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발굴한 스타 디자이너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독창적인 스타일로 패션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디자이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패션을 공부한 그가 하이패션계가 인정하는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자크뮈스,디자이너,패션디자이너,하이패션,컬렉션,SNS,엘르,elle.co.kr::



“패션을 독학으로 배웠어요.” 매 시즌 독창적인 스타일로 패션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디자이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의 얘기다. 그는 유명 패션 스쿨을 졸업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정식 코스를 밟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브랜드를 론칭한 독특한 케이스다. 프랑스 남부의 농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금수저와 특혜가 난무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토록 빠른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18세 때 파리로 건너간 그는 저예산으로 브랜드 자크뮈스를 론칭했다. 하이패션과는 전혀 인연이 없던 그가 인맥을 넓히기 위해 이용한 건 바로 ‘페이스북’과 ‘텀블러’. 먼저 SNS 상에서 유명세를 탄 그는 패션 평론가들의 회의적인 평가와 극찬을 동시에 얻기 시작하며, 2015년 루이 비통 모에 헤네시 프라이즈(LVMH Prize)를 수상한다. 하이패션계가 그를 ‘진정한’ 디자이너로 인정한 순간이었다. 시몽이 활동을 시작할 당시, 파리는 전설적인 패션 브랜드들의 도시였다. 지금처럼 재능 넘치는 수많은 신인 레이블들이 언저리에 숨어 있다 ‘짠’ 하고 나타나 빛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제가 그 물꼬를 튼 셈이에요.” 지난해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 The Business of Fashion>에서 ‘올해 파리에서 가장 각광받은 젊은 디자이너’로 선정된 시몽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26세의 어린 디자이너치고 꽤 대담한 발언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뉴 페이스의 신인 디자이너가 파리 패션계에 이토록 강력한 영향을 미친 건 수십 년 만이었으니까. “친구들과 협업을 통해 완성한 첫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 언론 반응이 뜨거웠어요. 기존의 파리 패션위크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그림이었으니까요. 럭셔리하고 상업적인 패션에 길들여진 프랑스 여성들에게 색다른 스타일을 제안하고 싶었어요. 평범한 화이트 티셔츠 한 장에서도 모던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도록 말이죠.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신인 디자이너들이 파리 패션의 중심이 돼 있어요. 이건 파리라는 도시뿐 아니라 빅 하우스 브랜드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지금은 슈퍼스타가 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뎀나 바질리아(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로타 볼코바 (베트멍의 스타일리스트), DJ 클라라 3000(시몽의 뮤즈이자 베트멍의 파트너, 파리의 ‘핫’한 파티에서 빠지지 않는 DJ)가 바로 그들이다. 파리를 뒤흔들고 있는 패션 크루로 불리는 이들의 내면에는 자신들이 보여주는 ‘쿨’하고 ‘힙’한 작업과는 대조되는 소박함과 진지함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만남은 계획된 게 아니에요.” 그룹에서 ‘쾌활함’을 담당하고 있다는 시몽이 말한다. “처음엔 그저 함께 어울려 노는 친구들이었어요. 모두가 유명해진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에요.” 볼륨감 넘치는 커팅과 목가적인 분위기의 드레스, 양의 다리를 닮은 퍼프 소매의 투박한 셔츠가 어우러진 2017 S/S 자크뮈스의 컬렉션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그가 선보인 쇼 중 가장 파격적이었다는 평을 얻어서일까? 쇼가 끝난 며칠 뒤 그를 만나기 위해 찾은 그의 스튜디오엔 바이어와 에디터들로 바글바글했다. 정신없는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있는 건 시몽의 친구들이었다. 그의 쇼룸에서 새로운 컬렉션의 모델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오랜 친구인 마리옹이었다. 시몽의 애인인 파비앵은 판매를 담당하고 있었다. “저는 직원을 새로 영입하는 게 아니라 가족을 영입합니다.” 1주일 뒤 통화하면서 그가 해 준 얘기다. 곧이어 그는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 ‘크루’ 혹은 ‘스쿼드’라는 단어가 패션계에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자크뮈스는 베트멍 같은 크루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엄밀히 말하면 우리 팀은 삶을 함께하는 것이지 디자인을 위해 모인 크루는 아닌 거죠. 내가 디자인하는 건 나 자신과 내가 믿고 있는 사실뿐이니까요.” 사실 패션계에서 세대교체는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다. 새롭게 급부상한 디자이너가 컬렉션을 다섯 번 정도 선보이고 두 번 정도 큰 상을 받게 되면 패션 업계는 또다시 새로운 누군가를 갈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시몽의 경우는 예외다. 탄탄하게 쌓아놓은 패션 네트워크와 견고하게 다져진 자신감은 그에게 끊임없는 영감이 되고 있고, 패션을 좋아하는 여자라면 누구나 그의 컬렉션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어 한다. 시몽이 처음으로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데엔 어머니 발레리의 영향이 컸다. “제가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주방 커튼을 잘라 스커트를 만드셨어요. 그 스커트가 굉장히 마음에 드셨는지 저를 학교에 데려다줄 때도 입으셨죠. 그때 옷 만드는 걸 직업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그가 설명한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사업을 시작한 해인 2008년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지금까지 시몽은 남은 가족들과 함께 농장에서 보낸 추억과 그곳에서 얻은 교훈들을 되새기며 파리 생활을 해 왔다. 그의 형제인 펠릭스는 자크뮈스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구축했고, 아버지 뱅상은 쇼룸 선반 전체를 설치했다. “농장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의 튼튼한 기반이 돼줄 거라고 믿어요. 파리에 살고 있지만 저는 영원히 남부 사람으로 남을 겁니다.” 이렇듯 시몽은 매 인터뷰마다 유년 시절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아이 같은 천진함이 묻어나는 그의 디자인이 꾸준히 인기를 얻는 결정적인 이유는 파워플한 영향력을 갖는 노련한 디지털 공략 덕분이다. “클래식한 디자인에 대한 과감한 접근법과 합리적인 가격대 덕분에 자크뮈스의 상품은 업로드와 동시에 순식간에 팔립니다.” 네타포르테의 글로벌 바잉 부사장 새라 럿슨은 자크뮈스의 인기 요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옷 대신 디자이너의 어린 시절이 등장하는 자크뮈스의 기발한 광고가 패션 피플 사이에서 이슈가 되자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숫자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사생활 공개를 꺼리는 대부분의 디자이너들과는 달리, 그는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는 내내 SNS와 함께했다. “SNS는 저에게 항상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내 이름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고, 매일 소비자로부터 피드백을 얻을 수 있죠.” 그는 어린 시절 장 폴 고티에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보고, 자수성가한 유명인이 발휘하는 영향력을 실감했다고 한다. “늘 긍정적이고 유쾌한 마인드로 옷을 디자인하는 모습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 역시 나처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나도 노력하면 장 폴 고티에처럼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어느덧 시몽은 자신의 바람대로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디자이너가 됐다. “허세 부리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 그에게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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