하는 차가 속수무책으로 느리다는 것. 몇 대의 트럭이 나를 추월해 달려 나가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남편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린 얼굴로 버버거렸다.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진 단 오분의 드라이빙. 다음 도전과제는 면소재지부터 읍내까지 나가보는 것. 또 몇 대의 차를 분노하게 할지, 남편은 과연 그때도 인내심을 발휘해줄지 모르겠지만 뻔뻔하게 힘을 내보기로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